Skip to main content

설치미술 작가, 밴드 이날치 콘서트의 시노그래피 디자이너,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미술감독, 예술인간 최정화가 걸음한 영역을 나열하면 지면이 모자란다. 모두가 예술인간이라고 주창해온 그에게 최근 크리스탈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다나다너다의 멤버들. (왼쪽부터) 예술 제작자 최미경, 최정화, 아아, 다나, 두두.

최정화는 1980년대부터 작가, 전시 기획자,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영화 미술감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아티스트로 활동해왔다. 1989년 설립한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서 인사동 쌈지길, 오존, 살 등 감각적인 공간 디자인을 보여주었고, 플라스틱 바구니나 냄비, 밥그릇, 국그릇, 풍선 등 소모되고 버려지는 일상용품으로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베니스, 광주, 시드니 등 세계적인 비엔날레 무대에서 활약해,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개·폐막식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티스트 그룹 ‘다나다너다’에서 ‘크리스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전시 제목이 왜 ‘생쇼’인가요? 정확히는 ‘쌩쑈’입니다. 내가 먼저 물어봅시다.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 쌩쑈, 어떻게 들립니까?

아무래도 날것의 단어로 느껴지죠. 그게 의도입니다. 날것, ‘생(Raw)’하고, 또 생(生)한 느낌. 내가 언어 유희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좀 상스럽게 들렸으면 했어요.

어째서요? 예술에 쓸데없는 권위가 묻는 게 싫어요. 그런 예술을 좀 포기하자고요. 럭셔리 먼지를 털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작가님은 럭셔리한 브랜드와 종종 협업하고 좋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하지 않았나요? 하하, 그들과 작업할 때도 내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그 정반대에 위치한 것들인데요.

그래서 쌩쇼는 대체 어떤 쇼인가요?인스타그램을 통해 찾아본 전시의 주체 ‘다나다너다’라는 그룹도 궁금했습니다. 우선 다나다너다부터 말해야겠네요. 다나다너다 멤버들의 표현을 빌리면, ‘최정화’라는 30년이 넘은 IP를 가진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파트너스예요. 다양한 세대의 아티스트가 모인 그룹이자 이들이 활동하는 일종의 스타트업 기업입니다. 내 이름은 여기서 크리스탈이고요. 빛과 색이 중첩되는 투명한 순간, 그걸 이름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화가가 사용하는 재료가 아크릴 물감이라면, 다나다너다의 재료는 산업이에요. 다나다너다와 특정 산업의 브랜드가 만났을 때 생겨나는 시너지, 즉 관계를 다루려고 합니다. 이걸 상업적인 형식을 빌려와 이야기하면 ‘컬래버레이션’이 될 수도 있고, 팝업 스토어를 여는 것이 될 수도 있겠죠. 앞으로의 예술은 ‘공기와 관계’라는 게 우리의 주장이에요. 이번 쌩쑈는 다나다너다의 첫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최정화 작가.
24관 2층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연금술’ 시리즈.

쌩쑈에 오는 관객들은 무엇을 볼 수 있나요? 미술관은 티켓을 끊고 구경하잖아요. 우리는 아예 이 공간에서 생활하라고 해요. 90분 체류형과 24시간 숙박형이 있어요. 내가 늘상 말해온 ‘생생활활’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객, 즉 참여자들이 주연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이 공간에 오면 의도치 않은 우연이 발생하죠. 그 다발적인 우연, 그것이 형성한 관계 자체가 이 공간의 소프트웨어이자 콘텐츠입니다. 방문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당신이 여기에 와서 우리와 공기, 관계를 형성했으니 당신은 아트 피스라는 것. 당신은 예술 그 자체라는 것. 그걸 스테이트먼트나 별다른 설명 없이 놀고, 곳곳에 있는 카메라로 기록하여 느끼게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생방송 리얼리티 쇼예요. 매 순간이 다 예술이라는 뜻이고요.

다나다너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엔 ‘#세상의중심이아니라흐르는중심이다’라는 해시태그가 붙더군요. 그건 대체 무슨 뜻이에요? 동양 사상 전체가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요. 흐른다는 건 뭐냐, 고여 있지 않다는 거죠. 인간과 데이터의 차이가 2 뭐예요? 데이터는 고정 불변이지만 인간은 매분 매초 변합니다. 매일 죽고 매일 새로 태어나요. 또, 우리 멤버인 다나의 표현으로 쉬운 설명을 좀 덧붙이자면 중심이 흐른다는 건 결국 탈중앙되었다는 거죠. 단 하나의 중심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중심으로 함께 존재하는 것 말이에요. 점점 다양성, 공존에 대해 의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그걸 우리만의 방법으로 얘기하려는 거예요. 이번 쌩쑈에서도 작가와 작품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작품인 그가 이곳을 나가면 예술인간임을 자각했으면 해요. 형성된 조금의 권위라도 부수고, 각자가 중심이 되어 삶이 더 풍요롭기 바라는 겁니다.

돌탑처럼 쌓인 ‘연금술’ 시리즈.
생활용품들을 쌓은 ‘연금술’ 시리즈.

‘예술인간’은 뭔가요? ‘예술가’가 싫어서요. 예술가는 특별히 분류하고 뽑아놓은 거잖아요. 그래서 보편적인 인간으로 말을 바꾼 거죠. 누구나 예술인간입니다.

모두가 예술인간이면,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은 뭘까요? 구분이 없다고요. 그 싸움을 하는 거죠. 제도에서 이야기하는 예술, 마스터, 마에스트로가 싫고, 그것만이 예술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흐름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저는 예술가에 대한 불신, 예술에 대한 불신, 예술계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있어요. 예술이라는 게 그림, 조각, 설치 등 이런 것이 다가 아니잖아요. 그것보다 크고 따뜻하고 우리에게 와닿는 현실의 아름다움이 분명 있는데, 자꾸 구분과 차이를 만드니까 저는 부정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런 믿음이 저에게 있나 봐요. 뭔가가 더 있다는. 그 뭔가를 저는 생활에서 찾아요. 그러니까 예술가와 예술인간의 차이를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예술가는 추상이고 예술인간은 구상이에요. 예술가는 관념이지만 예술인간은 진짜 인간, 살아서 실현하는 인간이요.

그러다면 모두가 예술인간인 세상에서 작가님은 뭘 할 건가요? 아까 말했듯이 다나다너다로 공기를 쌓고 있겠죠? 만약 공기, 관계를 쌓는다는 다른 예술인간이 나타나면 같이하면 되고요. 거장이 없어진 세대가 이미 왔어요. 중심이 없어진 세대죠. 인스타그램에 각자 사진을 올리는데, 그건 작품이 아닌가요? 왜 아니에요? 그거 이미 작품이에요. 내가 30년 전부터 해온 얘기가 있는데, 예술은 없어질 거예요. 미술관도, 갤러리도 없어질 겁니다.

그런 시대가 최정화에겐 더 잘 맞나요? 그럼요. 예술의 진짜 역할은 스밈, 섬김이에요.

그동안 최정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민중의 예술, 민화라고 표현했어요. 쌩쑈도 민화입니까? 네. 제 꽃나무, 과일 나무들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왔겠어요. 민낯 그대로 드러나는 생생한 것. 생활 밀착형 쇼야말로 살아 숨쉬는 민화죠.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인피니티’.

관객이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된다고요…. 이제 그 많은 물건을 모으고 쌓는 전시가 지겨워진 건 아니고요? 아닌데. 여전히 쌓고 있어요, 공기를. 물론 그동안의 작품들은 물질로 만들었지만, 사실 그때도 물질만은 아니었어요. 플라스틱이 하나일 때야 플라스틱이겠지만 1천 개, 1만 개가 모이면 그건 문화고 문명이죠. 제가 했던 건 플라스틱으로 된 물건을 다른 물건으로 ‘프로듀싱 Producing’하는 게 아니라 어떤 존재로 ‘비커밍 Becoming’ 되도록 한 겁니다. 생산에서 생성으로, 총체로서 개체의 개념을 바꾸어내는 것. 그래서 그 개념이 존재하는 공간의 공기와 아우라를 바꾸고요.

플라스틱 바구니, 세제통, 빨래판, 밥그릇, 국그릇 등 이런 소모품을 재료로 다루면서 ‘눈이 부시게 하찮은’, ‘치밀하게 엉성한’ 같은 얘기를 늘 해왔습니다. 네. 저한테 세상이 그렇게 보였으니까요. 정반대가 조화하고 대립이 일치하는 것. 그게 음양이잖아요.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도 음이 있어요. 그 전체가 하나로 밸런스를 유지합니다. 그래서 하찮은 것을 눈부시게 하고, 눈부신 것을 하찮게 만들어왔습니다. 그거, 사실 제도와의 싸움법이거든요. 굉장히 치밀하게 만들고 엉성하게 보여주는 것. 그래야 알게 모르게 아우라가 생기고 공기가 생겨요. 제가 난지도를 다니면서 느꼈던 게, 쓰레기가 정말 예뻐요. 멀리서 보면 반짝반짝하고 아름다워요. 근데 가서 보면 쓰레기예요. 그래서 그걸 올림픽 경기장으로 가져왔어요. 눈이 부시게 빛나도록. 제가 현실에서 느낀 모든 게 그렇게 표현돼온 거예요. 아름답다고 믿는 것, 아름답지 않다고 믿는 것의 경계를 흐리는 것. 아, 이 말을 제일 잘 이해해준 사람은 베케 작업을 같이 했던 김봉찬 씨인데. 그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꼭 나오는 말이 있어요. ‘치밀하게 엉성함’을 최정화에게 들었고, 여기서 영향을 받아 ‘엉성한 치밀함’을 자신 연출하는 데 근본으로 삼고 한국적 미감, 한국적 조경, 한국적 자연을 표현했다고요. 베케 가봤어요? 이게 설명보다 느낌이 먼저 오는 거라….

요즘 사람들이 ‘미감’이라는 말을 남용하듯 많이 사용한다던데, 최정화의 미감은 눈이 부시게 하찮은 것을 찾는 감각이군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아름다움이죠. “너 그거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니? 아니야. 난 이 쓰레기가 더 예뻐.” 그 쓰레기들이 제가 선택해온 물질, 재료들인데, 또 제가 모으고 쌓은 것은 물질만이 아니죠. 그러니까 진짜 제 거는 영원히 소프트웨어예요.

여러 나라를 다니며, 그 나라에 있는 재료를 구해 쌓아놓으셨죠. 비엔날레며 각종 전시며, 여행도 많이 다니셨을 테고요. 바쁘게 돌아다니는 작가님에게 집은 어디인가요? 물리적 공간인가요, 정신적 상태인가요? 집, 집이라. 제가 <당신은 나의 집>이라고 전시했던 것 혹시 알고 있나요? 당신이 나의 집이죠.

꾸준히 ‘다 나다, 너다’를 이야기해오셨군요. ‘Your heart is my art’라는 말도 관객에게 늘 해왔는데, 그것도 다 일맥상통한 거죠?아리송해요. 불교의 연기법을 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봐요. 결국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다 같지 않나요?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귀하니까 너도 귀하고.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다.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다나다너다의 첫 번째 프로젝트 쌩쑈는 지금 라이브 중입니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계속 관계를 쌓아야겠죠. 지금 이집트와 대만,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있는 브랜드들과 이야기 중이에요. 아직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이들이 다나다너다와 만났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어떤 관계와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조만간 볼 수 있을 거예요. 아, 실제로 계획한 것 중에는 백두산에 다나다너다 숙소를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요.

<쌩쑈>는 24관 인스타그램 계정 @24museo의 프로필 링크를 통해 참여 신청을 할 수 있다.

최정화 작가의 서적과 옷,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24관 2층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