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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선 어쩐지 그 도시의 주민처럼 보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도서관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은 어떨까? 현지인들 틈에 섞여 조용히 사색하고, 도시의 역사와 건축이 빚어낸 영감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일. 세계적인 건축가의 손에서 재탄생한 이 시대의 도서관들은 책을 읽는 곳을 넘어, 동네의 기억을 품고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는 거대한 ‘문화의 집’이 되어 우리를 초대한다.

팅비에르 도서관·문화의 집 Tingbjerg Library and Culture House
📍덴마크, 코펜하겐

코펜하겐 북서쪽 끝 팅비에르는 건축가 스텐 에일레르 라스무센이 1950년대에 계획한 모더니즘 주거단지다. 덴마크 건축사무소 코베 COBE는 이곳 학교 옆에 도서관과 문화의 집을 더했다. 건물은 양 끝의 폭이 1.5m까지 좁아지는 쐐기 모양으로, 학교 입구 쪽으로 지붕이 낮게 기울어 주변 전후 건물들의 경사 지붕을 닮았다. 외벽은 단지의 오래된 건물들처럼 노란 벽돌로 마감했고, 가장 넓은 면은 통유리로 열어 안에서 벌어지는 활동이 거리에서도 훤히 보이도록 했다. 옛 활자 보관함에서 따온 격자 패턴과 합판 루버가 실내에 리듬을 더한다. 코베의 창립자 단 스투베고르 Dan Stubbergaard는 이곳을 “안팎을 뒤집어 온갖 활동을 드러낸 건물”이자 “사람들을 안으로 들이는 열린 초대”라고 말한다.

파 로커웨이 도서관 Far Rockaway Library
📍미국, 뉴욕 퀸즈

노르웨이 건축사무소 스노헤타(Snøhetta)가 브루클린 출신 아티스트 호세 팔라(José Parlá)와 함께 완성한 파 로커웨이 도서관은 2024년 문을 열었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이 일대를 휩쓸었을 때, 옛 도서관은 구호 물품을 나누고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 지역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새 도서관은 그 자리에 두 배 규모로 다시 지어져 배움과 교류의 거점으로 역할을 넓혔다. 로커웨이 해안의 노을빛을 담은 오렌지 그러데이션 유리 파사드 위로, 호세 팔라가 뉴욕 거리의 글씨 문화를 옮겨 적은 가는 흰색 필기체가 건물을 감싼다. 건축과 회화가 한 겹으로 포개지며 동네의 풍경과 기억을 그대로 입은 건물이 됐다.

그리스 국립도서관 Stavros Niarchos Foundation Cultural Center
📍그리스, 아테네

© Michel Denancé

아테네 칼리테아에 있는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문화센터(SNFCC)는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설계했다. 옛 경마장 자리이자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주차장으로 쓰이다 방치된 부지를, 도시와 바다를 잇는 거대한 인공 언덕 공원으로 바꿔 놓았다. 한 건물 안에 그리스 국립도서관과 국립 오페라 극장이 들어서 있고, 두 시설 사이의 공공 공간 ‘아고라’가 둘을 잇는다. 해안 쪽으로는 운하가 길게 뻗어 있고, 녹지로 가득한 공원은 도시 열섬 현상을 누그러뜨린다.

무사시노 플레이스
📍일본, 무사시노

도쿄 무사시노시 무사시사카이역 앞에 자리한 ‘무사시노 플레이스’는 도서관이자 다목적 문화시설로, kw+hg 아키텍츠(가와라다 야스코·히가 다케히코)가 설계했다. 2011년 문을 열었고, 2016년 일본건축학회상(작품 부문)을 받았다. 0세부터 100세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 소통하고, 일상에서 벗어난 자극과 우연한 만남으로 창의적인 영감을 얻는 커뮤니티 공간을 지향한다. 내부는 천장과 벽의 모서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한 크고 작은 방들로 이어져 있다. 몸이 편안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음 활동으로 발길이 옮겨 가는 유기적인 흐름이 생긴다. 도서관 외에도 1층 카페, 음악·공예 스튜디오를 갖춘 지하 청소년 층까지 있어 머무는 방식이 다양하다. 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이고 밤 10시까지 문을 열어, 둥근 창에 불이 켜지는 저녁 무렵의 외관도 볼거리다.

일본여자대학교 도서관 Japan Women’s University Library
📍일본, 도쿄

© Vincent Hecht
© Vincent Hecht
© Vincent Hecht

2010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세지마 가즈요가 모교인 일본여자대학교에 설계한 도서관이다. 2019년 4월 도쿄 분쿄구 메지로 캠퍼스에 문을 열었다.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에 입구는 2층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 바닥 슬래브가 층층이 드러난 외관으로 건물 안의 동선을 짐작할 수 있다. 유리 파사드로 자연광을 들이고, 메시 스크린으로 직사광선과 시선을 거른다. 건물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램프가 주 동선이 되고, 곳곳의 선큰 공간이 계단으로 연결된다. 키 큰 커튼은 넓은 공간을 아늑한 구역으로 나눈다. SANAA의 파트너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디자인한 ‘드롭 체어’ 등 세지마의 가구도 함께 놓였다. 학생을 위한 대학 도서관이지만 방문객도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견학을 신청하면 둘러볼 수 있다. 개관일 기준 3일 전까지 신청해야 하고, 촬영은 금지된다.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 Taichung Green Museumbrary
📍대만, 타이중

© Iwan Baan
© Iwan Baan

SANAA(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가 대만의 리키 류 & 어소시에이츠와 함께 설계해 2025년 12월 문을 열었다. 이름처럼 타이중 미술관(Museum)과 타이중 시립도서관(Library)을 한데 묶은 복합 문화시설이다. 2004년 문을 닫은 옛 군 비행장 자리에 조성한 67헥타르 규모의 센트럴 파크 북쪽 끝에 자리한다. 여덟 개의 건물이 기둥 위로 떠 있어 1층에는 그늘진 광장이 생기고, 건물 사이를 경사로와 스카이브리지가 이어 미술관과 도서관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린다. 유리와 알루미늄 메시로 감싼 반투명한 외피 너머로 공원 풍경이 비치고, 공원과 도시를 내려다보는 옥상 정원까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SANAA는 이 건물을 “많은 사람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건물”이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