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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겹의 벽지를 걷어내면 그 아래에는 그 집이 지나온 시간이 남아 있다. 색과 문양이 다른 오래된 벽지를 따라 당시 주거 풍경과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고사테.

1960년대 초 천장지에 나타난 쌍희(囍) 문양과 기하학적 반복 구성을 바탕으로 복원한 패턴 ‘영택 Original’.

고사테는 한국의 건축문화유산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배무이’에서 시작한 벽지 브랜드다. ‘골목’을 뜻하는 순우리말 ‘고샅’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처럼, 오래된 집과 골목 곳곳에 남은 한국 주거문화의 흔적을 찾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사테가 발견한 오래된 벽지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강동수 대표에게 들었다.

고사테와 배무이를 이끄는 한옥 목수 강동수 대표와 텍스타일 디자이너인 아내 플랑드르 줄리아.

한옥을 수리하다 발견한 오래된 벽지가 고사테로 이어지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2022년, 1893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 고택을 복원할 때였어요. 아내가 불쏘시개로 쓰려던 벽지를 가져와 “함부로 버리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뜯어보니 1915년 신문과 조선시대 문서가 초배지로 쓰여 있었습니다. 이후 현장에서 조선 후기 공문서부터 일제강점기 교과서, 미군정 건축물대장 등 다양한 기록을 만났습니다. 그러다 1937년생 한옥의 옛 벽지를 복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벽지 패턴을 디지털화하는 방법을 찾으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벽지를 수집하며 발견한 한국 주거문화 가운데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같은 집에서도 방마다 서로 다른 벽지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2m 내외의 한옥 방 안에서도 각자 다른 색과 문양을 골라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민화나 서화는 벽과 창호의 포인트 장식이 되고, 문양 벽지가 그 배경이 되기도 했죠. 근대화 이후 민화가 대량 인쇄되면서 도배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고 향유하던 대중적인 예술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집에서는 새 벽지를 덧바른 ‘덧방’의 흔적도 발견됩니다. 시대별로 어떤 변화가 보였나요? 한옥은 흙벽이라 기존 도배지를 벗기면 흙미장까지 떨어질 수 있어 새 벽지를 덧바르는 방식이 이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10년 간격으로 수십 년에 걸친 취향의 변화가 남아 있습니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수입품의 영향으로 서양식 패턴과 화려한 색이 등장하는 한편, 조선 능화지 문양도 발견됩니다.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재료의 한계로 독특한 색감이 나타났고, 1960년대에는 오프셋 인쇄와 롤벽지가 도입되며 표현이 다양해집니다. 벽지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인 문화와 공간을 꾸민 방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주연한의원의 벽면을 장식한 ‘상철’. 학과 소나무를 그린 패턴이 고가구와 어우러진다.
1910년대 한반도에서 사용된 초기 인쇄 벽지 ‘혜환 Original’.
한옥에서 발견한 원본 벽지와 고사테가 복원한 벽지 제품들. 시계 방향으로 영택, 단아, 영환 애쉬민트, 금옥, 재호, 미선 Original, 병수 Original.

오래된 집과 함께 벽지도 사라지는 상황에서, 지금 가장 시급하게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오래된 집을 수리 철거하기 전에 벽지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무엇을 ‘전통’으로 바라보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다행히 최근 궁궐 보수 과정에서도 벽지 복원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0년 시작된 창덕궁 대조전과 희정당 관람 환경 개선 공사에서 옛 벽지를 조사하고 일부를 재현했죠. 그 이전까지 궁궐 복원에서 벽지는 복원 대상조차 되지 못했죠. 문양이 남아 있어도 일률적인 한지로 마감하는 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벽지 복원이 오랜 기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전통과 문화유산을 박제된 유물처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집도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계속 변했습니다. 그런데 복원에서는 ‘처음 지어졌을 때의 모습’을 되찾는 데 무게를 두죠. 그 과정에서 고문서 초배지와 문양 벽지는 사라지고, ‘전통 한옥’의 새하얀 한지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전통이라는 개념으로 과거의 역사를 편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지어진 순간만 역사이고, 그 이후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은 역사가 아닌 것일까요? 집이 살아오며 만들어진 변화 역시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앞으로 고사테와 배무이가 기록하고 연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두 브랜드의 공통 화두는 ‘잊히고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을 발굴해 다시 우리 삶으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고사테가 도배지 문화를 되살리고 있다면, 배무이에서는 옛 단청과 미장, 근현대 가구와 유리 장식, 지역별 굴뚝과 기와 문양처럼 아직 기록되지 못한 건축유산을 만납니다. 18세 때부터 폐허가 된 문화유산과 집들을 복원하며 느낀 것은 전통이 특정한 형태나 문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각 시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간 과정에 전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사테를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의 생활과 건축문화를 소개하며, 전통을 먼 과거가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으로 느끼게 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WEB gosat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