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차트에서 모성과 바다까지. 배헤윰 작가는 동시대의 일상에서 포착한 풍경과 움직임을 회화의 언어로 옮겨온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해 낯선 이미지로 변주하는 그의 시선.

프리즈 서울 기간,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한옥 ‘막집’에 배헤윰 작가의 그림이 들어섰다. 깊고 드넓은 푸른빛과 분홍빛 획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시모데카를로 전속 작가로 선정된 후 첫 개인전을 선보이는 배헤윰 작가의 <Awakened>다. 고즈넉한 한옥 공간의 대들보와 만난 추상 회화들은,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암호화폐 시장과 생명의 모성, 그리고 거대한 바다의 심상을 은유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풍경을 비춘다. 배헤윰 작가는 눈앞의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대신, 그것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감각에 주목해왔다. 형태와 색의 관계를 탐구하며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상태를 회화로 표현하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디지털 이미지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미는 스와이프 액션 같은 짧고 명확한 동작도 그의 회화에서는 하나의 선과 움직임으로 변한다. 명확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디지털 이미지와, 하나의 의미로 규정하기 어려운 추상회화 사이의 차이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최근 그 시선이 화면 밖의 현실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들, 낯선 이들이 잠시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빚어내는 풍경 속에서 개인의 삶과 사회의 교차점을 읽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 역시 지하철이었다. 암호화폐 시장이 급등하던 날, 열차 안 거의 모든 이들이 휴대폰 화면 속 차트를 모니터링하던 순간을 보고 작가는 실물 없이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끊임없이 요동치는 가치와 그에 매여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목격했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빨강, 파랑, 회색의 수직적 차트 선은 작가에게 동시대의 초상이자 생생한 추상으로 다가왔다. 이 이어짐은 대치역을 지나는 열차 안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이야기하다 이내 암호화폐 투자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세계 안에 모성과 자산, 돌봄과 욕망이라는 가치가 공존함을 포착했다. 서로 다른 가치가 한 사람의 삶 안에서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작가는 모성을 하나의 거대한 풍경으로 상상했다. ‘각각의 임신부 뱃속에는 거대한 대양이 있다’는 감각적 상상. 끝없이 움직이고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바다는 암호화폐라는 초현초현실적 메커니즘과 아득한 생명력을 품은 모성을 하나로 엮어주는 거대한 매개가 되었다.

전시 대표작 <Milk of a Bitcoiner-Mother>는 이러한 사유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모유를 먹이는 사람이 동시에 휴대폰으로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도 있는 시대. 모유가 중력을 따라 아래로 흐르는 움직임은 암호화폐 차트의 하락선과 맞물리고, 그 선들은 캔버스하며 위에서 두껍고 강렬한 면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움직임에 하나의 의미를 정해두지 않는다.


“그림에서 하강을 그린다고 해도 밑에서 보면 상승이 될 수 있잖아요. 저는 어떤 방향을 하나의 의미로 정해놓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보는 분들이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자기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정 짓기보다는 저마다의 삶과 교차하며 새로운 질문을 가져가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것. 배헤윰 작가의 다채로운 화면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낯선 깨어남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