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익숙한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편집 방식도, 잡지 <뿌리깊은 나무>가 등장한 1976년에는 낯선 것이었다. 어려운 한자어 대신 생생한 우리말을 쓰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입말, 지역 문화를 지면에 담으며 출판과 저널리즘의 풍경을 바꿨던 출판인 한창기 선생. 창간 50주년을 맞은 올해, 그를 조명하는 전시 <2026 성북 신문인사 프로젝트: 한창기 ‘뿌리, 깊은, 나무’>가 10월 10일까지 최순우 옛집에서 열린다. 성북동에 삶의 터전과 출판사를 두었던 한창기의 기록을,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살았던 옛집에서 만난다는 점도 흥미롭다.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물>, <민중자서전>을 비롯한 출판물과 친필 원고, 그가 수집한 민예품을 선보이며 임수식, 정진화, 태싯그룹은 한창기의 기록과 관심사를 오늘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INTERVIEW
정진화 작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주목한 점은 무엇인가요? 한창기 선생님은 이미 아름답다고 알려진 것을 좇기보다, 사람들이 미처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우리말과 생활의 물건,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에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발견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림을 그리고 오래된 것들을 수집하며 마음이 가는 것들을 삶 가까이에 두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마음과 한 사람의 안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수집을 통해 삶과 예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작가님의 개인 컬렉션도 함께 선보였는데, 평소 어떤 물건을 수집하시나요? 옛 수집가들의 이야기에는 지금은 많이 사라진 시정(詩情)과 순정 어린 마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 화가들이 백자와 목기, 돌과 그림을 벗 삼았듯, 저 역시 제 눈으로 발견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거쳐 전해진 것들을 곁에 둡니다. 오래된 것에는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고 지켜온 사람들의 태도와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수집은 안목을 기르는 긴 연습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선은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최순우 옛집이라는 공간은 이번 전시에 어떤 의미였나요? 제 작품과 수집품을 이곳에 놓는 일은 하나의 전시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전시품 상당수가 성북동과 최순우, 한창기 선생님을 둘러싼 인연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북동의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근원 김용준의 <근원수필> 매화 그림, 최순우 선생님과 가까이 교유했던 장욱진과 윤광조의 합작 도자, 송영방과 한창기의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거북이 석물과 굴뚝, 어린 시절 제가 화가를 꿈꾸게 한 박래현의 <새> 등을 함께 선보입니다. 특히 한창기 선생님이 성북동 한옥에서 판소리 공연을 연 사진에서 실마리를 얻어, 사진 속 윤형근의 그림과 백제시대 불두가 놓인 장면을 제 소장품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오래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시간을 건네면, 그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뒤에도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