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꽃잎처럼 얇게 벌어진 백자의 가장자리가 날개를 연상시키는 <They Grew Wings to Fly Among the Birds>. 

생후 9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테네시에서 성장하셨다고요. 성인이 된 뒤 한국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나요? 제가 자라면서 알고 있던 한국은 굉장히 제한적이었어요. 삶의 대부분을 미국 문화 안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은 제게 멀리 있는 곳이었죠. 실제로 한국에 와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처음 마주하는 기분이었어요. 마치 어린아이의 눈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를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경계의 공간’에 있다고 표현해왔는데요. 지금은 이러한 경계적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지난 몇 년 동안은 오히려 그 ‘경계의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누구나 어딘가에 속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제 삶은 늘 그렇게 명확하게 나뉘는 두 세계 사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경계성(Liminality)’은 세상이 정해놓은 여러 기준과 구분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간이에요. 생각해보면 저처럼 정해진 ‘선’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이제는 그 중간에 있다는 것을 꼭 결핍으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곳이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작업하는 위치가 된 것 같아요.

 제주에서 마주한 자연의 형태를 유기적인 조형으로 풀어낸 조명 <Jeju Shell>.  © Se Oh, Jonathan Mark Hedrick
연못의 수면과 연꽃, 잉어가 뒤섞인 풍경을 겹겹의 붓질로 표현한 회화  <Mother Lotus with Young Koi>. © Se Oh, Jonathan Mark Hedrick

여러 한국 문화 가운데 특히 도자에 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한국과 연결되기 위해 도예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당시 파트너가 생일 선물로 도예 수업을 선물해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췄어요.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을 물레 앞에서 보내게 됐고, 작업하지 않을 때는 컴퓨터로 도자기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죠. 이를 통해 제 뿌리를 조금씩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국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도자의 시각적 언어를 대신 익혔다고 생각해요. 말로는 소통하기 어려웠던 공동체와 연결되는 또 다른 언어가 된 셈이죠.

달항아리나 매병 같은 전통 기형을 새롭게 재해석한 형태가 흥미로워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기도 하고요. 저는 도예 명장에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 작업은 삶의 대부분 동안 떨어져 있었던 문화의 상징을 제 방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특히 자연이 보여주는 회복력에 늘 매료되어 있었고, 제 작품에서도 그런 힘이 느껴졌으면 해요. 결국 이 형태들이 제 것이 되는 건 제 손과 지문, 그리고 작업할 때 느낀 기쁨과 불안, 외로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이 조각들을 제 자화상처럼 바라보기도 합니다.

회화 작업도 함께 병행하고 있는데, 도자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몇 년 동안 그림을 내려놓고 지냈어요. 다시 시작한 건 도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특히 색을 즉각적으로 다루는 감각이 그리웠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회화는 한국의 도상을 통해 제가 탐구해온 질감과 형태를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는 작업입니다. 회화와 도자가 정확히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는 저 역시 앞으로 작업하면서 발견하게 될 것 같아요.

 한국 도자의 전통적인 기형 위로  자라나듯 뻗어나온 <Resilience>.   © Se Oh, Jonathan Mark Hedrick
 한국계 미국인 작가 세 오. 최근 LA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작업 기반을 서울로 완전히 옮겼다. © Lee Jun Mo  

2026년 신작에서 스스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도자 작업의 언어는 계속 변하고 있어요. 흙은 그 순간 제가 어떤 상태인지 굉장히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재료니까요. 회화는 한국으로 이주한 뒤 훨씬 크게 변했어요. 한국 수묵화 거장들의 붓질에 매료되어 전통 붓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하나의 붓질 대신 여러 흔적을 겹치고 압축하면서 시간과 공간, 지금 제가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오랫동안 작업의 중요한 모티프였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자연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 작업에서 중요한 영감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특히 자연을 표현하는 시적인 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이를테면 겨울의 추위가 봄에 처음 피어난 꽃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 같은 표현이죠. 요즘은 이런 한국의 표현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작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트 위크 기간에 참여한 그룹전 <Ebb + Flow>는 어떤 경험이었나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한국의 디자이너와 작가들이 한 공간에 모여,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창작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했어요. 다른 작품들과 관계 맺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제 조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죠. 특히 제 작업도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의 동시대 시각 언어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제게는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얇게 늘이고 벌린 백자의 가장자리가 낯선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Edo. Death>. © Se Oh, Jonathan Mark Hedrick

작업을 떠나 요즘 가장 빠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래전부터 건축, 특히 종교적이거나 성스러운 공간의 건축과 도상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시아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종교의 사원과 성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의 셰라블링 수도원을 다녀왔는데, 이런 경험이 제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어요.

최근 작업 기반을 서울로 옮겼는데, 앞으로 진행하는 작업은 어디로 향할까요? 아시아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LA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작업 기반을 완전히 서울로 옮겼어요. 제 작업은 결국 제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경험하며 살아가는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한국 실크를 새롭게 실험하고 있어요. 제가 사용하는 재료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존중하고, 제가 태어난 나라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