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정복과 배신의 역사를 70m 천 위에 수놓은 바이유 태피스트리. 오랜 세월을 건너 살아남은 중세의 기록이 올가을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에서 공개된다.

70m에 달하는 긴 천에 공작 윌리엄의 출정과 승리의 장면을 구성한 작품은 바이유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 S. Maurice-Ville de Bayeux

길이 약 70m, 높이 약 50cm의 천 위에 새겨진 자수 그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바로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작은 도시 바이유 Bayeux로, 이곳 이름을 따서 ‘바이유 태피스트리’라 불리는 작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수이기 때문에 직조한 태피스트리는 아니지만, 벽에 걸 수 있는 실로 짠 큰 그림이라는 의미에서 태피스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르망디라는 지명은 북쪽의 노르만족, 즉 바이킹이라 불리는 북유럽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한 데에서 유래한다. 한편 이 시기의 옆 나라 영국도 덴마크계 바이킹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은 평화를 위해 프랑스 노르망디 공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 우방을 강화하고 외세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결국 덴마크의 크누트 왕이 영국 왕위를 차지하고 만다. 영국 에드워드 왕자는 외가인 노르망디로 피신해 25년간 망명생활을 했는데, 크누트 왕이 후사 없이 죽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왕도 후사 없이 죽게 되자, 그 혼란한 틈을 타고 영국의 권력자이던 귀족 해럴드가 왕위에 오른다. 그러자 에드워드 왕을 25년간이나 품어준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은 에드워드 왕이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하며 영국을 침공한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이 승리해 영국의 새 국왕으로 즉위하고, 노르만 왕조를 열게 된다.

70m에 달하는 긴 천에 공작 윌리엄의 출정과 승리의 장면을 구성한 작품은 바이유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대영박물관 전시는 9월부터 1년간 이어질 계획이다.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바이유 태피스트리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윌리엄의 영국 왕위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70m에 달하는 긴 천에 영국 왕 에드워드의 통치 말년부터 왕위를 차지한 해럴드의 배신, 그리고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출정과 승리를 58개 장면으로 구성한 것이다. 성, 배, 전쟁, 의복, 음식, 가구에 이르기까지 당대 생활상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6백20여 명의 인물과, 9백여 마리의 동물, 5백여 종의 식물, 30여 점의 건물과 요새, 40여 척의 배와 보트가 등장하는 등 섬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거의 1천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승리의 과정을 자수로 담은 이들이 바로 영국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금실과 은실 비단실을 써서 그림처럼 섬세하게 수놓는 영국 자수가 당시에는 유럽 전역에서 최고의 기술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바로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바이유 박물관을 찾았다. 그때 노르망디 풍광에 반해 이곳에 머물다 바이유 태피스트리에서 영감을 받아 높이 약 1m, 폭 약 90m의 대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또한 노르망디 출신의 대가 모네가 남긴 약 90m의 <수련> 연작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적, 문화적으로 큰 의의를 지닌 바이유 태피스트리가 올가을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에 소개된다. 9월부터 대영박물관에서 약 1년 동안 전시될 예정이다. 영국 왕족과 총리,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여 전시 개막을 알렸으며, 티켓은 즉시 4개월 분량이 매진되었다. 그 사이 바이유 박물관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칠 예정이다. 천년의 연대와 배신, 정복과 대립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중세의 장인과 현대미술을 잇고, 멀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공존해온 두 강국 프랑스와 영국의 깊은 역사를 소개하는 연결의 장으로 거듭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