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 작가와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 30년 만에 다시 협업했다. 호텔의 LL층이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1993년에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작품 전시할 기회를 줬어요. 그때는 도예라고 하면 그릇 정도나 떠올리던 시절인데, 하얏트에서는 오롯이 감상을 위한 것을 만들어달라고 했지. 그 이후로 내 작업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인연이에요.” 그로부터 약 30년 후인 2026년, 신상호 작가의 작품이 그랜드 하얏트 서울 LL층을 유연한 전시장으로 바꾸었다. 따지고 보자면 LL층은 갤러리의 화이트큐브에 가깝다기보다 다른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시설로 건너가기 위한 길목에 가깝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가구 및 조명과 함께 신상호 작가의 작품이 섬세하게 자리한다. 그 덕분에 정해진 관람 순서가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걷는 모든 걸음이 곧 전시의 동선이 된다. 거닐다 우연히 예술을 마주하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서, 공간과 작품은 경계의 틀을 허문다. 또한 도자라는 틀을 초월해 재료와 표현 영역을 끊임없이 변주해온 신상호 작가의 조형 세계와 부합하는 지점이다.


‘A PLACE WE IMAGINED’라는 전시명처럼, 현장은 귀한 수집품으로 가득 찬 취향 깊은 이의 방 또는 누군가의 아득한 꿈속으로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작가가 영국과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끌어모은 사물들은 무심코 지나치려던 이들의 발걸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여러 개의 다리를 달고 서 있는 말 오브제들은 속도감 있게 달리는 순간을 전하고, 다른 편의 커다란 도자 항아리와 동물 형상들은 몽환적인 질감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동시에 자아낸다. 흙이라는 재료가 지닌 무게감은 동물과 만나 한층 역동적으로 변하고, 오랜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표면은 각각의 작품에 고유한 서사를 부여한다. 어떤 것은 신화 속에서 막 걸어나온 생명체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오랜 여행 끝에 이곳에 도착한 유물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 〈A PLACE WE IMAGINED〉는 호텔과 작가가 공유해온 오랜 시간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뜻깊다. 이곳은 작가에게 작업관을 뒤흔든 전환점인 동시에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그랜드 하얏트는 제 안방 같은 곳이에요. 30년을 꾸준하게 드나들었죠. 친구들을 만나 밥 먹고, 술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잘 다녔어요.” 마침내 작가의 오랜 안방에, 그의 작업들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매혹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일상과 예술이 경계 없이 교차하는 이 우연 속에서, 관객은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던 ‘상상 속의 장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전시는 2027년 1월 15일까지 그랜드하얏트호텔 LL 아케이드에서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