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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수집했던 괴목에서 출발한 작품 ‘커넥트 체어 004’.
강릉 작업실에서 만난 송기두 작가.

서울을 떠나 강릉에 자리 잡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교집합에서 강릉이 나온 것 같아요. 원주는 제가 자란 곳이지만 비교적 기능적인 도시이고, 문화적인 것이 많지 않거든요. 강릉은 관광도시이기도 하고 바다나 커피처럼 문화적인 접점도 많아서 조금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또 강릉은 한산해서 작업에 몰두하기 좋고 마음도 편해요. 바다가 가까워 가끔 기분 전환도 할 수 있어 좋고요.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 가구를 만들기 시작하셨다고요. 설계사무소에서 3~4년 정도 일했어요. 주로 공공건축 현상설계를 하는 곳이었는데 늘 마감에 쫓겼고, 건축이라는 일의 스케일 자체가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혼자 몰두해서 시간 쏟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건축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혼자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고, 가구가 떠올랐어요. 회사 다니면서 주말마다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몰두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커넥트 스툴 003’.
건축적인 비례감이 돋보이는 ‘버디 버드’

건축에서 익힌 비례와 구조에 대한 감각이 지금의 가구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건축적인 구조나 비례, 균형 같은 감각에 많이 집중했어요. 저는 설계를 오래 해서 그런지 즉흥성이 부족한 사람이기도 해요. 유기적 형태의 작업도 먼저 3D로 설계한 뒤 제작에 들어갈 정도니까요. 오히려 그래서 자연목이나 돌에 끌리는 것 같아요. 자연물은 제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형태가 아니잖아요. 생명력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형태니까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죠. 대부분의 작업은 지금도 3D 작업을 먼저 마친 뒤 제작에 들어갑니다.

아버지가 수집한 괴목은 작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요. 처음 그 나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순간을 기억하나요? 아버지가 점점 나이 들면서 몸이 아파 병원 다니시는 모습도 보게 되었는데, 집에 쌓여 있던 괴목과 지금의 아버지 모습이 어느 순간 겹쳐 보였어요. 이제는 아버지 자신이 오래된 고목처럼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러면서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처음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의 저보다 젊었을 때 무거운 나무를 가져와 다듬었을 모습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괴목이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아버지의 삶과 젊음이 담긴 물건처럼 보였어요. 그것을 제 작업으로 끌어오면서 작업에도 변곡점이 생긴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감각’에 집중했다면 그때부터 조금씩 ‘감정’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죠.

그 기억에서 시작한 ‘커넥트’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나요? 괴목을 먼저 봐요. 나무는 이미 형태가 정해져 있고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 대신 나머지 부분은 제 의지로 만들 수 있으니 그 나무에 맞춰 설계하죠. ‘커넥트’라는 이름도 아버지의 역사와 앞으로 제가 만들어갈 역사 사이의 연결 지점을 찾고 싶어서 붙였어요. 처음에는 아버지가 수집한 자연물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저도 그 장소에서 나무와 돌을 주워요. 아버지가 젊을 때 하던 일을 같은 장소에서 제가 다시 하고 있는 거죠.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을 따라가며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제 이야기가 됐어요.

묵직하게 자리 잡은 거대한 괴목을 중심으로 꾸민 작업실. 이르면 올가을에 오픈 쇼룸을 열 계획이다.

작품에서 한국적인 인상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실제로 전통에서 모티프를 찾나요?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해요. 초창기에는 구족반 같은 전통 가구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전통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작업하지 않거든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 자랐기 때문에 어떤 비례감이나 미감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것인지 저도 궁금해요. 나무라는 소재의 영향도 있을 것 같고요. 나무와 돌 같은 자연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한옥이나 옛 가구와 연결되어 보일 수도 있고요. 제가 의식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만들려고 한다기보다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비례나 재료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이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오브제 작업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작업에서 ‘쓰임’은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최근에는 감정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오브제 작업을 많이 했어요. 가구는 아무래도 기능이 먼저 보일 수 있잖아요. 저는 작업에서 감정이 먼저 보이면 좋겠고, 조금은 시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가구를 떠나겠다는 건 아니에요. 가구에도 충분히 감정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은 사실 기능성이 조금 떨어지는 편인데, 그 중간 지점을 만나게 하고 싶어요. 의자이지만 조각에 가깝고,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그리고 결국 가구는 누군가 소장해서 좋은 공간에서 실제로 쓰일 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에서 채집한 돌과 나무로 만든 벽 오브제, ‘언노운 아일랜드’와 ‘이터널 서클 001’.
작가의 고향이자 아버지가 괴목을 수집했던 원주에서 촬영한 커넥트 시리즈.

앞으로는 어떤 작업으로 그 이야기를 확장하고 싶나요? 지금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의자를 준비하고 있어요. 시골 풍경 안에서 놀며, 울고 웃던 기억이 한동안 잊혀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그건 정말 저만 알고 있는 제 이야기잖아요. 그 기억을 가구로 풀어내고 싶어요. 보는 분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고요. 책 작업도 계속하고 싶어요. 제 작업을 그냥 ‘보시는 것’보다 ‘읽어주면’ 좋겠거든요. 책도 읽는 사람에 의해 완성되듯, 제 작업 역시 보는 사람이 제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가구와 오브제, 그림책이 연결돼 하나의 제 세계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