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9년 지은 건축에 에르메스의 상상력이 스며들었다.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에 문을 연 새로운 메종, 그 안에 펼쳐진 경이로운 공간의 세계를 드니 몽텔과 함께 들여다봤다.


런던 한복판에 조금 특별한 집이 생겼다. 무려 55개의 방을 품고, 5백 점이 넘는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집. 그 주인공은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166번지에 문을 연 에르메스의 여섯 번째 메종이다. 1769년에 지어진 여섯 채의 역사적 건물을 하나로 연결한 이곳은 총 2000㎡, 5개 층에 걸쳐 펼쳐진다. 파리 건축 스튜디오 RDAI의 아티스틱 디렉터 드니 몽텔 Denis Montel이 설계를 이끌며 오래된 건축에 현대적인 색채와 소재, 장식을 더했다. 7m 높이의 파사드와 아치형 천장을 지나면 포스터 앤 파트너스 Foster + Partners가 유리 지붕을 새롭게 설계한 아트리움이 펼쳐진다. 석회암과 유리로 만든 나선형 계단, 카프스킨으로 마감한 난간, 짚과 말총으로 장식한 승마 공간, 영국식 플로럴 패턴과 섬세한 우드 패널까지. 층마다 서로 다른 표정을 지닌 공간에는 에르메스의 16개 메띠에와 예술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오래된 건축의 유산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꾸고, 거대한 메종에 집처럼 친밀한 분위기를 불어넣은 드니 몽텔. 그에게 공간 곳곳에 숨겨둔 유쾌한 상상력과 시간을 초월하는 건축의 가치에 대해 물었다.
메종 본드 스트리트가 누군가의 집이라면, 과연 누가 살고 있을까요? 이 메종을 설계할 당시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에밀 에르메스 Émile Hermès의 집이라고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밀 에르메스는 포부르 생토노레 24번지에 자리한 에르메스의 역사적 본점과 깊이 연관된 인물로, 다수의 미술품과 오브제를 수집한 컬렉터이자 19세기 문화의 열렬한 애호가였습니다. 메종 본드 스트리트 곳곳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방대한 미술품 컬렉션을 보면, 마치 에밀 에르메스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5백 점 넘는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이곳만의 차별화된 매력은 무엇인가요? 다른 매장에 전시된 작품이 몇 점인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메종 본드 스트리트의 작품 수는 실로 압도적입니다. 이곳에는 5백 점 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죠.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각 공간이 지닌 고유한 정체성입니다. 층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부여하고, 각각의 공간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절충성, 다양성, 창의성 측면에서 기존에 작업했던 다른 매장보다 한층 더 과감하게 접근했습니다.




오래된 건축물의 제약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도 하죠.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어땠나요? 우리에게 제약은 결국 작업을 위한 하나의 도구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중정을 중심으로 여섯 채의 건물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으로,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과 구조적인 제약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건물 자체가 뛰어난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추가해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고, 일부 공간에는 19세기 분위기를 살려 기존 장식을 복원하거나 새로운 장식을 더했습니다. 결국 역사와 유산을 존중하면서 다양성과 현대성을 접목한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0㎡의 거대한 공간이 마치 누군가의 집처럼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그 비결은요? 무엇보다 수많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큰 이유입니다. 복도를 지나고 곳곳에 숨겨진 통로를 통과하는 동선은 마치 실제 주거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는 이를 더욱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환대와 안락함, 자연광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각 공간에 고유한 컬러와 장식을 적용했습니다. 곳곳에 소파와 암체어, 의자를 배치해 편히 머물 수 있도록 했죠.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의 느낌을 구현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를 관통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55개의 공간 중 단 한 곳만 고른다면, 어디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싶으신가요? 한 곳을 꼽기는 어렵습니다. 그중 조금 더 애정이 가는 공간을 꼽자면, 우선 메자닌 층의 향수 공간을 좋아합니다. 영국 아티스트 케이티 스콧 Katie Scott이 꽃과 장미로 벽면을 장식한, 동심을 자극하는 위트 넘치는 공간이죠. 금방이라도 말 한 마리가 나타날 듯한 짙은 갈색의 승마 용품 공간도 특히 좋아합니다. 승마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또 하나는 최상층의 작은 살롱입니다. 아름다운 정원 테라스가 내려다보이는 다이닝룸과 거실로, 에밀 에르메스의 살롱을 상상하며 구상한 공간입니다. 그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죠. 클래식한 미감과 다채로운 영감이 어우러지는 공간입니다.



메종을 둘러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유쾌한 장난들은 어디에 숨겨두셨나요? 제 생각에 위트는 특정한 공간이 아닌 메종 전체의 다양성에서 옵니다. 여섯 건물의 바닥 높이가 각각 달라 계단을 오르내리고 브리지를 건너기도 하죠. 노란색 방을 지나 파란색 복도로 들어섰다가 뒤돌아보면 빨간색 공간이 나타납니다. 꽃무늬로 가득한 벽면이 있는가 하면 붉은 점들이 펼쳐진 바닥도 있죠. 이처럼 공간을 이동하는 내내 끊임없이 놀라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메종 전체가 위트와 재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시대, 오랜 시간을 품은 공간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요?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종 본드 스트리트는 시간의 흐름과 역사를 존중하며, 오래도록 지속될 공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단순한 매장이 아닌 하나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예술품을 감상하고, 또 누군가는 그저 천천히 거닐기 위해 찾을 수 있겠죠. 새롭게 만들어졌음에도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존재한 듯한 공간에는 뜻밖의 놀라움이 숨어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작업한 매장 중 방문객이 실제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유일한 곳일 겁니다. 계단을 하나 오르고 브리지를 건넌 뒤 다시 다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마저도 즐거운 경험이 됩니다. 목적 없이 거닐며 공간 자체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