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도서관

기적의 도서관

기적의 도서관

Memory in Space 유타건축 김창균 소장의 기적의 도서관

10년 전 유럽 곳곳을 여행하던 중 네덜란드 델프트 공학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재직 중인 은사님을 뵙게 되었다. 캠퍼스 곳곳을 둘러보다가 델프트 공학 대학교 도서관을 지나게 되었는데 잔디가 깔린 넓은 언덕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원뿔 모양의 독특한 건물을 본 순간 시선이 멈추었다. 이 혁신적인 디자인의 건물은 ‘CNN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도서관’에 선정되었기에 익히 알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델프트 공대 학생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잔디 위에서 학생들이 자유로이 누워 책을 보거나 일광욕을 하는 모습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건물을 매개로 사람과 책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고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용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곳임을 새삼 깨달았다. 건물 자체보다 이용객을 우선시하는 이 도서관을 다녀온 후, 나는 도서관 설계를 맡을 때마다 여기서 느꼈던 감동을 되새기며 설계를 하곤 한다.

에디터 최고은 │ 사진 김창균 │ 일러스트레이터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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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적인 건축가

인류애적인 건축가

인류애적인 건축가

2014년 프리츠커상의 메달은 반 시게루에게 돌아갈 것임이 이미 발표되었다. 그리고 지난 6월 치러진 시상식을 통해 건축과 인류애의 소통을 도모한 그의 노력은 재조명되었다.

↑ 독일 하노버 엑스포 당시 일본관. © Hiroyuki Hirai

건축 또는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도저한 삶의 무게를 거두어낸 후의 고급 취미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건축은 한번도 스스로 예술이기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삶과 인생의 성소였고, 때문에 긴 생명력을 보장받았으며 주변의 조화, 문화적인 배려, 이용자들의 호소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청해왔다. 1979년 제창된 프리츠커상은 이 같은 건축의 시원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최첨단, 고효율이라는 수사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과는 거리가 멀다. 한 사람의 세계관, 철학을 건축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인정받은 한 사람에게 루이스 설리반이 디자인한 동메달과 상금 1만 달러가 주어질 뿐. 그 명성에 비해 소박한 부상임에도 프리츠커상은 이미 건축가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면류관으로서 그 상징성과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2012년 중국의 왕슈, 2013년 이토 토요에 이어 올해에는 반 시게루 Ban Shigeru가 수상자로 지목됨에 따라 내리 3년째 메달은 아시아의 건축가를 흠모하고 있다.

↑ 콘테이너로 만든 임시 주거 공간. © Hiroyuki Hirai

하얏트 재단은 공식 성명을 통해 최근 25년간, 재난 현장을 돌아다니며 자원봉사자 건축가들과 함께 저렴한 소재, 쉬운 공법, 재활용 가능한 재질로 희생자들을 위한 은신처를 만들어온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지난 6월 13일 시상식 후, 반 시게루는 겸손한 소감의 변을 덧붙였다.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며 나는 이것을 계기로 더욱더 노력할 것입니다. 개인 저택이든, 재난구호 현장이든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입니다. 이 상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계속 정진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1 이탈리아 라퀼라에 세운 페이퍼 콘서트 홀. © Hiroyuki Hirai 2 반 시게루의 모습. © Shigery Ban Architects

유년 시절의 반 시게루는 목수였던 아버지의 공방에서는 매일 마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공방 장인들은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었고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들을 따라 옆에서 자투리 나무로 무언가 만들던 반 시게루는 훗날 목수를 꿈꾸었지만 11살, 그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만난다. 소박하고 작은 집을 드로잉한 것이 전교 최우수작으로 뽑히며 건축가라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4년, 건축가 반 시게루는 르완다 내전 현장에 있었다. 종이관을 이용하여 난민들을 위한 쉼터를 지을 것을 UN 난민사무소에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고베 지진, 일본 대지진 현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비영리단체인 VAN을 설립하여 지역의 건축가 자원봉사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했고 그들의 활약은 일본뿐 아니라 터키, 인도, 스리랑카, 중국, 뉴질랜드 그리고 최근에는 필리핀까지 재난으로 인한 회복이 필요한 현장에서 빛났다. 프리츠커상의 선정 위원들은 종이, 대나무, 선박 컨테이너 등 평범한 재료들에 혁신적인 발상을 더해 인간에게 필요한 궁극의 공간을 완성하되 건축 본연의 기능을 잃지 않은 그의 공적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밝혔다.

11995년 고베 지진 당시 피해 난민을 위해 지은 페이퍼 로그 하우스. © Takanobu Sakuma 2 2011년 일본 대지진 난민을 위해 만든 종이 파티션 시스템. © VAN

21세기 산업의 핵심 화두가 된 ‘지속 가능성’, 이는 반 시게루의 건축 세계를 함축한 단어이기도 하다. 재생, 재활용,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공통분모에 주목하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지속 가능성에 골몰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거의 30년 전입니다. 그때는 누구도 환경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죠. 언제나 저비용, 지역적인 재료, 재활용 가능한 소재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작업 방식이 저에겐 굉장히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1987년 겐조 탕게로 시작된 일본 건축가의 수상은 반 시게루까지 여섯 명.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넓게 보고 있는 그의 수상은 지금 건축이 가야 할 방향에 작은 지시등처럼 점멸하고 있다.

↑ 프랑스의 퐁피두 메츠 센터. © Didier Boy de la Tour

↑ 동경의 개인 주택인 커튼 월 하우스. © Hiroyuki Hirai

↑ 뉴질랜드의 카드보드지로 만든 성당. © Stephen Goodenough

편집장 노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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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나는 사람들

향기 나는 사람들

향기 나는 사람들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네 개의 향초 브랜드를 만났다. 각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네 명의 대표는 향초를 만들게 된 계기도, 방법도 제각기 다르지만 향기를 사랑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꼭 닮았다.

키토스라보
키토스라보는 호시노앤쿠키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정윤 대표의 두 번째 브랜드다. 호시노앤쿠키스에서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는 라인인 키토스라보의 시작 아이템은 향초다. 이정윤 대표는 ‘고맙습니다’를 뜻하는 핀란드어인 ‘키토스’의 어감과 뜻이 좋아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게 됐다고 전했다. “어릴 때 캠프파이어를 하면 마지막에 초를 들고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향기와 함께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유난히 초를 좋아해 여행을 다닐 때도 예쁜 초만 보고 다녔다는 이정윤 대표. 손재주가 좋아 만드는 일이 익숙했던 그녀에게 향초를 직접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어디에선가 맡아보지 못한 향을 내기 위해 오일을 섞어보고 향에 대한 좋은 반응을 듣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발향에 관한 부분이나 소이왁스가 파라핀 초에 비해 가격이 높다는 점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초 하나를 만들 때 넣을 수 있는 오일의 양은 정해져 있거든요. 어떤 오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발향이 달라져요.” 키토스라보에서는 병 타입 향초와 함께 피라미드, 버섯, 난쟁이 등 키토스라보의 취향이 반영된 정교한 모양의 입체 향초도 선보이고 있다. 향초를 만들면서 설레는 마음이 느껴질 만큼 곱고 예쁜 제품을 만들어온 그들은 연말쯤 새로운 작업실로 이전할 계획이다.

코스믹 맨션
원래 영화 소품을 만드는 일을 했던 코스믹 맨션의 홍원미 대표는 지인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향초를 만들기 시작했다가 향초의 세계에 빠지게 됐다. “여러 향을 섞으면서 새로운 향을 발견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어요.” 냄새에 민감한 편이어서 향이 너무 강하면 머리가 아팠다는 홍원미 대표는 향초를 만들 때 향이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 수 있도록 조향을 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은 ‘풀문’이에요. 라벤더, 작약, 치자꽃 등 흔한 향을 사용했는데 그 비율을 달리하니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향기가 완성되었어요.”
그녀에게 향초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고민할 것도 없이 ‘힐링’이라고 답했다. 초가 타며 향을 뿜어내는 시간만큼은 고요히 나에게 집중하면서 공허해진 마음을 다시 충만하게 채울 수 있다. 마음이 무겁고 고민이 많을 때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인 것이다. 그녀 역시 초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코스믹 맨션을 통해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자기만의 향을 찾는 일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단순한 자기애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까지 아우른 삶에 대한 애착인 것이다.

오파크
대학에서는 도자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그래픽, 웹,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일을 했던 오파크의 하민지 대표는 자신의 역량을 완전히 쏟아낼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향초를 만났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향은 물론 로고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이고 용기도 도자기를 선택해서 차별화를 두었죠.” 하민지 대표는 어디에선가 맡아본 것 같은 향보다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향기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오파크의 15가지 향 중 ‘템플스테이’는 나무 향과 사향을 섞어 절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향을 내는데 중성적이고 묘한 매력이 있어서 매장에서 가장 반응이 좋다. “향초를 직접 태워서 향을 맡아보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 향을 상상할 수 있도록 어울리는 이미지를 직접 그려서 제품에 붙였어요.” 그림을 일일이 그리는 것이 꽤 번거롭긴 하지만 이 과정이 가장 즐겁다는 그녀는 오파크의 향초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완성되기를 희망하고 또 실천한다. 그녀에게 향초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각각 다른 향을 내는 오일을 섞어 하나의 초로 굳히는 일이 마치 도자, 그래픽, 웹 등 여러 분야에서 쌓아온 내공을 한데 모아 오파크 브랜드를 탄생시킨 것과 흡사했다. 그렇게 그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오파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메누하
패션 브랜드에서 마케팅 및 홍보, 디자인 기획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온전히 나만의 것’을 갖고 싶었던 박보람 대표가 론칭한 메누하. 외국에서 살 때 잦은 이사를 할 때마다 그녀를 위로해준 것은 엄마 냄새가 나는 노란 오리 인형이었다. 언젠가 위로와 치유가 되는 향을 만들고 싶었던 박보람 대표는 히브리어로 평안, 안식을 뜻하는 ‘메누하’란 브랜드를 론칭했다. 메누하에서는 박보람 대표가 을지로에 갔다가 반한 적동 용기에 향초와 방향석을 담아 선보인다. 시크한 금속 용기에는 문학,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로부터 영감을 얻은 향이 담겨 있다. 치자꽃을 늘 머리에 꽂고 노래를 부르던 빌리 할리데이의 애칭이기도 한 레이디데이 향처럼 말이다.
방향석은 오직 국내산 화산석만 사용하고, 향 주머니인 사셰도 수단에서 손으로 채취한 1등급 원료만 사용할 만큼 재료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개인적으로는 우디 계열 향인 미스터 리플리와 레이디데이를 좋아해요. 앞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카락에 머리를 파묻고 추억을 곱씹고 싶다고 말한 보들레르의 시를 닮은 향을 만들고 싶어요.” 박보람 대표는 런던 새빌로우의 슈트 브랜드처럼 오랜 시간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한 수공예적인 향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과 꼭 닮은 향초를 선보이는 메누하는 앞으로 다양한 사이즈의 적동 용기에 담긴 초와 사셰 등을 준비 중이다.

에디터 신진수 · 최고은│포토그래퍼 안종환 · 김잔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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