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프리츠커상의 메달은 반 시게루에게 돌아갈 것임이 이미 발표되었다. 그리고 지난 6월 치러진 시상식을 통해 건축과 인류애의 소통을 도모한 그의 노력은 재조명되었다.

↑ 독일 하노버 엑스포 당시 일본관. © Hiroyuki Hirai
건축 또는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도저한 삶의 무게를 거두어낸 후의 고급 취미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건축은 한번도 스스로 예술이기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삶과 인생의 성소였고, 때문에 긴 생명력을 보장받았으며 주변의 조화, 문화적인 배려, 이용자들의 호소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청해왔다. 1979년 제창된 프리츠커상은 이 같은 건축의 시원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최첨단, 고효율이라는 수사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과는 거리가 멀다. 한 사람의 세계관, 철학을 건축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인정받은 한 사람에게 루이스 설리반이 디자인한 동메달과 상금 1만 달러가 주어질 뿐. 그 명성에 비해 소박한 부상임에도 프리츠커상은 이미 건축가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면류관으로서 그 상징성과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2012년 중국의 왕슈, 2013년 이토 토요에 이어 올해에는 반 시게루 Ban Shigeru가 수상자로 지목됨에 따라 내리 3년째 메달은 아시아의 건축가를 흠모하고 있다.

↑ 콘테이너로 만든 임시 주거 공간. © Hiroyuki Hirai
하얏트 재단은 공식 성명을 통해 최근 25년간, 재난 현장을 돌아다니며 자원봉사자 건축가들과 함께 저렴한 소재, 쉬운 공법, 재활용 가능한 재질로 희생자들을 위한 은신처를 만들어온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지난 6월 13일 시상식 후, 반 시게루는 겸손한 소감의 변을 덧붙였다.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며 나는 이것을 계기로 더욱더 노력할 것입니다. 개인 저택이든, 재난구호 현장이든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입니다. 이 상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계속 정진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1 이탈리아 라퀼라에 세운 페이퍼 콘서트 홀. © Hiroyuki Hirai 2 반 시게루의 모습. © Shigery Ban Architects
유년 시절의 반 시게루는 목수였던 아버지의 공방에서는 매일 마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공방 장인들은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었고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들을 따라 옆에서 자투리 나무로 무언가 만들던 반 시게루는 훗날 목수를 꿈꾸었지만 11살, 그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만난다. 소박하고 작은 집을 드로잉한 것이 전교 최우수작으로 뽑히며 건축가라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4년, 건축가 반 시게루는 르완다 내전 현장에 있었다. 종이관을 이용하여 난민들을 위한 쉼터를 지을 것을 UN 난민사무소에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고베 지진, 일본 대지진 현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비영리단체인 VAN을 설립하여 지역의 건축가 자원봉사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했고 그들의 활약은 일본뿐 아니라 터키, 인도, 스리랑카, 중국, 뉴질랜드 그리고 최근에는 필리핀까지 재난으로 인한 회복이 필요한 현장에서 빛났다. 프리츠커상의 선정 위원들은 종이, 대나무, 선박 컨테이너 등 평범한 재료들에 혁신적인 발상을 더해 인간에게 필요한 궁극의 공간을 완성하되 건축 본연의 기능을 잃지 않은 그의 공적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밝혔다.

↑ 11995년 고베 지진 당시 피해 난민을 위해 지은 페이퍼 로그 하우스. © Takanobu Sakuma 2 2011년 일본 대지진 난민을 위해 만든 종이 파티션 시스템. © VAN
21세기 산업의 핵심 화두가 된 ‘지속 가능성’, 이는 반 시게루의 건축 세계를 함축한 단어이기도 하다. 재생, 재활용,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공통분모에 주목하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지속 가능성에 골몰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거의 30년 전입니다. 그때는 누구도 환경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죠. 언제나 저비용, 지역적인 재료, 재활용 가능한 소재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작업 방식이 저에겐 굉장히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1987년 겐조 탕게로 시작된 일본 건축가의 수상은 반 시게루까지 여섯 명.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넓게 보고 있는 그의 수상은 지금 건축이 가야 할 방향에 작은 지시등처럼 점멸하고 있다.

↑ 프랑스의 퐁피두 메츠 센터. © Didier Boy de la Tour

↑ 동경의 개인 주택인 커튼 월 하우스. © Hiroyuki Hirai
↑ 뉴질랜드의 카드보드지로 만든 성당. © Stephen Goodenough
편집장 노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