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든 쇼핑을 하든, 미리 경험한 사람들의 리뷰를 읽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처음 다녀온 <메종> 에디터들의 생생한 리뷰를 전한다.

버려진 창고에서 진행한 크바드랏/라프 시몬스의 전시.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었던 로사나 오를란디 갤러리.

재미있는 체험형 전시를 선보인 프라이탁.

안톤 알바레즈의 전시.

타다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아르마니 까사.
전시의 인상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몇 가지 전시를 꼽아본다. 일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 만찬’을 오마주하여 오래된 교회에서 전시했던 안톤 알바레즈 Anton Alvarez의 <The Last Wax>. 컨셉트에 어울리는 역사적 공간뿐 아니라 조도, 음악, 향기까지 완벽했다. 두 번째는 프라이탁의 <Unfluencer>. 귀여우면서도 음산하게 디스플레이된 공간에서 환경에 해를 끼쳤던 죄를 고백하는 체험형 전시가 브랜드의 방향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이 전시들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이번 시즌 유달리 멋진 신제품을 출시해서? 사실 예쁜 것은 당연하다. 밀라노는 세계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브랜드들이 신제품을 들고 나오는 곳이니 말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하나의 극과 같아서 주연이 되는 제품뿐 아니라 무대가 되는 전시장 등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져야 한다. 특히 장소가 주는 인상은 생각보다 무척 강렬한데, 시내 곳곳에서 진행된 ‘푸오리살로네’가 더욱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전시장 위주로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페어를 떠올려보았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처럼 역사적 유물에서 펼쳐지는 공예전이라든지, 을지로의 허름한 건물 한 채를 빌린 가구 전시도 멋질 텐데 말이다. 얼마 전 운경고택에서 진행했던 <차경-운경고택을 즐기다>는 그 모범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물론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모두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단순히 제품만 늘어놓은 디스플레이형 전시장이나 수많은 컨셉트를 무리하게 끼워 맞춰 기획한 브랜드 혹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자신만의 해석으로 읽어내야 하는 난해한 전시 등 희미하게 기억되는 전시도 많았다. 한정된 기간에 많은 전시를 보다 보면 좋고 나쁨의 기준이 또렷해진다. 어찌 보면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획자들이 꼭 찾아야 할 페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밀라노라는 도시 전체를 감각적인 축제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밀라노 디자인 위크처럼 서울도 그렇게 멋진 전시를 선보일 날을 상상해 보았다. 분명 머지않았다고 확신한다. editor 문은정

휘황찬란한 컬러와 패턴으로 무장한 구찌 데코의 인테리어 컬렉션.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총괄 아래 완성된 까시나의 쇼룸. 시대를 아우르는 거장 디자이너의 제품으로 가득 메웠다.

콜롬비아 장인의 손길로 완성된 형형색색의 가구 및 소품을 선보인 마르니.
오래 남을 기억
에디터는 영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공부하는 4년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파리 포토, 밀라노 엑스포,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은 가보았지만,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그 존재조차 몰랐다. 처음 가본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예술학과 공부를 한 내가 4년간 무얼 하고 지냈나 하는 의문이 들 만큼 놀라웠다. 5박6일간 수많은 전시를 챙겨 보느라 발에 불이 날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아무리 멋진 전시라지만 지치는 순간은 찾아왔다. 하지만 또 어느새 무궁무진한 디자인 세계에 감탄하며 핸드폰 셔터를 정신없이 눌러대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고통도 잊어버렸다. 매년 4월에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물론 신진 작가와 학생, 글로벌 기업까지 몰려든다. 한 해를 선도할 디자인 트렌드가 예고되며 각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컬렉션을 누구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기 때문. 파올라 나보네, 로사나 오를란디, 하이메 아욘, 마르셀 반더스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전시장에서 마주할 수 있었는데, 디자인 축제를 함께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전시 중에서도 가장 취향 저격했던 전시는 듀리니 스트리트의 까시나 쇼룸에서 진행된 <Cassina The Perspective>와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구찌 데코의 전시 그리고 마르니의 <Moon Walk>였다.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Pierre Jeanneret, 로돌포 도르도니 Rodolfo Dordoni, 부훌렉 형제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으로 공간을 가득 메운 까시나의 전시는 지금까지도 핸드폰 배경화면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구찌에서 선보인 데코 전은 패션 브랜드의 홈 컬렉션 중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는데, 역시 구찌만의 화려한 패턴과 색감, 소재에 거듭 감탄했다. 마치 우주 세계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의 마르니 <Moon Walk>전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상상 속 또 다른 차원이라는 올해의 트렌드와도 부합하는 듯했다. editor 원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