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망통은 당대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사랑을 받았던 도시다. 남프랑스의 호젓하고 럭셔리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는 에일린 그레이의 빌라 E1027도 있다.

©Manuel Bougot, ADAGP Paris 2015, Capmoderne
망통 Menton에 위치한 레스토랑 ‘미라주르’가 2019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망통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프랑스 니스와 모나코보다 더 동쪽, 이탈리아 국경에 근접한 이 작은 도시는 교통이 발달한 화려한 대도시는 아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조금 더 고급스럽고 한적한 남프랑스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이들의 특별한 애정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도 에일린 그레이 Eileen Gray(1878~1976)의 빌라 E1027은 방문하기 쉽지 않은 곳에 있지만, 예술을 사랑한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망통 최고의 명소로 손꼽을 만하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컬렉터 자크 두세의 집 인테리어를 도맡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감각이 있는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겨루기보다는 은둔을 택한, 그래서 실은 잊혀졌던 여성 디자이너이다. 적어도 그녀의 의자가 이브 생 로랑의 사후 경매에서 무려 400억에 팔리며 재조명을 받고, 퐁피두 미술관과 모마 MoMA에서 회고전이 이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망통에 있는 에일린 그레이의 빌라 E1027. 방수천을 두른 테라스와 작지만 효율적인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Manuel Bougot, ADAGP Paris 2015, Capmoderne
망통 해변의 언덕 위, 차도 닿지 않는 곳에 직접 인부들과 함께 손수레로 짐을 옮기며 완성한 하얗고 아름다운 별장은 작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다용도의 가구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발현된 곳이다. 특히 배의 난간에서 볼 법한 방수천을 두른 테라스가 압권이다. 배의 형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배를 탔을 때의 느낌을 눈높이와 감각으로 재현한 것이다. 연하의 남자친구 장 바도비치와 조용히 지내기 위해 이름도 둘의 이니셜을 따서 E1027이라고 지었지만, 장 바도비치는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며 연일 이곳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중에는 그레이의 허락도 없이 실내에 그림을 그려 그녀를 분노하게 만든 당대에도 이미 유명했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있었다. 그레이는 결국 이 집을 떠났고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929년 이 집을 완공하고 그녀가 이곳에 머물렀던 기간은 실로 2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후 이곳에 남기로 결심한 이는 흥미롭게도 르 코르뷔지에였다. 바다가 없고 몽블랑 산을 보며 자란 스위스 출신의 그에게는 드넓은 바다와 따사로운 햇빛이 있는 망통은 그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도시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건축의 모습을 모두 구현한 빌라 E1027이 있었다. 필로티, 긴 창문, 개방된 공간,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구성! 르 코르뷔지에는 마치 이 집의 문지기를 하듯 빌라 바로 위에 4평짜리 오두막을 짓고 이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 유명 건축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궁핍했기에 식당 주인에게 캠핑장을 마련해주고 식당 옆에 작은 땅을 얻어 지은 집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곳에서 에일린 그레이를 쫓아냈지만, 덕분에 두 대가의 아이디어를 볼 수 있는 멋진 문화적인 명소가 네 개나 모이게 되었으니 그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Manuel Bougot, ADAGP Paris 2015, Capmoderne

©Manuel Bougot, ADAGP Paris 2015, Capmoder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