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기존의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이번 밀란 디자인 시티에서 베단 로라 우드가 선보인 모든 작품은 그녀가 오래도록 고민해온 가치가 자신만의 표현으로 표출된 결과나 다름없다.
컬러디스크를 들고 포즈를 취한 베단 로라 우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위스테리아 샹들리에
베단 로라 우드 Bethan Laura Wood는 화려한 컬러 조합과 패턴 그리고 비정형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굳건히 자신만의 세계를 다져왔다. 하지만 단순히 표면적인 화려함을 내세우는 것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다양한 소재를 탐구하고 적합한 색과 형태를 찾아내기 위해 수십 가지의 조합을 거듭 고민하며 찬찬히 작품을 매만지는 노력이 있었다. 그 결과, 스위스 로잔 현대 디자인 미술관과 런던의 ICA, 서펜타인 갤러리 등에서 베단 로라 우드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CC-타피스, 에르메스를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으며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행보는 이번 밀란 디자인 시티에서도 이어졌다. 닐루파 갤러리에서 진행된 전시 <It’s All About Colour>에서 화려한 빛을 내뿜는 조명의 빛으로 공간을 화려하게 수놓았을 뿐 아니라 과감한 협업을 통해 색다른 인상의 테이블웨어를 선보였다. 화려한 패턴의 텍스타일과 붉은 연지곤지로 제 색을 확연히 드러내는 그녀는 아직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많은 듯했다.
알루미늄 가지에 달린 다채로운 색의 꽃과 잎. ⒸMattiaiotti
장식적인 면모와 색을 강조한 오브제. ⒸMattiaiotti
가구나 조명부터 조각, 텍스타일까지 다양한 범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디자인 영역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굳이 한계를 두지 않는 편이다. 늘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과 낯선 재료를 활용하는 탐험을 즐긴다. 전통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낡고 고루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은 싫다.
이번 밀란 디자인 시티에서 닐루파 갤러리와 함께 <It’s All About Colour> 전시를 선보였다. 어떻게 닐루파 갤러리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
닐루파 갤러리와는 2011년부터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왔다. 갤러리 설립자인 니나 야사르 Nina Yashar가 나의 MA 쇼 작품이었던 하드록 Hard Rock을 구입하면서부터다. 그 후 그녀가 본격적인 협업을 제안했고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왔다. 이번에는 장식적인 측면이 극대화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더구나 이번 전시의 핵심이 ‘색’이었던 만큼 화려한 장식에 다양한 색까지 더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위스테리아 샹들리에 Wisteria Chandelier와 투티 프루티 거울 Tutti Frutti Mirror 등의 작품은 이러한 결합의 결과물이다.
전시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한 것은 단연 등나무로 제작된 위스테리아 샹들리에였다. 다채로운 색의 꽃으로 표현된 조명이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정확히 봤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유리공예를 선보인 에밀 갈레 Émile Gallé의 작품과 중세 시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 위스테리아 샹들리에다. 중앙에 설치된 조명과 곁가지처럼 피어나는 꽃 장식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여러 색이 중첩되며 화려한 빛을 발산한다. 다양한 갈래로 난 알루미늄 소재의 가지에 달린 꽃을 각기 다르게 연출하기 위해 모든 꽃을 일일이 염색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다채로운 빛과 아래로 지는 그림자의 이색적인 조화를 연출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샹들리에와 함께 선보인 투티 프루티 거울. ⒸMattiaiotti
까시나, 베니니와 협업해 제작한 컬러디스크.
아시아를 여행하며 얻은 영감으로 제작한 체인.
까시나, 베니니와 함께 콜라보레이션한 컬러디스크 Colourdisc도 이번 밀란 디자인 시티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컬러디스크는 색감이 돋보이는 테이블웨어를 제작해달라는 까시나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베니니였다. 베니니의 글라스 제품은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유리가 지닌 고유의 영롱함과 은은한 발색이 돋보인다. 베니니만의 그런 특징을 활용하고 싶었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었나?
까시나가 꾸준히 쌓아온 아카이브와 베니니의 유리공예에서 드러나는 디테일을 조화롭게 섞는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바로 위성이다. 묵직한 황동 소재의 도기를 행성으로 두고 그 주위를 둘러싼 원형의 유리를 배회하는 위성처럼 보이게 배치했다. 유리 속에는 각기 다른 두 가지 컬러를 주입해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다른 색의 빛이 컵에 맺히도록 했다. 마치 만화경처럼 다양한 빛깔이 컵 표면에 구현되도록 말이다.
비정형적인 형태와 다채로운 색의 변주는 당신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디자이너는 수많은 소재 중 하나를 골라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고,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디테일에 대해 고민하거나 재료가 지닌 본연의 특질을 다시 한번 들춰보기도 한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모양과 색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령 색에 있어서 갈색이라고 표현되는 것에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지 않나. 나는 어떻게든 그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힌 다음 활용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못하는 것은 과감히 비워둔다. 내가 비워둔 공백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새롭게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로 바뀐다. 나는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작품의 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영감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
어디에서나! 모든 것은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낯선 나라와 도시를 자주 방문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작년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을 위해 운 좋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파이프가 가득한 거리부터 컴퓨터 부품이 쌓여 있는 곳까지 발길이 닿았다. 아직도 그곳에서의 인상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신세계 같았다. 지금 전 세계에 닥친 거대한 재앙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물론 이번 행사 역시 다채로운 영감으로 가득했다.
이번 밀란 디자인 시티에서 인상 깊게 본 전시나 제품이 있는가?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열렬한 팬이다. 다행히도 이곳에서 그녀가 새롭게 선보인 뮤탄트 세라믹 타일 컬렉션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까시나 쇼룸을 방문했을 때 만난 지아코모 발라 Giacomo Balla의 스크린이다. 신선한 색 배합으로 면을 채운 그의 작품은 내게 또 다른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할 만큼 큰 충격을 안겨줬다.
차기작에 대한 소식도 궁금하다.
코로나19가 세계를 집어삼키기 직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마주한 여러 사찰 건축을 유심히 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건축양식과 탑, 도기에 매료되었다. 다음으로 선보일 작업은 이런 소재를 기반으로 하지 않을까 싶다. 원더글라스를 위해 디자인하는 체인 스케치에서 그 시작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