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노르딕이라는 장르에 더한 발효가 만든 층위. 대지와 자연,
시간의 결을 품은 마테르 김영빈 셰프의 이야기.

마테르의 요리는 한 가지 장르로 귀결되지 않는다. “어느 카테고리와 장르에 속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양식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고, 아시안이나 한식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어요. 사실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거죠.” 노르딕의 자연스러움과 아시안의 풍미, 발효가 만드는 시간의 깊이가 한 접시 안에서 결합되는 마테르의 요리는, 단일한 장르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낯선 조합은 손님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생각보다 김치를 찾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연령대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고요.” 특정 세대나 카테고리를 겨냥하지 않음에도 이곳의 요리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마테르를 관통하는 주제인 ‘발효’에 있다. 자극적인 요소를 줄이고 발효의 산미와 편안한 소화를 바탕으로 한 맛의 구조는 어떤 설명보다도 먼저 혀에 와 닿는 것이다.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영빈 셰프는 대학에서 요리의 기본기를 다지던 중 군 입대를 하게 된다. 군 복무를 마친 후 호주로 건너가 시드니의 아리아 Aria와 마스터 다이닝 Master Dining 등에서 실전을 쌓았다. 그중에서도 마스터 다이닝은 그가 지금의 방향성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스토랑이다. 아시안 풍미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노르딕의 절제된 구조를 따르는 플레이팅의 조합은 세프에게 새로운 기준을 선사했다. 이후 그는 수셰프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경력을 쌓으며 지금의 마테르를 구성하는 핵심 감각을 축적할 수 있었다. 다음 행선지를 덴마크로 정하게 된 계기는 팝업을 위해 시드니를 방문한 노마 팀을 만나면서였다. 김영빈 셰프는 노마의 시스터 레스토랑 108과 노마 퍼멘테이션 랩에서 근무하며 요리의 서사와 발효에 관한 감각을 본격적으로 익혔다.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셰프가 요리를 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이 요리에 어떤 스토리가 담겼는가’예요. 코스 전체에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반영해 각 요리를 구성하죠. 제가 덴마크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도 이런 스토리텔링이에요. 농장을 방문해 직접 따온 허브나농부들에게서 받은 재료를 요리에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이해시키는 거죠.”




마테르는 라틴어로 ‘대지의 어머니’, ‘자연의 어머니’, ‘시간의 어머니’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영빈 셰프가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간의 어머니’, 즉 발효다. “발효는 시간이 주는 산물이잖아요. 음식 맛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발효가 주는 산미라고 생각해요. 산에서 나오는 감칠맛을 잘 끌어올리고 밸런스를 잘 활용하면 재미있고 맛있는 요리가 탄생하거든요.” 그래서 마테르의 요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요리에 직접 만든 발효물이 들어간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데에 비해 알아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도, 미식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하는 숙제라고 생각해요. 아시안 노르딕이라는 생소한 장르가 우리나라에 잘 자리잡아 다음 세대에서 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제가 뭐라도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마테르의 또 다른 의미인 ‘대지의 어머니’와 ‘자연의 어머니’ 역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다. “기후 위기로 작물이 영향을 받으면 우리 식탁까지 위협받게 돼요. 지금 한식이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식자재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면 그 문화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메뉴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1차 산업이 흔들리면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에요.” 김영빈 셰프가 요리를 단순한 메뉴 구성의 차원에서 보지 않고, 식재료와 산업의 구조까지 포함한 다각적 관점에서 식문화를 바라보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사실 파인 다이닝이라는 산업이 엄청난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보니, 직원들이 더 안정적이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주고 싶죠. 올 한 해 인력 충원을 해 직원이 거의 두 배로 늘었는데,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마테르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발효가 시간을 견디며 힘을 품어가듯, 마테르 또한 한걸음씩 정진하며 스스로의 방향을 정립해가고 있다. 오로지 ‘시간이 만든 맛’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단일한 믿음을 품은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