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베그너의 탄생 100주년이었던 올해, 한스 베그너의
생애 및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업적을 조명하는 디자인 뮤지엄 덴마크의 전시 `Wegner-just One Good Chair`를 다녀왔다.
2014년은 덴마크의 대표적인 가구 디자이너 한스 베그너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2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의 영향으로 새로운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의 인더스트리얼 가구가 덴마크에서 인기를 얻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캐비닛 메이커(가구 전문 제작자)들은 길드를 조직해 매년 박람회를 열고 신제품을 발표하며 자국 가구 산업의 꾀했다. 또 1950년대 전 · 후반 신흥 강국이었던 미국이 전통적인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제품을 찾고 있을 때 마침 덴마크의 가구 디자인이 눈에 띄었고 미국 시장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베그너의 라운드 체어 ‘The Round Chair’는 바로 그 계기가 된 제품이다.
↑ 디자인 뮤지엄 덴마크에서 진행 중인 한스 베그너 전시. ⓒ Designmuseum Danmark.
1960년 대통령 후보 닉슨과 케네디의 TV 토론회 당시 앉았던 의자가 한스 베그너의 라운드 체어임이 알려지며 미국에서 덴마크 디자인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앉았을 때 편안한 것은 물론 가볍고 견고하며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라운드 체어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완벽한 의자의 대명사인 ‘The Chair’로 불렸다. 베그너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캐비닛 메이커, 즉 가구 전문 제작자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제품의 프로토 타입을 직접 제작할 만큼 가구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깊었으며 이로 인해 보기에만 아름다운 디자인이 아닌 앉았을 때에도 편안한 제품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베그너의 제품에 쏟아지는 주문량은 한 캐비닛 메이커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덴마크 가구 디자인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한스 베그너의 제품만을 제작하기 위한 캐비닛 메이커 연합 회사인 ‘살레스코 SALESCO’가 설립됐고 칼 한센&선(의자 제작), 안드레아스 툭(테이블 제작), AP 스톨렌(패브릭 업홀스터리) 등 5개의 메이저 캐비닛 메이커가 주축이 돼 한스 베그너의 가구를 만들었다.
↑ 케네디가 후보 시절 TV 토론회 때 앉았던 ‘라운드 체어’. ⓒ Designmuseum Danmark.
베그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대하는 그의 사상과 철학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좋은 디자인은 소수의 특정 계층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다수의 대중 또한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베그너도 노동력의 집약과 장인 정신의 한계를 요하는 디테일을 지닌 고가의 가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베어 시리즈로 잘 알려진 파파베어가 그 한 예다).
그러나 때때로 제작 공정 중 일부는 기계 작업이 가능하도록 고안해 가격대를 낮춰 좋은 디자인을 접하는 문턱을 낮출 수 있도록 했다. 이에 관한 일화는 ‘위시본 체어’ 혹은 ‘와이 체어’로 불리는 제품의 탄생에서 볼 수 있는데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더 체어’는 제작 공정 때문에 고가의 가격대를 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살레스코의 디렉터였던 콜 크리스티안슨은 ‘더 체어’와 디자인적인 맥락은 같지만 대량생산이 가능한 제품의 디자인을 제안했고 그래서 탄생한 제품이 바로 ‘위시본 체어’이다. 칼 한센&선에서 생산한 위시본 체어 제작비는 당시 ‘더 체어’ 제작비의 5분의 1수준이어서 디자인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가구로 볼 수 있었고 이런 점이야말로 실용성을 추구하는 덴마크인들의 국민성에 가장 부합한다. 베그너를 가장 덴마크다운,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디자인 민주주의를 꿈꿨던 한스 베그너.
이러한 그의 디자인 사상은 절친한 사이였던 동갑내기 동료 디자이너 뵈게 모언슨과도 뜻을 같이했다. 디자인 뮤지엄의 베그너 전시장 곳곳에서는 생전에 찍은 둘의 사진, 일화, 협업 제품 등을 통해 두 거장이 뜻을 같이했던 디자인 사상 및 개인적인 우정에 관한 여러 자료를 접할 수 있다.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뵈게 모언슨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주목을 받았던 가구 전시 또한 디자인 뮤지엄에서 볼 수 있었다.
1 미니 베어란 애칭이 있는 이지 체어 AP215. 2 파파베어 의자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오리지널 풋 스툴. B3 기존 파파베어보다 크기가 크고 묵직한 디자인의 뉴 파파베어.
〈Wegner-just One Good Chair〉 전시장에는 그의 초기작부터 대표적으로 알려진 의자들, 오리지널 드로잉 스케치와 모델링 제품,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을 비롯한 약 150점의 전시품을 만나볼 수 있다. 현재에도 생산되고 있는 약 50점의 의자가 별도로 마련돼 관람객들이 직접 앉아보며 체험해볼 수도 있다. 전시는 베그너의 생일인 4월 3일에 오픈했고 올해 12월 7일까지 계속된다. Designmuseum, Danmark Bredgade 68, 1260 København K
글 김종원(모벨랩)│에디터 신진수│포토그래퍼 신국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