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국내 리빙숍에 갈증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주목하길. 개성 있는 가구와 소품, 예술 작품을 한데 모은 유러피언 라이프스타일숍 ‘보에’가 오픈했기 때문이다.

↑ B동 입구를 장식한 글라스 이탈리아의 스탠 바이 거울. 주변의 공간을 리플렉션해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울 옆으로는 피파룩 레이크의 작품 ‘위브’가 걸려 있다.
논현동 이면 도로에 정겨운 붉은 벽돌 건물이 들어섰다. 이곳이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이철 헤어커커’의 이철 대표가 드디어 공개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보에 BOE의 첫 번째 숍. 지구의 숨결, 즉 ‘Breath of Earth’의 두음을 따서 보에 BOE라고 명명한 이 공간은 이철 대표의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 정겨운 붉은색 벽돌로 단장한 보에 입구.

↑ A동은 높은 천장고로 개방감이 느껴진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자동문을 지나 들어서는 순간, 글라스 이탈리아 Glas Italia와 라스빗 Lasvit의 제품들이 투명한 인사를 건넨다. 여유로운 공간에 유영하듯 놓인 제품의 존재감이 바깥의 소란함을 조용하게 빨아들인다. “직업상 누구보다 거울 볼 일이 많았어요. 거울은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 동시에 내면을 비추는 매개체라고 생각해 독특한 거울을 하나 둘씩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거울 수집을 시작하면서부터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졌어요.”

↑ 파울리스타노의 오브젝토 체어와 하이만 에디션의 웨이브 테이블로 연출한 라운지.

1 보에의 입구. 라스빗과 글라스 이탈리아 제품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2 영국 스퀸트의 더 리젠시 미러로 장식한 벽.
이철 대표가 리빙과 인테리어에 조예가 깊은 건 그간 심심치 않게 들어왔지만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국 200여 개의 매장 가운데 150개까지는 제가 일일이 관여하고 책임지면서 인테리어를 해왔어요. 그 안에서 쌓은 노하우를 무시할 수는 없겠죠.” 상업 공간을 분할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인지, 사용자들의 요구를 어떻게 녹일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이 이제야 보에라는 결실로 드러났다.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제게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누구냐고 묻곤 해요. 그런데 대표님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행에 옮겨진 것뿐이거든요.” 홍보담당자 박가영 씨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며 행복한 고달픔으로 웃었다.

↑ 디자이너 헬레나 다브야노바의 마이 디어 플로어 램프.
보에는 이철 헤어커커의 교육장으로 사용되던 2개의 건물을 대대적인 레노베이션 끝에 변모시킨 것으로 건물은 A동과 B동으로 나뉜다.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A동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다. 아트 가구 전시회에 온 듯한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입구는 넓은 천장고를 살려 시원한 공간감을 살렸다.

↑ PP 뫼블러의 플래그 핼야드 라운지 체어 주변으로 풀포의 오다 램프와 신비로운 느낌의 알카롤 앵커 테이블을 배치한 공간.
A동의 지하와 B동은 기존 집의 일부였던 거친 물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자칫 어두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는 벽 패널을 만들고 색을 입혀 산뜻한 느낌을 부분적으로 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기존에 분할되었던 공간에 가구를 놓음으로써 쇼룸이지만 집 안에서의 조화를 가늠할 수 있는 장점도 생겼다. 신중하고 면밀하게 준비해온 이 공간은 충분한 자본만으로 혹은 화제 몰이에 성공하고 싶은 얕은 심산으로 마름질할 수 있는 차원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으로 다듬어진 안목을 인정하게 되는 공간인 것. “해외에서 열리는 각종 리빙 페어를 매년 참관하면서 다양한 브랜드의 가구와 소품을 접했어요. 박람회장뿐 아니라 도시 곳곳의 갤러리를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은 과감하게 선택했고요. 글라스 이탈리아의 경우, 2년 전부터 보에와 계약할 것을 약속했던 브랜드예요.”



↑ 핀 율의 원 컬렉션을 소개하는 B동 2층. 핀 율의 대표 가구인 치프테인 체어와 포엣 소파, 아이 테이블과 펠리칸 소파를 만나볼 수 있다.
유러피언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보에의 컬렉션은 퍼니처, 라이프스타일, 아트 컬렉션 등 3개의 섹션으로 총 30여 개의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중 컨템포러리 글라스 전문 브랜드 글라스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디자인 브랜드 보카 도 로보, 로산나 오를란디 에디션의 알카롤, 체코의 조명 디자인 그룹 라스빗은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는 브랜드다. 이외에도 프리츠 한센과 칼한센&선, 에뮤 그리고 덴마크와 체코 출신 디자이너들의 예술 작품들을 선보인다. “보에는 오브제로 활용도가 높은 가구와 소품이 많습니다.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상업 공간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제품들을 제안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철 대표의 말대로 언뜻 보면 파리 뒷골목의 갤러리를 연상케 하지만 예술적인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핀 율의 원 One 컬렉션을 더하면서 쇼룸은 역사성까지 아우르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 아담한 갤러리에 놓여 있는 듯 보이는 개성 넘치는 가구들. 이철 대표가 고른 순 살롱의 루벤스 소파와 무지갯 빛을 내고 있는 글라스 이탈리아의 커피 테이블과 수납장 위에 올려 놓은 풀포의 수납함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컬렉션과 독특한 미감의 공간을 품은 보에. 리빙숍과 갤러리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이곳이 리빙, 디자인에 목마른 유미주의자들에게 성지로 남을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