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chitectur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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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이브러리, 게스트하우스, 학교 그리고 재생건축을 위한 동네 건축까지,각자의 타이틀은 다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건축에 발을 들여 놓고 즐길 일만 남았다.

사람이 모이는 건축
2014 서울시 건축상, 2015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 상을 연이어 수상한 지음재 건축의 이재성 소장.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에디터 최고은 | 포토그래퍼 안종환(인물) · 진효숙(건물) 

 

 

↑ 지음재 건축의 이재성 소장.



↑ 전동식 루버로 채광량을 조절하는 기능과 조형적인 면을 모두 겸비한 서우재. 

 

먼저 대표작인 서우재에 관한 설명해달라.
상서로운 집을 뜻하는 서우재는 아래층에 커피숍 등 상가, 위층에 업무 공간, 가장 꼭대기에는 옥상정원을 가진 펜트하우스, 지하에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구성된 곳이다. 도시에서 이런 구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복합 건물의 모델이다. 입면에는 적삼목으로 만든 전동식 루버가 설치되어 있는데, 일광을 조절하고 건물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조형적인 역할을 한다.

서우재 안에 미디어 갤러리를 마련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하의 선큰 가든과 이어지는 갤러리 공간은 건축가, 예술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전시나 공연을 하는 무대로 계획했다. 그리고 그 시작을 미디어 아트로 연 것이다. ‘미러 도어 파사드 실링 월 선큰 Mirror Door Facade Ceiling Wall Sunken’은 서우재의 건축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영화적 기법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갤러리 공간에서 선큰 가든 반대편에 있는 거울로 자기 모습과 영상이 함께 비춰지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간을 경험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고 싶었다.

설계할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은?
나는 사람들이 시각적,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의 정서적인 면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우재의 1층 필로티 공간을 선큰 가든과 연결하고 서편재의 외부 발코니 계단을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편재의 외형은 직물을 짜놓은 것처럼 루버를 만들었는데 서우재와 마찬가지로 건물에 조형성을 강조하면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한다. 

 

 

 

↑ 지하 선큰 가든과 연결된 미디어 갤러리.  

회화를 전공하다가 건축으로 전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 때는 반 고흐처럼 자기 세계를 갖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럽 여행을 갔다가 건축과 도시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엮어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더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무엇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것도 멋지지만 건축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일반인에게 건축은 여전히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다. 이 문턱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건축이 학술적 영역에 머물거나 건물이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건축물은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는 동시에 그 건축물을 이용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따라서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건축을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건축 전시회나 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건축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건축 문화가 한층 성숙해지라라 믿는다.

당신에게 공간이란?
공간은 영어로 스페이스 space다. 이는 공간 자체의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라 그 안에 꼭 사람이 있어야 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부재한 건축물은 조형물 이상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해 공허하다. 건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공간이기보다는 장소, 즉 플레이스 Place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건축이 사람을 위한 공간인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화동에 살으리랏다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담금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새 옷을 입은 공가 公家들이 또 한 번 이화동의 역사가 되어간다.
에디터 신진수|포토그래퍼 안종환 

↑ 배오개의 동그란 원형 창을 통해 본 적산가옥의 지붕과 서울 시내. 

1 해주 지역의 백자를 창문에 연출해 화사한 아름다움을 건넨다. 2 부엌 관련 도구를 전시한 배오개.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과 이화동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2010년에 시작한 이화동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운 박물관이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이화동의 재생은 계속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에서 인터뷰할 때마다 말했는데 더 할 말이 있나요. 그냥 좋으니까 계속하게 되는 거죠. 내가 시골 출신이거든요. 회귀본능처럼 자꾸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이화동은 또 다른 고향이 됐죠.” 최근 이화동 프로젝트로 몇 개의 박물관이 더 생겼고 얼마 전에는 <이화동 마을박물관 2015> 전시도 성황리에 마쳤다. 비어 있는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되 모두 이화동과 관련이 있는 ‘마을’ 박물관이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나. 여전히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최홍규 관장이 ‘마을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을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건축계의 화두 중 하나인 ‘재생 건축’. 말 그대로 건축을 위해 건물을 부수기보다는 기존 건물을 되살려 새로운 건축으로 탈바꿈하자는 취지다. 폐광이나 문을 닫은 병원, 버려진 공장 등을 개조해 다시 쓸모 있는 역할을 부여하고 지역을 되살려보자는 넓은 의미도 지니고 있다. 최홍규 관장에게 재생 건축은 건물 하나하나가 아니라 마을 전체인 셈이다. “이번에 새로 문을 연 박물관이 몇 개 돼요. 

1 이화동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애정을 쏟고 있는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 2 와인 오프너 전시 겸 카페로 활용하고 있는 개뿔. 

1 성곽의 돌과 똑같은 돌로 마감한 개뿔의 화장실. 2 개뿔에서 전시하고 있는 다양한 빈티지 와인 오프너. 

↑ 비어 있는 집을 개조하고 보수해 생명이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배오개. 

최근에는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 ‘개뿔’이 나와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죠. 부엌 박물관인 ‘배오개’, 대장간의 느낌을 살린 ‘풀무아치 공방’, 나의 본업이 이뤄지는 ‘최가철물점’, ‘이화동 갤러리’ 등이 문을 열었어요. 대부분 폐가이거나 이사를 간 집이었지요. 형태는 그대로 살리되 내부는 각기 다른 분위기로 재탄생시켰어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위쪽 개뿔에서부터 한 걸음씩 내려오기로 했다. “개뿔의 내부에는 와인 오프너를 전시하고 있고 외부는 작은 앞마당과 2층 테라스를 카페처럼 활용하고 있어요. 이번에 오픈한 곳은 아니지만 적산가옥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곳이죠. 화장실 벽이 돌로 마감돼 있는데 성곽의 일부였단 이야기도 있고 성곽을 짓고 남은 돌을 가져와 붙였다는 설도 있답니다.” 적산가옥은 적의 재산이라는 뜻.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도성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화동에 일본식 가옥을 짓기 시작했고 개뿔은 그 잔재를 보여주고 있다. 곳곳에 수납공간이 숨어 있으며 심지어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뉘일 정도의 다락 공간도 있었다.

↑ 이화동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마을박물관. 주민들의 기증품으로 이화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 최홍규 관장의 본업이 이뤄지는 이화동대장간.

1 마을의 중심이 되는 오디 나무 밑 평상과 작은 텃밭. 2 이화동은 오래된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동네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배오개’다. 부엌 박물관인 이곳은 지금 집으로 사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모던하고 단아하다. 해주에서 나온 백자 도자기와 과거에 부엌에서 사용했던 석쇠나 장 단지 등을 전시했는데 실제 부엌처럼 공간을 꾸미고 창가에 관련 도구를 발처럼 매달아 어찌 보면 아늑한 레스토랑 같기도 했다. 이화동 마을 프로젝트의 집들은 모두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조금씩 그 특징이 다르다. 배오개는 잔디가 깔린 마당을 가지고 있는 참한 모습의 박물관으로 촬영 날의 흐린 날씨와 유독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배오개의 바로 옆집은 ‘이화동 갤러리’다. 아직 내부를 완성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갤러리 공간으로 활용해 다양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벽화마을에서 돌계단으로 끝까지 올라왔다면 마주할 수 있는 텃밭과 평상이 놓인 마을의 중심, 이곳에 마을박물관이 있다. 마을 프로젝트의 본부와 같은 곳으로 이곳 역시 주민들의 참여로 꾸며졌다. 이화동 주민들로부터 오래된 물건을 기증 받아 꾸민 생활형 박물관으로 이화동 주민들의 과거 모습을 사진을 통해 감상할 수 있고 주민들의 인터뷰와 소개 영상도 볼 수 있었다. 표시된 전화번호 다이얼 전화기를 돌려 걸면 마치 전화 통화를 하듯이 수화기와 앞에 마련된 화면을 통해 이화동과 관련된 인사들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는 코너도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1,2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주민들의 그림, 과거에 이화동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기증 받아 완성한 생활 박물관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골목을 지나 풀무아치 공방에 다다랐다. 풀무아치는 대장장이를 일컫는 말로, 옛날에 기물을 들거나 당기기 위해 만들었던 들쇠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아 대장간의 느낌을 살렸다. “들쇠 모양도 모두 다르죠. 거북이, 새, 박쥐 등 미신적인 의미로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사용하곤 했어요. 실제로 2층에는 금속공예가 홍석진이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박한 느낌의 박물관이이에요.” 성곽 쪽으로 다시 돌아가다 보면 최홍규 관장이 운영하는 최가철물점이 나온다. 이곳은 철로 만든 닭이 지붕에 멋스럽게 자리 잡은 ‘지붕 위의 장닭 갤러리’와도 이어진다.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끌, 망치 등의 도구를 작품처럼 전시해 대장장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갤러리 공간이다.  

1 철로 만든 장닭이 멋스럽게 장식된 ‘지붕 위의 장닭’ 갤러리. 2 최홍규 관장은 자투리 공간 하나에도 아끼는 소장품을 두어 장식했다.  

1 다이얼 전화기를 통해 이화동을 아끼는 인사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다. 2 지붕 위의 장닭 갤러리에서는 대장간 도구를 전시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다시 돌아온 마을박물관 평상에는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더위에 지친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떨어진 오디나무 열매를 먹기 위해 새들이 짹짹거렸다. 생활 터전이 건축의 힘으로 얼만큼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이방인임에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화동만 한 동네가 없어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여기에 집을 지은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까. 풍류와 부의 상징이었던 이곳이 낙후된 동네로 인식돼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단지 빈집을 사들여 박물관을 만들고 수익을 얻자는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거예요. 마을 전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서울에 이렇게 좋은 동네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죠.”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기에 불어오는 바람도 거칠 것 없이 평상 위로 스쳐갔다. 대장장이인 그는 철을 다듬고 두드리는 인내의 마음으로 이화동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재생 건축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없이도 이화동은 서울에서 가장 생기 있는 동네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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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환,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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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rchitectur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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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이브러리, 게스트하우스, 학교 그리고 재생건축을 위한 동네 건축까지,각자의 타이틀은 다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건축에 발을 들여 놓고 즐길 일만 남았다.

시간을 축적한 건축
오랜 시간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었던 전분공장이 새 옷을 입었다. 전분공장의 증기터빈 대신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카페, 엔트러사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 

 

 

↑ 입구에 만든 야외 공간. 과거에 만들어진 수로를 화단으로 사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 바와 휴식터로 나누어진 내부 모습.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위치한 카페 엔트러사이트는 과거 제주의 고구마 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부르는데 삼각형 건물 두 채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붙어 있는 이곳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제주 전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로 전분을 만들었던 감저공장이었다. 595㎡의 내부에는 시대별로 사용했던 손때 묻은 증기터빈 원동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어 과거의 영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랜 시간 버려져 있던 공장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합정동 당인리 발전소 앞에 위치한 신발공장을 개조해 카페 ‘엔트러사이트’를 만든 김평래 대표다. 서울에서 함께 일했던 매니저 박성희 씨의 도움으로 공장 터를 발견하고 함께 카페로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 지난가을. 5개월간의 공사 끝에 새 옷을 입은 카페는 오래된 것이 새롭게 보일 정도로 개성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건물 주인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존재했던 이 건축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서까래부터 고장 난 컨베이어 벨트와 낡은 대문 등이 방치되어 있어 마치 고물상과도 같았어요. 나 홀로 예쁜 건축물보다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담긴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쇠붙이.  

 

 

1 노출된 서까래 아래로 채반을 활용해 만든 테이블과 철제 의자가 놓여 있다. 2 제주에서 자라는 고사리류와 식물을 심은 화단. 덕분에 어둑한 실내는 한층 밝아 보인다. 

 

 

↑ 두 개의 건물이 쌍둥이처럼 이어져 있는 외관. 

 

두 개의 건물이 하나로 이어진 내부는 크게 커피를 제조하는 바와 손님을 맞는 휴식터로 나뉜다. 낡아서 물이 새던 삼각 지붕에는 전체적으로 삼나무를 덧대 내려앉지 않게 보강했고 천장 곳곳에 창문을 내어 자연광을 내부로 들이는 장치를 마련했다. 휴식터 바닥에는 제주 현무암과 송이석을 깔아 단을 올리고 바닥 곳곳에는 푸릇푸릇한 이끼가 자라나도록 했다. “제주의 고온 다습한 환경을 이용해 이끼를 키우고 있는데, 손님이 자주 드나들어 잘 크지는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는 이끼 반 풀 반으로 채워질 공간을 상상하며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바 공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기존 물이 흐르던 수로에 흙을 채워 고사리류와 작은 식물들을 심어 만든 화단. 전반적으로 어둡고 습한 기운이 감도는 내부는 파릇파릇한 식물 덕분에 한층 밝은 모습이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테이블은 전분을 곱게 내리던 넓은 채반을 활용했고, 낮은 철제 의자는 맞춤 제작했다.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디자인의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띄는데 이는 높고 넓은 천장고를 감상하기 좋도록 주인이 배려한 것. “공사 기간 동안 서울에 있는 직원들이 함께 흙을 만지고 돌을 옮기며 만들었어요. 서울에 있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이곳에 머물면서 일할 예정인데, 자연스럽게 제주의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주려고 합니다.” 김평래 대표 역시 제주도에서의 삶을 꿈꾸며 조만간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할 예정이다. 카페 엔트러사이트는 시간의 장벽을 초월한 공간의 영속성으로 전분공장의 과거에 이어 다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심각하지 않은 삼각학교
서울 인근 남양주에 위치한 동화고등학교는 삼각형 모양이다. 왜 삼각형 모양이 되었을까?
어시스턴트 에디터 김수지 | 포토그래퍼 차가연(인물)

 

 

↑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중정의 모습. 

 

 

↑ 중학교와 마주하는 곳은 콘크리트로 마감해 건물 간의 간섭을 줄였다. 

 

 

↑ 유리창에 비친 풍경은 동화고등학교의 또 다른 매력이다. 

 

속초가 고향인 한 친구가 고등학교 다닐 적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뒤에는 산, 앞쪽으로는 바다여서 도망칠 곳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공부했을 친구의 학창 시절을 상상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의 답답함은 공부의 양은 물론이고 공간에서 오는 폐쇄성도 한몫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뒤꿈치를 들어야 겨우 밖이 보이는 창문 높이, 복도에서 조금만 달려도 어느샌가 꿀밤을 때릴 준비를 하고 계신 선생님과 맞닥뜨리는 ‘ㅣ’자형 건물 등 나에게 학교라는 곳은 언제나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버티던 공간이었던 것. 공간에서라도 학생들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학교 건물은 대게 ‘ㅣ’자나 ‘ㄱ’자 모양이다. 하지만 네임리스 건축의 나은중, 유소래 소장이 설계한 동화고등학교 삼각학교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학교의 전형에서 벗어난 삼각형이다. 사람, 교육, 장소 간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인 삼각형은 지난해 계획안만으로 미국건축가협회의 뉴욕건축가협회상 대상과 김수근문화재단의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받았다. 나은중, 유소래 소장은 각각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UC 버클리를 함께 졸업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를 하는 동시에 공공 예술과 설치 작업으로 건축의 유동성을 실험하는 것을 지향하는 이들은 뉴욕에서 시작한 네임리스 건축 사무소를 서울로 확장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 그룹이다. 

 

 

↑ 네임리스 건축 사무소의 나은중, 유소래 소장. 

 

 

↑ 건물의 삼각형과 중정의 삼각형을 어긋나게 설계한 모습. 

 

 

↑ 복도와 중정을 오가며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 

 

“삼각학교의 동쪽엔 뒷산이, 서쪽엔 중학교가, 북쪽엔 학교 운동장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요소는 삼각형의 건물 배치를 통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공간이 됩니다. 특히 운동장과 접해 있는 건물의 정면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마감해 적절한 조도를 이끌어냅니다. 시선 차단을 위한 건축 장치인 수직 루버를 설치해 건물 속이 훤히 보일 걱정도 없습니다. 성격이 전혀 다른 서쪽의 중학교에 대해서는 폐쇄성으로 대응했습니다. 이 건물은 운영 방식이 전혀 다른 중학교 시설로 고등학교인 삼각학교와는 기능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건축적인 요구를 가지고 있었죠. 이에 닫힌 느낌을 주기 위해 콘크리트 벽으로 마감한 뒤 3개 층을 관통하는 하나의 삼각형 창을 만들어 건물 간의 간섭을 최소화했습니다.”
삼각형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가 안쪽을 향해 동일하게 열려 있다는 점이다. 교실이 위치한 2, 3층 가운데에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작은 쉼터인 중정을 만들었다. 2, 3층 모두 안쪽에서 중정이 훤히 보이도록 유리로 마감해 자칫 답답할 수 있는 구조와 교실의 조도를 한번에 해결했다. 또한 중정의 삼각형 공간은 건물의 삼각형과 그 각도가 서로 어긋나게 설계했다. 층간을 이어주는 수직 틀을 만들어 시각적으로 각 층을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하고, 어긋난 각도를 통해 어느 위치에서도 시야를 확보하게 했다. 또한 어긋난 삼각형을 통해 복도의 크기를 2.4m에서 5m로 각기 다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학생들의 작은 정원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중정은 유동적인 공간으로 학생들이 드나들며 쉬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된 것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 때를 대비해 교실 내벽을 간이 벽으로 만들어 움직일 수 있게 배려한 점도 삼각학교의 또 다른 특징. 이쯤 되면 동화고등학교 학생들은 진심으로 학교에 ‘다닐 맛’이 나지 않을까. 학생이 공부만 하도록 닫힌 벽, 높은 창문 등 건축적인 요소로 통제하는 곳이 아닌 활짝 열린 공간으로 학생들의 심리적인 압박감을 덜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동화고등학교. 인터뷰를 마친 후 네임리스 건축 사무소를 나서며 중정을 오가며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되어 흐믓했다.  

 

 

최소한의 건축, 최대한의 집
aA디자인뮤지엄의 김명한 대표가 제주도에 완성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최소의 건축으로 탄생한 소박하고 힘 있는 공간,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파라다이스를 소개한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 

 

 

↑ 아담한 정원을 끼고 있는 아라 하우스의 외관. 

 

 

↑ 간세다리 하우스는 카페와 이웃해 있다.   안개비 속에 길을 뚫고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바닷가로 향했다. 공항에서 출발한 지 40분쯤 지났을까. aA라고 쓰여진 검은색 건물이 보이고 바다를 눈앞에 둔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만나자 이방인의 마음은 무장해제된다. 촬영 당일, 제주도에는 안개 경보가 내려졌지만 aA카페에서 바라보는 안개 낀 바다의 모습은 이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처럼 정겨웠다.
김명한 대표는 그간 꾸준히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생태 숲인 비자림과 곶자왈을 거닐며 산책을 즐겼던 이유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동리의 조용한 바닷가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간의 발걸음 덕분이었으리라. 그렇게 1년여 동안 아들 김인동 씨와 함께 공들여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오픈을 앞두고 지인 시숙 행사를 하며 손님맞이를 위한 막바지 체크 중이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카페를 허브로 3개의 객실로 나뉜다. ‘간세다리’라고 이름 지은 3인용 객실, 두 개의 2인용 객실 중 하나는 ‘아이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김명한 대표의 손녀 이름을 따서 ‘아라’라고 지었다. “제주 방언으로 ‘간세다리’는 게으름뱅이를 뜻합니다. ‘아이들 Iidle’은 영어로 빈둥거린다는 뜻이고요. 휴식을 찾아 제주도를 찾았으니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여유를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습니다.”    

 

↑ 다양한 빈티지 가구들로 꾸민 카페 내부. 바다와 맞닿아 아늑한 맞배지붕을 얹은 카페는 화산석과 잘 어울리는 검은색으로 마감해 주변과 조화로운 모습을 선사했다. 1970년대에 지은 아담한 제주의 전형적인 주택을 고쳐 만든 세 개의 객실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지붕과 벽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을 보완했다. “소박한 제주의 집을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만 고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빚바랜 지붕이나 외관 벽은 그대로 두고 출입문이나 창문틀을 바꾸는 정도로 하고 집의 원형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겨울에는 춥고 습기가 많은 제주의 자연환경을 고려해 창문과 벽체, 바닥재를 교체했고 복잡했던 구조를 하나로 터서 낮은 지붕과 좁은 공간의 단점을 보완했다. 특히 공사 중 발견한 골조는 과감히 드러내 옛것과 새것의 대비가 느껴지는 공간을 완성했다. “공간을 새로 단장할 때 사용한 바닥재와 페인트, 단열재 등은 모두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바닥재는 핀란드산 레드 파인 우드를 사용했는데 본드를 사용하지 않고 짜맞춤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알레르기에 민감한 편인데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건강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1 김명한 대표의 스타일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아라 하우스의 객실 내부. 1920년대부터 50~60년대 빈티지와 모던 가구들이 조화를 이룬다. 2 공사를 하다가 발견한 오래된 대들보를 노출시킨 간세다리 하우스의 내부. 특히 객실의 가구 배치에서는 오랜 세월 디자인 가구 전문가로 살아온 김명한 대표의 심미안과 디자인 균형감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앤티크, 빈티지, 클래식, 모던을 섞어 가구를 배치했어요. 공간 자체가 낮고 좁기 때문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가구로만 비치했습니다.” 세 개의 객실에는 1920년대부터 50~60년대에 이르는 빈티지 가구와 조명들로 단장했고, 침구와 러그는 북유럽 브랜드 헤이의 제품을, 베개와 쿠션은 펜투카의 제품을 썼다. “여행을 즐기지만 돈은 없고 디자인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일반적인 숙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카페 앞 마당을 장식한 강아지 오브제.
aA게스트하우스는 객실 타입에 따라 비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8만~15만원 선으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김명한 대표는 홍대 aA카페에 디자인 가구를 펼쳐놓았던 것처럼 이곳 또한 좋은 미감의 가구가 놓인 집을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국내 최고의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로 살아오면서 그가 제주에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많은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각 잡힌 멋 대신 환경에 순응하는 이 소박한 건축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질 그의 새로운 삶도 그중 하나였다.

괴짜들의 합창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들이 반란을 시작했다.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장 세 사람이 이끄는 푸하하하 프렌즈의 유쾌한 이야기.
에디터 최고은 | 포토그래퍼 신국범(인물) · 김용관(건축)

↑ 왼쪽부터 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소장. 푸하하하 프렌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5년 전 규모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동기, 선배로 만났다. 큰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건축주가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질까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언젠가는 독립할 계획이었기에 평소 마음이 잘 맞았던 셋이서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그때 사장님이 ‘멋진 출사표로 성공을 빕니다’라는 축사를 남겨주셨다.

푸하하하 프렌즈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직관적이어서 좋았고 영문으로 FHHH라고 썼을 때 시각적으로 단단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구청이나 협력 업체와 통화를 할 때 ‘푸하하’나 짧게 ‘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고 이겨냈다. 우리가 먼저 받아들이고 나니까 사람들도 같이 웃고 즐거워하는 거 같아서 만족한다.

푸하하하 프렌즈가 실력 있는 젊은 건축가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김해시 건축 대상을 받은 ‘흙담’ 덕분이 아닐까 싶다.
흙담은 독립하고 나서 첫 작품인데 공을 많이 들였고 그만큼 힘들었다. 공장들과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그 장소에 스며들기보다는 맞서고 싶었다. 무거운 재료를 사용해 존재감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벽돌을 직접 디자인해서 틀을 만들고 쌓느라 엄청 고생했다. 결과적으로 구조를 잘 나누고 재료를 잘 사용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무게감 있는 돌처럼 존재감 있게 지었다는 ‘흙담’.

독특한 모양의 벽돌은 푸하하하 프렌즈에서 직접 디자인, 제작한 것이다.

↑ 흙담의 건축주가 운영하고 있는 전통 다원. 공정무역숍 비타, TWL숍 등 주로 상업 공간을 많이 했지만 주택 설계도 하고 있는데, 공간을 설계할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상업 시설에는 조금 더 특이하고 새로운 시도를 바라고, 주택은 조금 더 안전하지만 유연한 것을 바라는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일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클라이언트와 얼마나 말이 통하는가이다. 돈이나 땅이 많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질색이다.

다들 개성이 강한데 셋이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어떤가?
푸하하하 프렌즈 이름으로 활동한 지 3년째이지만 아직도 의견을 조율하는 게 힘들다. ‘제대로 해보자’는게 전부여서 계속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한승재 소장은 올해 초 <엄청멍충한>이라는 소설책을 냈다. 책을 펴낸 계기는 무엇인가?
회사 다닐 때부터 썼다.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에 쓰기 시작했는데 혼자만 보기 아까워서 길에 내놓고 팔다가 우연히 열린책들 출판사 사람 눈에 띄어 정식으로 책을 출간했다.

DDP에서 진행한 <영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2015>전시에 참여해 관람객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집을 지어드립니다’라는 건축 프로젝트가 화제였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나?
점집에 와서 점을 보듯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랑 함께 살고 싶은지 등을 자세히 물어보고 개인의 캐릭터에 맞는 집을 그려줬다. 전시 기간인 6일 동안 500명 이상을 만났다. 사실 이건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인데 우리는 좀 더 큰 개념으로 ‘집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부터 시작하면 다양하고 재미있는 생각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푸하하하 프렌즈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건축가를 만나는 것도 쉬웠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가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는 이유다. 편하게 생각해야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서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잘 조율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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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임태준, 차가연, 신국범,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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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rchitecture (2)

Special Architecture (2)

Special Architecture (2)

카페, 라이브러리, 게스트하우스, 학교 그리고 재생건축을 위한 동네 건축까지,각자의 타이틀은 다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건축에 발을 들여 놓고 즐길 일만 남았다.

그대로 있어주면 돼
시간과 기억을 보존하면서 브랜드의 개성을 자연스럽게 투영한 젠틀몬스터의 계동 쇼룸을 방문했다.
어시스턴트 에디터 김수지 | 포토그래퍼 안종환

 

 

↑ 에너지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물인 ‘타임 트랜스포메이션’. 

 

안국역에서 현대사옥을 오른쪽에 두고 들어서면 중앙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이 있다. 행정구역상 계동길로 불리는 길이다. 이 길에 자리한 중앙탕은 1969년 문을 연 목욕탕으로 이전에 중앙고 운동부의 샤워실로 사용되던 공간을 개조했던 계동의 랜드마크였다. 계동길에서 지인과 약속을 잡을 때면 중앙탕을 기준으로 설명할 만큼 그곳은 계동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몇 달 전부터 공사를 시작하는 것 같더니 국내 안경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의 네 번째 쇼룸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휴식을 위해 찾곤 했던 계동길에 개성 강한 브랜드 쇼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했지만 방문해보니 의외의 건물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었다.
젠틀몬스터의 쇼룸은 인테리어적인 면에서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젠틀몬스터의 네 번째 쇼룸은 가구 디자이너 그룹인 ‘패브리커’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패브리커는 다양한 무늬와 색을 가진 원단을 이용해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 그룹으로 이번이 세 번째 협업이다. “중앙탕을 처음 봤을 때 매력을 느꼈어요. 오래된 공간이기도 하고 계동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터넷에 이미지를 검색하면 언제나 중앙탕의 간판을 볼 수 있었죠.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공사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관리가 안 된 부분이 많았어요. 건물을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요. 본래 4월쯤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제대로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결정하느라 오픈이 연기됐습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외관을 살리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싶었어요.” 최대한 외형은 유지하면서 1층의 입구 부분만 황동으로 마무리해 젠틀몬스터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계동길에 은은하게 녹아든다. 1층 쇼룸의 뒤편에는 물을 데우는 화목 보일러를 그대로 남겨놨다. 벽에는 보일러실의 묵은 때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보일러가 있는 공간과 이어지는 곳에는 사우나실을 만들어 열기와 불빛을 재현했다. 

 

 

1 젠틀몬스터 계동 쇼룸을 멋지게 완성한 패브리커(왼쪽)와 젠틀몬스터의 공간 디자이너(오른쪽). 2 사우나의 열기와 불빛이 느껴지는 듯한 쇼룸의 복도.

 

 

↑ 중앙탕의 옛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3층 공간. 

 

 

↑ 1층 입구엔 매표소로 쓰였던 창구를 그대로 남겨놓았다. 

 

 

1 지난 시간의 정취가 느껴지는 화목 보일러. 2 타일을 들어내고 남은 적벽돌과 젠틀몬스터의 선글라스가 의외의 조화를 선사한다. 

 

 

↑ 중앙탕의 외관은 그대로 남기고 입구만 황동으로 마감했다.

 

1층 천장에서 2층 바닥까지 관통한 ‘타임 트랜스포메이션 Time Transformation’도 젠틀몬스터 계동 쇼룸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에너지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설치물로 1층 보일러에서 생성된 증기가 운동에너지로, 운동에너지가 다시 전기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표현했는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1층의 거대한 모터가 2층으로 이어진 전구들의 빛을 밝힌다. 중앙탕은 본래 남탕과 여탕이 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남탕으로 사용된 2층은 공용탕의 일부를 부서진 상태 그대로 남겨놨고, 기존 욕탕의 타일을 들어내고 남은 적벽돌은 그대로 보존했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옛 중앙탕의 모습이 담긴 슬라이드를 볼 수 있어 더 한층 정겨움을 자아낸다.
“작지만 이 공간이 가진 매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 공간만의 역사와 의미를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새롭게 변신한 젠틀몬스터의 모습을 보면서 패브리커이기에 가능했던 결과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앙탕의 시간과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브랜드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젠틀몬스터의 계동 쇼룸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내부와 외부 공간을 적절히 변형하면서 현재와 과거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으며 브랜드의 정체성 또한 투명하게 드러냈다. 계동길의 초입에서부터 멀찌감치 보이던 중앙탕 간판을 그대로 남겨둔 이곳은 진중함과 괴물 같은 매력이 공존하는 젠틀몬스터의 얼굴, 그 자체다.    

 

 

너의 의미
지금 건축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 네리&후를 상하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에디터 노은아 | 포토그래퍼 테리 배 Terry Bae 

 

 

↑ 건축가 부부인 린던 네리 Lyndon Neri와 로산나 후 Rossana Hu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파트너로서도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 

 

 

1 세계 각국을 무대로 활동 중인 네리&후는 그들이 묵었던 호텔의 메시지 카드를 모아서 한데 붙여놨다. 2 장저우 르 메르디앙 호텔의 외관.


부부이자 동업자인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우리는 개인이 아닌 팀으로 움직인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하다 보면 시너지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것을 공유하되 시간과 가능 여부, 관심 정도에 따라 매우 유기적으로 일하는 편이다.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기도 한다. 나는 주로 전체적인 틀을 만들고 아내인 로사나 후는 비평과 전체적인 운영을 맡는다. 우리의 성격도 매우 달라서 이런 체제는 한 가지 프로젝트에 얽힌 다양한 문제를 고려할 때 근시안에 갇히지 않으면서 더 완벽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

2004년에 사무실을 오픈한 이래 두 사람의 활동은 11년째 접어들었다. 그리고 요즘 당신들은 건축계를 넘어 디자인계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당신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속적인 가치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정신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문제에 건축적으로 답하는 것도 의미를 창조하는 한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공간을 활용한 문화적인 생산을 형성하고 탐구하는 일이다.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는 작업실에서 많은 결정을 내린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는지 떠올리고, 만약 경로를 이탈했다면 우리 스스로를 재정비하려고 노력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당신들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변했다면 어떻게 변했나?
어떤 것은 유지되고 또 어떤 것은 변했지만 중요한 것들은 이전과 똑같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디자이너들이 트렌드와 패턴의 변화에 대응하듯이 우리는 대응뿐 아니라 먼저 예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트렌드를 예측하지만 그보다는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가정하고 앞서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란 본질적으로 ‘우리들의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세계관, 우리의 미학적 관심사, 우리의 성격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은 올 한 해만 해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서울까지 다양한 지역에 걸쳐 네리&후의 흔적을 건축물로 선보일 예정이다. 각 지역마다 다양한 프로젝트의 착수에서 완성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각 프로젝트에 맞는 아이디어와 컨셉트를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계를 허물려고 끊임없이 자문하다 보면 생각을 멈추지 못할 때도 있다. 컨셉트를 결정한 후 수많은 조사가 이어지는데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다른 디자인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레이어링, 투시, 건물의 축조, 텍스처, 물성 등 항상 고민하는 요소도 있다. 사실 본질적으로 이런 이슈 중 몇 가지는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분이 된다. 우리의 디자인 철학은 항상 기본 컨셉트에서 출발하는데 모든 프로젝트의 이면에 밑바탕이 되는 강력한 컨셉트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 디자인을 고민하고 논의하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 디자인 코뮨. 

 

 

↑ 네리&후를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한 상하기 워터 하우스. 


2015 메종&오브제에서 포르투갈의 가구 브랜드 드 라 에스파다 De la espada를 통해 셰이커 스타일의 의자를 선보였다. 드 라 에스파다와 당신들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창립자인 루이스 드 올리베이라 Luis de Oliveira가 새로운 컬렉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고 프로젝트를 착수하기 전 1년여에 걸쳐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서로 의논했다. 우리는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협업은 비교적으로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건축, 전시, 가구 디자인까지 당신들의 작업 영역 중 중심은 무엇인가?
건축은 여전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근간이며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르네상스적인 개념에서 가져온 디자인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으며 우리의 멘토인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당신들의 작업을 보다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가이드를 준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3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말해달라.
의미, 진정성, 겸허.

올해 Imm 퀼른 전시회의 설치 전시 ‘das haus’는 어떤 의도로 진행되었나?
처음 생각은 매년 열리는 Imm 퀼른 전시회를 위한 집을 꾸미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통해 가정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 걸쳐 스스로 질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두 사람의 건축에서는 중국스러움을 초월한 다양한 감성이 느껴진다. 

 

 

↑ 상하이 캠퍼 쇼룸이자 사무실의 모습. 

 

몇 년 전, 상하이 푸동 pudong 지역에 갔을 때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건물 디자인과 건물 꼭대기를 장식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에 놀란 적이 있다. 도시의 첨탑처럼 인상적인 건물 옥상 디자인이 중국 건축의 관습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해외에서 자라고 살았던 당신들에게 이런 문화는 어떻게 다가왔나?
우리는 디자인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중국 스타일을 발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스타일이나 건축양식과 같은 표피에만 주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뜰이 있는 집이라든가, 근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집 등 중국식 공간의 정수를 탐구하는 편인데 그것을 우리의 작업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하곤 한다. 건축에 있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 등을 비롯한 수많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우리의 전반적인 주제다.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통해서 관습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경계를 밀어 붙여서 우리가 어디에 이르는지를 지켜보는 것 말이다.

201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건축이 갈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 멘트 이후로 건축가뿐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이 쇄도했다. 어떤 논쟁을 일으킬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건축가들이 프로젝트에서 직면하는, 이기적인 개발자들이 요구하는 무리한 마감일과 상업적인 압력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다. 그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클라이언트들은 우리가 말한 것에 대해 실질적으로 우려하기 시작했고,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한 문제를 건너뛰고 무시하는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당신들 이전에 중국의 건축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왕슈 Wangshu였다. 그는 지역의 재료, 전통성을 이용한 건축으로 중국 건축의 지속성을 얘기했다. 당신들은 ‘중국적인 것’이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나?
우리는 전통에 우리의 미래가 있고 전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심오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시간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형태와 일시적인 가소성을 넘어서야 한다.

2012년에 새로운 디자인 플랫폼인 더 디자인 리퍼블릭 코뮨 The design Republic commune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그것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매장이나 레스토랑, 호텔이 아니라 디자인에 관한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강의, 전시, 포럼 등의 형태를 통한 디자인 교류와 대화의 장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바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 중요한 디자인과 관련 분야의 이슈를 토의하는 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다.

건축이 한 시대의 문화와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건축은 당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상호작용하는지를 고스란히 투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물은 한 시대의 문화적 흔적을 보존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요즘, 행복한가?
누구에게 질문하는가에 달린 것 같다. 나 린던에게 묻는다면 언제나 행복하다. 로산나 후는 언제나 우울하다. 

 

 

사연 있는 미술관
찜질방으로 태어날 뻔했다가 미술관으로 회생했다는 특별한 사연을 품은 소다 미술관. 재생 건축의 또 다른 확장을 보여준다.
에디터 최고은 | 포토그래퍼 안종환

 

 

↑ 소다 미술관은 처음부터 건물이 비뚤게 지어져 입구가 안쪽에 숨어 있다. 

 

 

↑ 2층 컨테이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보라리 작가의 작품 ‘동굴 공간’.

 

경기도 화성시는 온천이 유명한 곳이라 일찍이 큰 규모의 찜질방이 성행했다. 그러나 300~400평 규모의 찜질방이 곳곳에 난립하던 중 사업 부진으로 폐업하는 곳도 속출했다. 화성시 안녕시에 자리한 ‘소다 Soda(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 미술관도 본래 찜질방으로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건축주의 사정으로 공사가 중단된 채 콘크리트 구조만 남은 채 5년간 방치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흉물이 된 이곳을 미술관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건 싱크 CINK 건축설계사무소의 권순엽 대표였다. “실측을 해봤는데 철거 비용이 2억 정도 나왔어요. 비용도 그렇지만 이 골격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 층고가 높고 방도 많으니 미술관으로 제격이겠다 싶었죠.”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활동해온 그는 한국적인 문화인 찜질방 구조가 매우 흥미로웠다. 방을 하나의 캔버스로 보고 점차 확장해 나가는 공간으로 해석했고 그 내부를 사람이나 작품이 채워 나가는 열린 미술관을 상상했다. 재생의 취지에 맞게 벽을 하나도 부수지 않고 본래 지어진 모습을 최대한 활용해 실내와 야외 전시장을 만들었다.
그중 ‘루프리스 갤러리’라고 불리는 야외 전시장은 소다 미술관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곳이다. 설치 작품이 있긴 하지만 곳곳을 빈 채로 남겨두었는데 관람객이 잔디 마당, 하늘 사이에서 온전히 드러나는 건물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 야외 전시장을 내려다보면 건물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동네 업자가 이 건물을 대충 앉히는 바람에 건물 전체가 길과 비틀어져 있었어요. 이것은 우리가 바꿀 수 없으니 2층만이라도 잘해보자 싶어서 정방향으로 길을 만들었죠. 그랬더니 새로운 그리드가 생기더라고요.” 길의 방향이 약간 달라졌을 뿐인데 이 덕분에 건물의 다른 구조와 면이 보이고 공간이 움직인 듯한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권 대표는 미술관으로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2층에 3개의 컨테이너 전시장을 만들고 데크를 깔았다. 옛 건물에 새로 길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삼각형의 빈 공간. 그는 이것이 소다 미술관의 아이덴티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를 모티프로 삼아 소다 미술관의 로고와 삼각형 테이블을 디자인했다. 

 

 

↑ 건물 방향은 비뚤어져 있지만 2층의 길은 정방향으로 배치해 건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1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는 야외 전시장. 2 야외 전시장에는 곳곳에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 소다 미술관의 첫 개관 전시인 <리:본 Re:Born>에서는 건축가들이 설계만 하고 지어지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모아 소개했다. 

 

 

1 야외 전시장에는 곳곳에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2 관람객은 독특한 구조의 야외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건축이 주는 자극을 느낄 수 있다. 

 

권 대표의 아내이자 소다 미술관의 운영을 맡게 된 장동선 관장은 이곳이 건축과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접근하기 쉬운 미술관이기를 희망했다. “건축을 어려워하지만 사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곳이 공간이고 건축물이잖아요. 매일 회사에 출근하고 학교에 등교하고 주말에는 쇼핑하러 가지만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하죠. 색다른 구조의 건물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건축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이 신경 썼어요.” 대지 6600㎡에 건축면적 약 1652㎡이르는 소다 미술관은 큰 규모의 미술관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알차게 마련해 미술관의 벽을 낮추고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야외 전시장에는 스프링클러를 통해 온천수로 만든 비가 내려 아이들이 각자 만든 우산을 쓰고 비 맞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했고 텃밭 학교, 미술 수업 등도 마련했다. 기획 전시의 관람료는 3천원인데 전시가 끝날 때까지 재입장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이곳을 자주 방문하고 오래 머물다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개관하고 겨우 세 달째 아무도 찾지 않아 흉물 같았던 이곳은 이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친근한 동네 미술관이 되었다. “이 건물이 갖고 있는 이야기는 마치 유전자 같은 거죠. 그것이 재생 건축이 가진 매력인 것 같아요. 특별한 사연을 알고 나면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갖고 건축물을 바라봐주죠.” 권 대표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견해 생명력을 이어나가게끔 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소다 미술관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건축에 눈뜨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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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안종환, 테리 배 Terry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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