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프레이와 로레인 프레이의 파리 아파트에는 긴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세대를 건너온 가구와 여행 중 발견한 물건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달라진 취향까지.


파리 리브 고슈의 오래된 거리에 위치한 패트릭 프레이와 로레인 프레이의 아파트에는 예상 밖의 조합들이 공존한다. 거실만 둘러봐도 이 집을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를 금세 알게 된다. 피에르 프레이 Pierre Frey의 소파와 러그 옆으로 기니공화국의 바가 Baga 조각상이 놓여 있고, 루이 16세 체스트 위에는 마르고 카렐 Margaux Carel의 세라믹과 시몬 펄팽 Simone Pheulpin의 작업이 함께 자리한다. 라파엘 페리아 Raphaëlle Peria의 사진 작업, 피카소 플레이트, 조한나 드 클리송/히로미 Johanna de Clisson/Hiromi의 세라믹 오브제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출처의 물건들이 한 공간 안에서 묘한 균형을 이룬다.


패브릭 하우스 피에르 프레이를 이끌어온 패트릭 프레이는 스스로를 데커레이터라고 말하지 않는다. 패브릭과 벽지, 가구, 러그 컬렉션을 만들고 소개하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공간을 대신 완성하는 역할은 아설명하기 위한 쇼룸보다는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오며 남겨진 것들, 여행 중 발견한 오브제, 세대를 건너온 가구, 그리고 그때그때 좋아하게 된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두 사람이 이 집을 소개하며 ‘마지막 집’이라고 부른 점은 조금 의외였다. 좀 더 넓은 집이나 새로운 장소를 꿈꾸지 않는다는 뜻일까? 패트릭 프레이의 대답은 예상보다 담담했다. “오랜 시간 살아오다 보니 이 집 안에는 이미 우리의 삶이 담겨 있어요. 리노베이션할 때도 전혀 다른 무언가를 상상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것을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에 가까웠죠. 어느 순간부터는 다음을 상상하기보다 지금 있는 것을 온전히 살아가게 되더군요.” 4년 전, 두 사람은 건축가 제롬 부에 Jérôme Bouet와 함께 아파트를 전면적으로 손봤다. 구조를 새롭게 정리하고, 몰딩을 더했으며, 빛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열었다. 무엇보다 집 중심에 둥근 구조의 방을 두어 현관과 다이닝 룸, 거실, TV 룸, 작업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모든 방을 연결하는 이 원형 공간에는 가보 Gaveau 피아노가 자리하고, 그 위로는 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전통 머리 장식이 놓여 있다. 천장에는 잉고 마우러의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그 아래로 패트릭 프레이의 할아버지 르네 프루 René Prou가 디자인한 콘솔과 램프가 공간을 채운다. 원래 침대 열차용으로 제작돼 흔들림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도록 무게를 더한 램프다. 실용적인 이유로 만들어졌던 물건이 지금은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을 품은 오브제 중 하나가 되었다. 다이닝 룸의 벽과 커튼을 감싼 흑백 ‘팔라초 Palazzo’ 패턴은 패트릭 프레이가 직접 디자인한 것. 토스카나의 궁전과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 연필 드로잉처럼 펼쳐진다. 필립 위렐 Philippe Hurel의 정사각형 테이블 두 개는 평소에는 나란히 놓여 있다가 손님이 많은 날이면 하나의 긴 테이블이 된다. 조한나 드 클리송/히로미가 제작한 세라믹 샹들리에 아래에는 르네 프루의 이니셜이 새겨진 실버 커트러리와 루이즈 부르고앵 Louise Bourgoin의 세라믹, 아메리카 원주민 장식을 함께 놓았다.

두 사람의 취향이 처음부터 같았던 건 아니다. 서로 좋아하는 물건도, 공간을 채우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니 처음엔 낯설었던 조합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았다. “듣는 일이 중요해요. 단순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설득하려 하지 않아요. 상대의 시선이 내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죠.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결국 균형이 생기곤 합니다.” 르네 프루의 흔적은 집 안 곳곳에서 반복해 눈에 들어온다. 현관의 콘솔과 램프부터 TV 룸의 암체어까지, 패트릭 프레이에겐 할아버지의 작품이 단순한 가족 유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르네 프루의 작품은 개인적인 기억인 동시에 디자인과 공예의 더 큰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어요. 중요한 건 형태만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세대를 이어주는 감각 같은 것이 남아 있어요.” 집 안 풍경은 지금도 종종 달라진다. 오브제의 위치를 다른 방으로 옮기기도 하고, 익숙했던 조명이 전혀 다른 자리에서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움직이지 않는 물건은 결국 보이지 않게 돼요. 자리를 바꾸면 다시 보게 되고, 그 물건과 연결된 기억도 함께 돌아옵니다.” 패트릭의 오피스와 로레인의 스튜디오 역시 서로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한쪽은 깊은 색감의 패브릭과 책들로 채워진 조용한 공간이고, 다른 한쪽은 그림과 콜라주, DIY 작업이 뒤섞인 자유로운 작업실이다. 창밖 리브 고슈의 풍경처럼, 이 집 역시 조금씩 변하며 시간을 쌓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