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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오랜 시간 곁에 둘 것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제약이 있는 구축 아파트를 취향과 선택으로 채워낸 갤러리스트의 집.

현관에서 들어오는 시선을 부드럽게 가려주는 기둥벽에 붉은 트래버틴으로 포인트를 줬다. 철거할 수 없는 창 앞 벽은 곡선으로 마감해 디자인 요소로 살렸다. 소파 뒤 회화 작품은 유현경의 작품. 소파 옆 우드 테이블은 이재효 작가.

“구조를 크게 바꿀 수가 없었어요. 주방을 확 열거나 화장실 위치를 옮기는 것도 안 됐고요.” 구축 아파트를 고치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제약이 따른 다. 마음껏 벽을 허물거나 공간의 쓰임을 바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구조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느냐는 것. JN갤러리 임지현 대표의 집은 그 답을 그림에서 찾았다. 스튜디오 익센트릭의 김석훈 대표는 구조를 바꾸기 어려운 조건 안에서 벽의 형태와 마감을 달리해 공간의 인상을 바꿨다. “기존 구조를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에 벽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특히 곡선 벽은 구조적인 제약을 해결하면서 작품 을 배치할 수 있는 면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기존 아파트 조건 은 완전히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공간의 인상을 달리할 수 있도록 했어요.” 현관에는 유리 블록을 사용해 시선을 적절히 가리면서도 빛이 통 하도록 했다. 현관에서 주방까지 이어지는 벽은 곡선으로 부드럽게 연결했 고, 철거가 어려웠던 주방과 거실 사이의 내력벽은 우드 톤으로 마감했다. 모서리까지 둥글게 처리해 제약으로 남은 벽은 공간의 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로 바꿨다.

거실 정면에는 남편이 아끼는 오디오 컬렉션을 두고, 한쪽에는 핑크색 암체어를 배치했다. 천장에 매단 조형 작품은 정광호 작품.
소파 위에서 여유를 즐기는 반려견 구름이.

거실에 들어서면 유현경 작가의 회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집이 흥미로운 건 작품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집 전체를 갤러리처럼 차갑게 만들 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에서도 그림을 감상하도록 했어요. 그렇다고 집 전 체를 갤러리처럼 차갑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고요. 편안하게 생활하면서 작 품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임지현 대표의 바람은 재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됐다. 거실과 주방에는 붉은 트래버틴을 비롯해 질감과 색감이 뚜렷한 마감재를 사용했 고, 욕실에는 과감한 패턴 타일을 더했다. 안방 바닥의 노란 무늬 대리석은 그대로 살리고 붉은 카펫을 놓았다. 작품마다 색과 형태가 뚜렷한 만큼, 임 지현 대표는 ‘인테리어에까지 강한 인상을 주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까’ 걱 정했다고 한다. 김석훈 대표는 재료가 지닌 묵직한 존재감을 살리면서도 작품을 압도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췄다. 그 덕분에 색과 무늬가 선명한 마 감재는 공간에 깊이를 더하고, 작품과 함께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주방에도 붉은 트래버틴을 더해 거실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철거할 수 없는 내력벽은 우드로 마감하고 곡선 모서리로 포인트 벽처럼 연출했다. 그 위에는 이우환의 작품을 걸었다.
주방 조리대 맞은편 선반에 놓인 작품들. 왼쪽부터 김대유, 장욱진, 알렉스 카츠.

가구와 사물을 배치하는 방식에서도 집주인의 생활이 드러난다. 까시 나의 라운지 체어와 한국 전통 목가구가 나란히 놓이고, 서로 다른 시대의 디자인과 미술 작품이 한 공간 안에서 어우러진다. 가구 대부분은 이전 집 3 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다. 남편이 즐겨 사용하는 오디오 시스템도 거실 한 쪽에 자리한다. 새로운 공간에 맞춰 모든 것을 바꾸기보다 오랫동안 사용 해온 물건을 새 배경 안에 다시 놓았다. 아직 마음에 드는 빈티지 식탁을 찾 지 못해 교체를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의자는 마련했지만 테 이블은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서둘러 채우기보다 충분히 살펴보고, 오래 곁에 둘 만한 것을 신중하게 고 르는 것. 이러한 작품을 선택하고 전시를 구성하는 갤러리스트의 태도는 집 꾸리는 일에서도 이어진다. 주어진 구조를 세심하게 살핀 건축가의 설 계부터 하나씩 자리를 찾아가는 가구까지, 이 집 풍경은 지금도 조금씩 완성돼가는 중이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수납장을 두고, 침대를 놓아 단정하게 꾸민 아들 방.
부부 침실은 기존의 노란색 대리석 바닥을 살리고 강렬한 레드 카펫으로 색감을 더했다.

꺾인 현관 구조에 맞춰 수납장을 제작해 공간을 알차게 활용했다. 입구에는 박서보의 작품을 걸었다.
욕실을 넓히기 어려운 구조를 고려해 외부에 별도의 세면대를 마련했다.
과감한 패턴의 대리석으로 개성을 더한 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