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에 상륙한 호텔

앰갤러리의 호텔 나루 서울

앰갤러리의 호텔 나루 서울

 

세계적으로 독특한 호텔을 선별하고 큐레이팅하는 아코르의 프리미엄 컬렉션 브랜드 앰갤러리가 마포에 호텔을 열었다. 호텔 나루 서울은 현대적인 한국의 디자인과 서울의 상징인 한강의 모습을 완벽한 하모니로 풀어냈다.

 

인천국제공항 등 주요 상업 지역과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강점을 지녀 투숙객에게 서울의 다양한 매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큰 특징. 호텔 입구에는 거대한 규모로 최정화 작가의 ‘세기의 선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20층 메인 로비에는 양혜규 작가의 ‘창공해로’를 걸어 과거 수상교통의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의 모습을 되새기게 한다.

 

 

196개의 객실은 흰색과 월넛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5개의 레스토랑과 바, 인피니티 풀과 실내 수영장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와 사우나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 투숙하지 않더라도 한강을 배경으로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이브닝 라운지에서 와인 한잔을 기울여봐도 좋겠다.
TEL 02-64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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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깃든 예술

정동에서 만나는 두손갤러리

정동에서 만나는 두손갤러리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며 한국 미술의 흐름을 탐구해온 두손갤러리가 근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정동에 다시금 문을 열었다. 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동시대적 미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장소임이 틀림없다.

 

1928년에 지은 유서 깊은 근대건축물 구세군중앙회관의 예배당에 백남준 작가의 대작인 비디오 벽 작품 ‘M200’이 자리한다. 그 시절에 사용한 실제 의자와 천장 구조물, 바닥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놀라움을 안긴다.

 

덕수궁 돌담길의 끝자락, 1928년에 지어진 개화기 건축물인 옛 구세군중앙 회관이 새로운 문화 예술을 목격할 수 있는 갤러리로 변화했다. 1969년 황학동과 충무로에서 고미술상으로 출발해 1984년 동숭동에서 ‘두손’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갤러리를 개관한 이래 신사동과 뉴욕, 2000년대 후반에는 서울에서 ‘갤러리 인터아트’, ‘인터아트 채널’ 등의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왔으며, 올해 다시 원래 이름인 두손을 되찾아 이곳 정동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두손은 김양수 대표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으로, 그는 일찍부터 고미술을 수집하고 한국 미술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박서보, 정창섭, 곽인식, 심문섭, 최병훈 등의 작가를 후원하며 현대미술뿐 아니라 고미술과 공예 그리고 디자인 등 예술 전반에 걸친 흐름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시계 방향으로 엄태정의 ‘너와 나 사이에 환대하는 공간’, 김종원의 ‘결’, 이수경의 ‘Translated Vase’, 뒤주, 전광영의 ‘Aggregation’ 시리즈, 최명영의 작품.

 

심문섭의 ‘The Presentation’, ‘Metaphor’, 윤명로의 ‘겸재예찬’ 그리고 고미술품 사방 탁자와 분청사기가 조화롭다. 근현대 작품 사이로 두손갤러리 김양수 대표가 서 있다.

 

재개관을 기념한 이수경 작가의 개인전에 이어 두손의 두 번째 전시인 <A Narrative of Korean Art: 한국미술의 서사>전에서 김양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살의 젊은 나이에 시작한 고미술상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두손의 역사 그리고 예술이 곧 삶이라는 그의 인생 철학과 예술을 바라보는 올바른 자세까지 준비한 질문이 무색할 만큼 주옥 같은 이야기를 술술 들려줬다. 그중에서도 인터뷰 말미, 그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균형을 잃은 지 오래되고 삶과 예술의 경계가 무색해지고 시리도록 순수하고 야만인처럼 냉혹한 예술이라는 정글 속에서 눈먼 자들만이 만날 수 있는 이야기에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엄태정의 ‘삼익조’, 이수경의 ‘Translated Vase’, 어필 책장, 백남준의 작품, 서안, 서세옥의 ‘사람들’.

 

박서보의 ‘Ecriture’와 권진규 조각 흉상 ‘Priestess’.

 

처음 예술을 접했던 때가 언제일까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도자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어요. 1세대 도예가이신 지순택 선생님께 배웠죠. 도자기가왜 좋았는지는 모르겠고, 여하튼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아마도 선배들한테 휩쓸려 도자기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후 대학에서 서양학과를 전공하면서 관심을 끈 게 우리나라 고미술이었어요. 소위 말하면 그 당시에는 골동품이었죠. 그게 그렇게 좋더군요(웃음).

 

1960년대 국내 문화 예술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1960년대는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던 때였어요. 토요일 오후만 되면 청계천 일대에 다양한 문화 예술이 펼쳐졌어요. 그곳에서 처음 접한 게 바로 라이브 재즈였어요. 존 케이지 같은 현대음악도 있지만, 꼽추 춤을 추는 공옥진 선생부터 사당패 김덕수까지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것이 내가 처음 접한 문화 예술이었던 거죠. 그즈음 우리나라 문화의 도입기이자 정체성을 찾자는 분위기가 일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전통 한옥에서 책을 올려놓는 책상으로 쓰인 서안과 불상,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백남준의 TV Monument.

 

1928년에 사용된 건축을 그대로 보존하고 가벽을 세워 갤러리로 꾸몄다.

 

대학생 때부터 고미술상을 시작하셨다고요?

지금에야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여 고미술상이라 하지만, 그때는 그냥 고물상이었어요. 헌책방 바로 옆에 고물상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나도 청계천에 고물상을 조그맣게 차렸어요. 그게 소위 말하면 보물 찾기였던 거예요. 청계천 8가부터 9가, 그 뒤에 황학동까지 저녁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서양화가 권옥연 선생님, 한창기 선생님 그리고 우리나라 자수박물관을 개관한 허동화 선생님까지 이분들이 저녁마다 모아온 전리품을 가져와 자랑을 하는 거예요. 나는 학생이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제일 막내였죠. 그렇게 고물상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장사라기보다는 정말 보물 찾기였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고물을 팔았어요. 엿장수의 엿과 고물을 바꾸기도 하고요. 리어카를 끌고 있는 고물상이 나를 “학생, 학생.” 하고 불러요. 미술대학 학생이면 이거 가져다 천만 갈면 새것으로 쓸 수 있다고요. 리어카에 캔버스를 한아름 꽂아 놨더군요. 그래서 들춰봤더니 ‘환기’ 사인이 있는 거예요(웃음). 그때는 그럴 때였어요. 김환기 화백이 프랑스로 넘어가기 전에 정리하면서 흘러나왔던 것같아요. 정말 그야말로 보물섬이었죠.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고물상이었어요.

 

1984년 동숭동에서 첫 시작을 알린 두손갤러리가 이후 다양한 행보를 보이다 잠시 모습을 감췄어요. 올해 재개관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국내 미술 시장의 열기가 뜨거워진 이유도 있나요?

눈에 보이는 것이 서양미술의 근간이라면 동양의 근간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를 보내면서 보고 움직이는 것이 반 이상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벌써 ‘인식’하면서 행동하게 되죠. 사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떠한 모습을 계속 찾아가는 것을 예술이라고 보는데, 그것을 지금은 다시 물질화해 돈으로 환산해서 바라보고 있어요. 예술의 초심이나 근간은 다 없어지고 전혀 다른 삐둔길로 가고 있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자연하고 멀어지면서 퇴화되고 있는데, 기술과 과학으로 조금씩 다시 찾아간다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예술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되찾아보고자 두손갤러리의 문을 열었어요. 이제는 마감을 할 때예요. 내가 그 동안 받아온 수혜를, 또 많은 지식을 돌려줄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쓸데없는 영웅심리라고나 할까요. 소명의식 같은 게 있어요.

 

백남준의 ‘Untitled’, 서세옥의 ‘사람들’, 이수경의 ‘Translated Vase’.

 

차회를 할 때 병풍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이우환의 작품.

 

갤러리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 당시 마룻바닥까지 그대로를 보존해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삐그덕거리는 소리에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역사적인 구세군중앙회관을 선택한 점이 매우 흥미로워요.

이 정동이라는 곳은 정말로 대단한 장소예요. 개화기가 시작된 곳이죠. 이를테면 학교도 시작 되었고 이곳에서 외교도 시작되었고. 이 건물도 6년만 지나면 100주년이에요. 우리 두손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이 예술계를 이끌어가보자, 그 시작을 이곳에서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빌려 쓰는 건데, 소유할 이유도 없고 문화재 건물인 이곳이 얼마나 좋아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관람객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요즘 사람들은 그림을 돈으로 생각해요. 만약 피카소의 그림이 60억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존경하기 시작하죠. 어떻게 내가 그 그림을 가져다 걸고 즐기느냐가 중요한데, 그림을 모시게 되는 거예요. 정말로 잘못된 거죠. 작품이 놓인 공간의 전체적인 환경을 즐겨야 해요. 그래서 리빙 앤티크이고, 리빙 아트인 거죠. ‘리빙’이라는 것이 앞에 들어가는 게 정상적이에요. 그런 면에서 이 건물은 더욱이 가질 수 없는 공공성을 띠고 있어 제격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화이트 큐브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있어요. 화이트 큐브와 집은 완전히 달라요. 화이트 큐브가 주는 환상을 보고 그것이 집까지 연결될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술은 그저 내 삶으로 들어온 하나의 액세서리 같은 거예요. 앞으로 삶과 예술이라는 것이 이분화되지 않았으면 해요.

 

구세군중앙회관으로 사용된 건물의 외관에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갤러리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 당시 마룻바닥까지 그대로를 보존해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삐그덕거리는 소리에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 <A Narrative of Korean Art: 한국미술의 서사>에서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전시장 구석에 놓인 권진규 조각가의 흉상이에요.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것을 가장 잘 표현해낸 조각이죠. 영적인 작업을 이토록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그의 흉상을 자코메티와 비교해봤어요. 동양과 서양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죠. 권진규 조각가는 아주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굉장히 조용하면서도 영적이고, 자코메티의 조각은 현실의 끈끈한 힘듦을 그대로 표현해냈어요.

 

다음 전시를 살짝 공개해줄 수 있나요?

두손갤러리의 재개관을 기념한 이수경 작가의 개인전이 깨진 도자기를 통해 치유의 기능을 제시하고, 새로운 생명을 주는 아주 기본적인 전시였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두 번째 전시는 우리의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한자리에 모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통시적 미감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다음으로는 미래에 우리가 어떠한 예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전시를 열 예정이에요. 이번 밀란 디자인위크의 한국관을 통해 로봇공학을 공부한 정우원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볼록거울을 수십 개 달아놓은 작품이 매우 흥미로워서 함께하기로 했어요. 5년만 나와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죠. 그렇게 올 연말을 젊은 사람들의 기운으로 마무리해보려고 해요.

 

갤러리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 당시 마룻바닥까지 그대로를 보존해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삐그덕거리는 소리에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두손갤러리에 어떤 기대를 걸어도 좋을까요?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두손은 라라 LALA에요. 리빙 앤티크, 리빙 아트죠. 예술이 깃든 삶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의 예술이, 또 궁극적으로 동양의 문화가 커지면서 지금이야말로 세계의 예술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어떻게 인간 사회의 옳은 길로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대량생산되어 잘못된 케이스가 되었어요. 그럼 그것이 바뀔 때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손이 시각적 예술의 한 부분으로써 그 역할을 해내는 거예요. 이번에 선보인 알레시와 박서보 작가의 협업도 박서보의 작품이 생활에서 가까이 쓰였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어요. 이러한 행보가 앞으로 두손이 나아갈 길이에요. 작품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고 싶어요. 내가 중심이 되고 사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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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로우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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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을 만나러 가는 길

미술 테마 여행 에세이, 아트 로드

미술 테마 여행 에세이, 아트 로드

 

김영주 작가는 화가들의 흔적이 묻어 있는 장소를 따라갔다. <생애 한 번쯤은, 아트 로드>는 그곳에서 만난 작가들의 삶이 담겨 있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3살에 처음 잡지 기자를 시작했어요. 잡지는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에너지와 열정을 담아 일했고, 그렇게 기자와 편집장을 거쳐 23년을 보냈어요. 마흔 중반, 잡지에 흥미를 잃기 시작하면서 여행이란 두 번째 세상을 만났어요. 이후 저는 여행 작가가 되었고, 느리고 깊게 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생애 한 번쯤은, 아트 로드>(이하 아트 로드)는 미술을 다루는 인문학적 성격과 여행 일지를 다룬 에세이 느낌이 공존해요. 화가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여행 작가로 살기 시작하면서 7권의 책을 내고 미뤄뒀던 서양미술사 강의를 듣게 되었어요. 점점 강의에 빠져들면서 화가들과 그림의 배경, 삶의 흔적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4년에 <인상파 로드>를 발간했는 데 ‘여행과 아트’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아트 로드>는 총 14명의 화가를 다루고 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은 화가나 인상적이었던 장소가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마티스를 좋아합니다. 그가 노년에 작업한 종이 오리기는 저의 10대 시절, 미술에 대한 꿈을 키워줬어요. 이번 여행에서는 마티스가 야수파의 문을 연 남프랑스의 콜리우르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달리의 집과 박물관도 인상적이었어요. 화가가 살아생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공간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더쿱디스트리뷰션 펴냄 가격 2만3천원

 

작가의 시점으로 내용이 전개되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작가와 함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러 도시를 오가며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추적하는 기분이 어땠나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제 의도가 성공한 셈이에요. 이 책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반 고흐가 여러 장소에 뿌린 흔적을 여행하듯 쫓아가는 것은 그 화가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는 것과 같아요. 너무나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죠. 이미 고인이 된 그들을 다시 만나는 심정으로 여행했는데, 독자들도 공감해주면 좋겠어요.

 

이 책은 관광지 위주의 기존 여행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을 제안합니다. 어떤 독자에게 ‘아트 로드’식 여행을 추천하나요?

여행은 형식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관광지 위주의 여행 스타일에 싫증을 느꼈다면, 특별한 테마 여행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아트 로드를 추천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낀 만큼 기억에 남을 거예요.

 

시대도, 나라도, 화풍도 모두 다르지만 화가 14명의 공통점이 있다면요?

자연에 대한 사랑이요. 비록 풍경화를 그리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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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턴트 에디터

강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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