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가와 떠나는 멕시코 여행

사진 작가와 떠나는 멕시코 여행

사진 작가와 떠나는 멕시코 여행

사진 작가이자 라틴스토리텔러와 떠나는 멕시코시티 여행.

중남미로 첫 배낭여행을 떠난 건 2005년 여름이었다. 그때 여행의 시작점은 중남미 중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멕시코였다. 멕시코시티는 해발 2,200m에 위치해 여름에도 아침과 저녁에는 선선하며, 1년 내내 기온이 온화하여 언제 방문해도 좋은 여행지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육로를 따라 파나마 지협을 타고 브라질과 남미를 여행하는 것이 나의 일정이었다. 처음 멕시코에서 맛본 라틴 문화는 너무나 낯설었고, 이동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두 달쯤 머무는 동안 한국의 정서와 비슷한 멕시코 사람들의 정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배낭여행 이후 사진 촬영 등을 위해 다시 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오가게 되었는데, 한편으로 북중미에 위치한 멕시코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컸다. 멕시코는 알면 알수록 더욱 궁금해지는 곳으로 팬데믹 동안 묻어두었던 여행 본능을 해소하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떠났다.

 

세계 3대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

 

길이 4km, 폭 45m의 죽은 자의 길이 끝나는 북쪽 끝에 달의 피라미드와 오른쪽으로 해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늘이 없고 날씨가 건조하므로 테오티우아칸을 방문할 때는 양산과 선크림을 준비하자.

 

테오티우아칸 Teotihuacán은 멕시코시티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차를 타면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워낙 유명한 여행지라 숙소나 여행사 등지에서 이곳 여행을 위한 상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멕시코 전역에는 150여 개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이집트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피라미드가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테오티우아칸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와 달리 정수리 부분이 완만한 것이 특징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피라미드에 직접 올라가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밖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테오티우아칸은 스페인 침략 전, 중미와 남미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였고 전성기에는 인구가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명이 갑자기 사라졌으며, 그 이유는 지금도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버려진 테오티우아칸을 발견한 이들은 북쪽에서 온 아스텍인들이었다. 이 지역에 경외심을 느낀 아스텍인들이 이곳을 ‘신들이 계신 곳’을 뜻하는 테오티우아칸이라 명명했다.

 

아스텍 제국의 심장, 템플로 마요르

 

대성당과 템플로 마요르 주변에서 벌어지는 아스텍 전통 행사.

 

멕시코의 심장이자 멕시코시티의 중심에 위치한 소칼로 광장 주변에는 대통령궁과 멕시코 대성당 그리고 정부 청사가 모여 있다. 이렇게 중요한 기관들이 한 광장에 몰려 있는 것이 의아하지만, 이는 스페인 정복 당시부터 굳어져 내려온 식민지 시스템이다. 지금의 멕시코시티는 옛 아스텍 제국의 수도로 테노치티틀란이라 불렸다. 선인장이 풍부한 곳을 의미하는 테노치티틀란은 당시 호수의 도시였다.

 

템플로 마요르는 땅을 73m 파낸 기반 위에 세워진 폭 90m, 높이 40m에 달하는 거대한 신전이었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호수 위에 지은 아름다운 도시의 중앙에는 ‘뱀의 언덕’을 뜻하는 코아테펙 Coatepec이라 불리는 대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은 스페인 침략 이후 대신전을 뜻하는 템플로 마요르라 불리게 된다. 그로부터 부침의 세월 속에 파괴되고 잊혀져버렸다. 40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아스텍의 대신전이 극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에서 전기 공사를 하다 대신전 터를 발견한 것이다. 옛 신전 터에서 발굴한 유물이 가득 전시되어 당시 왕족과 귀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해 질 녘 템플로 마요르 주변에서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깃털 달린 아스텍 전통 복장을 하고 정화 의식을 하는 풍경은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박물관계의 교과서, 국립 인류학 박물관

 

 

멕시코는 중남미에서도 혼혈인인 메스티소의 비율이 가장 높다. 오래전부터 메스티소를 비하하는 문화가 팽배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민족적 차원에서 대통령이 진두지휘하여 건립한 것이 바로 국립 인류학 박물관이다. 때문에 많은 멕시코인의 로망 중 하나가 살아생전 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멕시코 침략 후 복사해놓은 아스텍의 문서. 이 문서는 점성술 달력으로 52년 주기로 돌아오는 깃털 달린 뱀인 케찰코아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케찰코아틀은 옥수수 씨앗을 발견해 인간에게 퍼뜨리는 등 서양의 프로메테우스와 비슷한 신이다.

 

이곳은 1964년에 개관했으며 녹음이 우거진 차풀테펙 공원에 위치한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같은 분수가 멕시코의 건조함을 씻어주어 상쾌하다. 박물관 외부는 2층으로 지어진 ㅁ자형 구조로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마야, 아스텍 등 빛나는 유물과 현대까지 아우르는 디테일한 전시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유의 폐쇄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한 섹션이 끝날 때마다 실외에 전시된 유물을 감상할 수 있어 박물관이 주는 피로가 덜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박물관 건물의 짜임새와 구성에 감탄하고 영감을 받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새로 짓는 박물관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세계 3대 성모 발현지, 과달루페 성모 발현지

 

후안 디에고가 성당에 와서 장미꽃을 싸고 있던 외투를 펼쳐지는 순간 과달루페 성모가 그림처럼 새겨져 있어 주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올해 초, 모 가톨릭대학에서 중남미 가톨릭에 대한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사진 전시회를 위해 찍어놓은 사진을 셀렉하면서 중남미 카톨릭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됐다.

 

과달루페 대성당은 지반 침하로 붕괴 위험이 커지자 초록색 지붕의 대성당으로 다시 건립되었다.

 

이곳은 프랑스의 룰루드, 포르투갈의 파티마와 함께 교황청의 인정을 받은 세계 3대 성지로 유명하다. 과달루페 성모는 멕시코 독립전쟁 때부터 시작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멕시코인들과 함께하는 국민적인 상징이 되었다.

 

 

스페인 침략 이후 어느 겨울, 테페악 언덕에서 가난한 후안 디에고라는 원주민 남자 앞에 과달루페 성모가 나타나 그의 외투에 장미꽃을 선사하고 현재 위치에 성당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후안 디에고가 성당에 와서 장미꽃을 싸고 있던 외투를 펼치는 순간 과달루페 성모가 그림처럼 새겨져 있어 많은 사람이 놀랐다. 현재 이 외투에 새겨진 그림은 과달루페 성당에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가톨릭 교황들이 여섯 번이나 방문했던 곳으로 과달루페 성모는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수호 성인이 되었다.

 

후안 디에고의 외투에 새겨진 과달루페 성모화 원본. 선인장 섬유로 만든 외투에 새겨진 그림은 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보존된 기적의 그림으로 유명하다.

 

초현실주의의 결정판, 호세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멕시코 플라스틱 예술가 가브리엘 오로스코의 매트릭스 모빌이라는 거대한 작품.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복잡해서 우버앱을 이용해 도서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기차역과 여러 갈래의 버스 정류장이 있는 매우 번잡한 곳에 위치해 도떼기 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런 곳에 도서관이 들어선 이유는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2006년에 완공된 도서관 외관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영화 <인터스텔라>와 <쥬라기 공원>을 합쳐놓은 듯한 초현실적인 비주얼에 압도당하고 만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온 장면과 유사해서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 불리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웅장한 책장 배치가 입체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도서관 내부 중앙에는 거대한 회색 고래 뼈 구조물이 모빌처럼 매달려 있다. 이 구조물은 실제 동물 화석은 아니고 멕시코의 플라스틱 예술가 가브리엘 오로스코 Gabriel Orozco의 작품이다. 뼈 구조물 주변으로 수많은 큐브형으로 정리된 책장이 있는데, 마치 광대한 우주 속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박물관 이름인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멕시코의 정치가이자 교육자, 철학자, 작가로 멕시코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디에고 리베라와 시케이로스 등의 미술가로 하여금 공공건물 등에 민중을 일깨우는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써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온 장면과 유사해서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 불리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웅장한 책장 배치가 입체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멕시코 여성 미술의 상징, 프리다 칼로 박물관

 

테오티우아칸을 본떠 만든 아기자기한 피라미드.

 

이제는 구권이 되었지만, 멕시코 화폐 200페소에는 국민적 영웅으로 불리는 벽화의 대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부부가 앞뒤로 새겨져 있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은 코요테가 사는 곳을 뜻하는 코요아칸에 위치하며 스페인 침략 이후 스페인인들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프리다가 살았던 생가이자 프리다 부부가 살았던 집이다. 원주민 문화를 상징하는 푸른색을 칠해 푸른색 집을 의미하는 카사 아줄 Casa Azul이라고 한다.

 

프리다 칼로의 침실 작업실.

 

박물관 1층으로 들어가면 프리다가 어린 시절 그렸던 스케치와 그림들이 눈에 띈다. 그녀를 찍은 사진들과 그녀의 일대기를 함께했던 디에고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그녀의 작업실과 침실을 둘러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당한 교통사고의 심각한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했던 그녀의 작업실에는 미술 도구와 함께 휠체어가 놓여 있다. 그녀의 침실 위쪽에는 머리 쪽으로 커다란 거울이 천장에 달려 있다. 그녀가 몸이 아파 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때는 이 거울을 바라보며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멕시코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프리다는 멕시코의 상징이 되었다.

 

2층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면 정원이 있다. 정원의 커다란 선인장과 야자나무 등이 뜨거운 햇살을 식혀주며, 테오티우아칸을 본떠 만든 아기자기한 피라미드도 흥미를 더한다.

 

멕시코 예술을 엿볼 수 있는 베야스 아르테스 궁전

 

아르누보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베야스 아르테 궁전의 외관.

 

베야스 아르테스 궁전 Palacio de Bellas Artes은 소칼로 광장에서 걸어갈 수 있고, 주변에 큰 공원과 백화점, 차이나타운이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름다운 외관으로 궁전 앞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으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디에고 리베라의 ‘우주의 지배자’. 1934년 작품으로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렸다.

 

‘아름다운 예술’을 뜻하는 베야스 아르테스 궁전은 독립전쟁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 1934년에 완공되었다. 외관은 아르누보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고 실내는 아르데코 양식으로 장식되었다. 우리나라 예술의전당과 같은 기능을 하는 이곳에서는 수요일과 일요일에 상설로 열리는 멕시코 전통 춤극을 감상할 수 있으며, 클래식과 합창 등 다양한 음악 공연도 열린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3대 작가 중 한명인 오로스코의 ‘카타르시스(1934년)’ 작품.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중남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멕시코다운 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3대 거장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디에고의 ‘우주의 지배자 El Hombre Controlador del Universe’라는 벽화이다. 원래 미국 록펠러센터에 그린 벽화였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파기되어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안타까워했던 디에고가 이곳으로 다시 옮겨 그려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CREDIT

에디터

writer

박명화 Ming K Park(중남미전문 사진작가)

TAGS
교차의 미학

교차의 미학

교차의 미학

자연 속 안온한 휴식처, 허드슨 밸리에 위치한 와일드 플라워 팜스 리조트를 소개한다.

 

 

뉴욕 사람들은 뉴욕 주의 허드슨 밸리를 ‘세상에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평화롭고 한적한 곳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과 비교했을 때 허드슨 밸리를 떠올리면 언제나 ‘평온’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에 와일드플라워 팜스 리조트 Wildflower Farms Resort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자연을 품은 럭셔리 리조트를 소개해온 오베르 주 리조트 그룹에서 만든 첫 번째 뉴욕 주 리조트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건축 회사 일렉트릭 보워리 Electric Bowery가 이곳의 설계를 맡았는데, 당시 캘리포니아 해안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허드슨 밸리의 자연과 어우러진 고유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선택한 방식이 바로 건물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무는 것. 덕분에 161만8,742㎡(140에이커)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도 이질감 없는 조화를 이룬다. 또 자연에 우두커니 세워진 건물이라기 보다 마치 원래부터 자연에 존재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총 65개의 독립된 객실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평온한 전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되었으며 객실 벽과 문을 유리로 마감해 자연과의 교감을 원활하게 한다.

 

 

또한 와일드플라워 팜스의 시그니처 공간인 그레이트 포치는 개방된 라운지로 샤왕컹크 계곡을 품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아늑한 벽난로가 있어 온기를 더한다.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연못 앞에 위치한 요가 스튜디오 등 휴식과 회복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또 럭셔리 리조트임을 증명하듯 허드슨 지역에서 자란 신선한 재료로 요리하는 레스토랑 클레이도 주목해야 한다. 투박하지만 세련된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기 때문. 상반되는 단어의 조화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가끔 고요하지만 화려했으면 하고, 또 자연과 함께하지만 현대적인 아름다움도 동반했으면 하는 반대되는 요소를 원할 때가 있지 않나. 와일드플라워 팜스 리조트는 바로 그 교차의 미학을 경험해볼 수 있는 장소다.

 

 

ADD 2702 Main St, Gardiner, NY 12525
TEL 855 472 3188
WEB aubergeresorts.com/wildflower-farms

CREDIT

에디터

writer

원그림(뉴욕 통신원)

TAGS
잠든 기억을 깨우다

잠든 기억을 깨우다

잠든 기억을 깨우다

잠자고 있던 한옥이 새롭게 깨어났다. 설치미술가 양혜규의 작품으로 빈틈없이 채운 <동면 한옥>전의 면면.

 

국제갤러리 본관 바로 옆에 자리한 한옥 전시관은 1935년에 지은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것. 지난 프리즈 기간에 맞춰 양혜규 작가의 <동면 한옥>전으로 화려한 오픈식을 열었다.

 

지난 2006년 8월, 인천의 한 민가에서 펼쳐진 양혜규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기억하는가. 서해 연안 부두에 인접한 사동의 한 폐가에서 열린 지난 전시는 지금도 다수의 미술인에 의해 기억되고 회자된다.

 

인조 짚을 주 재료로 직조한 ‘중간 유형(2015~)’ 연작 중 하나인 ‘중간 유형 – 아쿠아 털보 전사 방패’. 협소한 한옥 전시관에 덩치 큰 조각들이 꽉 들어차 있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수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장소인 터라 주변에는 쓰레기가 가득했고 전기와 수도도 끊긴 지 오래였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거쳐야만 했던 기초적인 단계를 ‘청소한다’와 ‘전기를 연결한다’는 행위로 정립했다. 깨진 거울, 조명 기기, 벽시계, 종이접기로 만든 오브제, 형광 안료 등 작품이라 하기에는 미미한 다양한 요소가 성긴 구성을 이루며, 일반적인 전시 형태에서 벗어난 과감한 시도가 엿보였다.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듯한 전시가 국제갤러리의 한옥 전시관에서 펼쳐졌다.

 

중정에서 바라본 고즈넉한 한옥의 풍취와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민속성과 수공예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보여주는 조각 ‘검정 속내 두발 희부연이(2015)’가 고개를 내민다.

 

<동면 한옥>전은 지난 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립된 환경에서 보다 어엿한 작품의 형태를 갖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뜯다 만 벽지, 깨진 벽돌, 옴푹 파인 벽면에 그대로 남아 있는 낙서, 시트지를 덧댄 에어컨 등 연출 방식은 여전히 <사동 30번지>와 많이 닮아 있다. 이 같은 장소성은 물론 시공 중인 한옥이라는 고유한 시간성은 켜켜이 쌓인 지난 시간과 더불어 과도기적 연상을 자아낸다.

 

거대한 벌집이나 열매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소리나는 행성 주머니 – 홍예 식물 지도(2023)’. 무지갯빛 방울을 가득 단 몸체에 해저, 사막, 열대 등 지역을 테마화하는 인조 식물을 담은 주머니로 구성되어 인공물과 자연을 동시에 아우른다 . 생명체의 머리가 바닥에서 들린 형국의 ‘중간 유형 – 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2020)’ 는 상승하려는 건지, 내려앉은 듯한 모습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특징. 한 팔은 먼 대들보 위에 걸쳐 있고 몸통 밑으로는 방울 촉수를 드리운다.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전설 속 이무기 또는 신비한 생물체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제목으로 차용한 ‘동면’이 주는 느낌을 전시의 주된 테마로 선정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코끝을 스치는 한약재 냄새와 바닥에 흩어진 전기 양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어느 한 구석에는 방치되듯 작품들이 바닥에 놓여 있고, 또 다른 구석에는 저장용 항아리나 가마니를 보관해둔 창고처럼 작업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비교적 협소한 공간이지만 규모가 큰 작가의 작품을 밀도 있게 배치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들보가 있는 복도에 설치한 ‘중간 유형-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2020)’ 작품은 마치 용이 되지 못한 하얀 이무기가 승천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팔을 하늘로 뻗는 듯하다.

 

 

반면 전시장 입구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비교적 익숙한 전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작품을 비추는 그 흔한 핀 조명은 물론 천장 조명도 마다했다는 것.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토템 로봇(2010)’ 연작을 제외하면 전기 양초와 자연광이 전시장을 밝히는 빛의 전부다.

 

 

이번 전시는 유보적 휴면 상태에 놓여 있는 공간을 적극 활용한 덕분에 휴면에 접어든 상태이지만, 또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잠재성 또한 느껴지는 양면의 매력을 지녔다. 다가오는 10월 8일 <동면 한옥>전은 막을 내리고 대대적인 공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유보적 휴면 상태에서 벗어나 또 어떠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지 기대된다.

 

처마 밑 서까래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타고 지상에서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는 남매를 그린 전통 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영감받은 설치작 ‘소리나는 동아줄(2023)’이 걸려있다.

CREDIT

에디터

photographer

임태준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