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에 남긴 기억

사구에 남긴 기억

사구에 남긴 기억

고향 바닷가의 모래언덕에서 꽃피운 우에다 쇼지의 독창적 연출 세계.

극장을 연상케 하는 프레임 너머로 사진을 보는 방식의 전시 디스플레이.

우에다 쇼지가 타계한 후 유족이 발표한 작품 <검은 파도>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전시 공간.

아버지의 목마를 탄 아이는 활짝 웃고 있고, 어머니는 그 옆에 기모노를 입은 채 단정히 서 있다. 왼쪽에는 꽃 한 송이를 쥔 여자아이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옆을 바라보는 남자아이가 서 있고, 오른쪽 저 멀리 자전거를 탄 아이가 짓궂은 표정으로 지나간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가족사진이지만 중앙에는 기울어진 우산과 중절모, 벗어놓은 부츠가 묘한 긴장감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인 그림이 연상되는 우에다 쇼지의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1949)이다. 연출 사진의 선구자이자 모노크롬의 대가인 우에다 쇼지는 일본 사진사에서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돗토리현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 8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70여 년 동안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관습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구도와 연극적인 출력으로 주목받았으며, 현실의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이미지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그가 26세던 1939년 촬영한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는 우에다 쇼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며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빛번짐 현상을 역이용한 사진집 <하얀 바람> 전시 공간. 작가가 사용한 단렌즈 카메라(속칭 베스단)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전시가 피크닉에서 열린다.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에서는 그의 초기 습작부터 대표작인 모래언덕 연작, 어린이들의 초상, 정물과 후기 컬러 사진까지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테마별로 선보인다. 우에다 스타일이라는 뜻의 ‘우에다조(Ueda-cho)’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독특한 미감을 경험할 수 있으며, 180여 점의 오리지널 프린트도 볼 수 있다. 특히 전시 제목의 모티브가 된 모래언덕 사진은 관람객이 주목해야 할 핵심 작품으로, 우에다의 예술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우에다 쇼지는 일본의 주류 사진가들과 달리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작업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그의 고향 돗토리현의 독특한 자연 지형인 사구는 그에게 더없이 이상적인 촬영장이었다. 광활한 야외 공간을 스튜디오처럼 창의적으로 활용해 인물들을 철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배치한 연출 사진들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촬영된 인물 군상에서는 그의 세련된 연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현실적 분위기의 모래언덕 사진과 함께 모래사장을 연상시키는 전시 연출이 관람의 몰입감을 더한다. 삶의 다양한 순간을 포착한 작품들 역시 눈에 띈다. 우에다는 다양한 사진 기법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새로운 연작들을 발표했다. 이후 자신의 주관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진 기술을 모색하며 여러 연작들을 선보인다. 시골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담은 <아이들의 사계절>, 핫셀블라드 카메라를 이용해 피사체와의 교감을 표현한 <작은 이야기>, 빛번짐 현상을 역이용해 따뜻한 느낌을 살린 컬러 사진 연작 <하얀 바람> 등의 작품에서 그가 시대를 초월한 사진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그는 새로운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탐구했으며, 아내와의 사별 후 일흔이 넘은 나이에 패션 사진에 도전한 일화는 그가 사진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 1949.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 1939.

사진계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라고 칭한 우에다는 상업적 성공보다는 자신이 찍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몰두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아마추어 정신 때문이었을 터. 이번 전시는 그의 사진을 통해 ‘사진 찍는 즐거움’을 다시 일깨우며, 우에다의 순수한 창작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는 2025년 3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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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정원

영감의 정원

영감의 정원

사진가 홍혜전의 새로운 작업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창작의 영감을 찾는 장소다.
삶과 예술이 긴밀하게 연결된 이곳에서 그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지낸다.

학동 부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루프톱 메종 마르니.

사진가 홍혜전의 새 공간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닌 작업실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4년 전, <메종>에 처음 소개된 그녀의 루프톱 정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그녀의 삶과 작업 스타일을 더 깊이 반영하고 있었다. “이곳 이름을 마르니 바이 루브르네프라고 지었어요. 9층 사진 스튜디오는 유려한 곡선으로 시스틴 채플을 연상시키며, 이탈리아 바티칸시티의 따뜻하고 자유로운 감성을 담고 있어요. 10층 ‘메종 마르니’는 루브르네프의 감성을 담은 모던 프렌치 가든을 품고 있죠. 각각 블루와 옐로 팔레트로 꾸몄으며, 앞으로 더욱 다채로운 컬러의 팔레트로 고객을 만날 예정이에요. 마르니 바이 루브르네프는 격식을 거부한 자유로운 이탤리언 감성을 지향합니다.” 홍혜전 작가가 공간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사진 스튜디오이자 정원을 품은 홍혜전 작가의 작업실.

수국과 키 큰 팜파스로 풍성하게 채운 정원. 유럽에서 공수해온 빈티지 분수대가 눈길을 끈다.

탁 트인 전망의 10층 루프톱.

이전 공간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0층 루프톱 정원의 재구성이다. 지난번 정원에서 한 번의 ‘연습’ 과정을 거친 그녀는 아쉬웠던 부분을 보강한 정원 연출에 더욱 힘썼다. “지난번 정원은 첫 시도였어요. 완벽하지 않은 몇 가지 요소들로 아쉬움이 있었어요. 당시 다양한 식물을 심어봤는데 얕은 토심 때문에 잔디가 제대로 자라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어려웠어요. 또 루프톱 바닥에 보일러가 깔려 있지 않아 겨울철에는 지나치게 추웠고요.” 그 당시의 문제점을 회상했다. 이번에는 그때 느꼈던 아쉬움을 보완하고자 건물의 설계를 맡은 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 김성우 건축가와 함께 설계 초기부터 철저히 준비했다. 정원 연출을 염두에 두고 9층과 10층 구조를 설계했으며, 특히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땅을 1m 깊이로 파서 새로운 토양을 채워넣었다. 식물의 종류에도 변화가 있었다. 작가가 특히 좋아하는 그라스류와 팜파스가 주를 이룬다. “수국은 많이 줄이고 그라스와 팜파스 중심으로 식물을 배치했어요. 팜파스는 키가 큰 갈대같이 생긴 아이인데, 웨딩 촬영할 때에도 분위기와 잘 어울려 선택했죠.” 또한 이번에는 폴딩 도어를 설치해 실내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때로는 문을 닫아 실내처럼 활용하고, 다시 열면 정원으로 바로 연결되는 공간의 유연성이 특징이다. 바닥에는 보일러를 설치해 루프톱이 더욱 쾌적해졌고, 이는 그녀가 이전 공간에서 보완하려던 추위를 위한 중요한 변화였다.

9층 사진 스튜디오의 한쪽 벽면의 구조를 독특하게 마감해 웨딩 촬영 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9층에 위치한 사진 스튜디오는 그녀의 작업 공간이자 창의적 영감을 주는 핵심 장소다. 6m의 높은 층고와 더불어 탁 트인 전망에 풍부한 자연광으로, 이전 스튜디오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전 스튜디오에서는 빛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기는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 덕분에 사진 촬영 시 더욱 생동감 있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죠.” 홍혜전 작가는 이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촬영은 물론, 소규모 웨딩이나 프라이빗 행사를 위한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층고가 높아 웅장한 느낌을 줌은 물론 서울 시내 한복판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기에 특히 웨딩 촬영으로 인기가 좋다. 이렇게 탄생한 홍혜전 작가의 마르니 바이 루브르네프는 그녀의 삶과 작업이 긴밀하게 얽혀 있는 특별한 장소다.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이 담긴 이곳은 방문자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경험을 제공하며, 홍혜전 작가의 삶과 예술을 더욱 풍부하게 반영하고 있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웨딩 사진 전담 포토그래퍼 홍혜전.

아치 형태로 몰입감을 높인 스튜디오 내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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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여정

꽃의 여정

꽃의 여정

성수동에서 열린 ‘플라워필즈’ 워크숍은 꽃의 숨겨진 뒷모습을 발견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세 명의 글로벌 플로리스트와 함께 창의적인 시간을 보낸 3일간의 기록.

주말 아침 햇살을 듬뿍 받으며 깊은 명상에 잠겨볼 수 있었던 싱잉 볼 명상 세션.

둥글고 커다란 초록 식물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하는 퍼카 팀.

곱슬버들 나무를 다듬고 있는 린네 팀. 얇은 가지를 엮어 두 그루의 거대한 나무를 완성했다.

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플라워필즈’ 워크숍은 마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듯했다. 3일간 꽃을 손에 쥐고 직접 작업해보면서 창의성과 즉흥성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었던 것. 워크숍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전문 플로리스트와 참가자들이 각자 자유롭게 꽃을 다루며 만들어낸 대형 플라워 작업은 공간 속 생기를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플로리스트들이 전해준 ‘꽃의 뒷모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었다. 우리는 흔히 꽃의 화려한 얼굴에만 주목하지만, 그 뒷모습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잎사귀 하나 하나와 줄기의 곡선까지, 눈에 띄지 않던 섬세한 아름다움이 작업을 통해 드러났다.

초록 식물 사이 리듬감을 부여하는 핑크빛 꽃과 갈대를 꽂아 완성했다.

천장에 매달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각목과 철망으로 형태를 잡고 있는 청록화 팀.

쎄종플레리의 임지숙 대표와 브랜딩 프로덕션 쓰쿠루가 진행한 이번 워크숍은 단순히 꽃을 배우는 시간 그 이상이었다. 흔히 가르침을 받는 ‘클래스 Class’와 달리, 창의적인 발상과 순간의 아이디어들이 자유롭게 교차하는 하나의 ‘장 Field’이었던 것. 워크숍 기간 동안 건축, 와인, 명상, 브랜딩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가 이끈 8개 소규모 세션에서는 예상치 못한 영감도 선사했다. 코사이어티의 중정 가든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공간의 소리를 느끼며 자연과 교감한 싱잉볼 명상 세션, 캐주얼 와인 바 탭샵바, 칵테일 맛집 믹솔로지의 세션까지 흥미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플라워필즈 워크숍을 이끈 쎄종플레리 임지숙 대표와 브랜딩 프로덕션 쓰쿠루.

꽃과 가지를 매만지며 세심하게 형태를 다듬고 있다

나무 기둥을 엮어 만든 기초 구조물. 가지의 방향을 살펴보며 구조를 만들어갔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진행할 컨셉트에 대해 논의 중인 퍼카 스튜디오 팀.

마지막 날, 참가자들이 함께 참여한 작품은 전시 공간에 공개되어 일반 관람객에게도 아름다움을 나누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작품들은 각각 베를린, 방콕,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글로벌 플로리스트 3명의 손길을 통해 탄생했다. 베를린의 스튜디오 린네는 이끼와 붉은 꽃무릇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했고, 방콕의 퍼카는 볼륨감 넘치는 꽃과 풀을 통해 페르난도 보테로의 사랑을 재현했다. 서울의 청록화는 한국적 색채와 전통적인 사신의 상징을 활용해 환상적인 꽃의 세계를 그려냈다. 3일간의 플라워필즈 워크숍이 주는 의미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단지 꽃을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모든 참가비와 수익금은 유니세프에 기부될 예정이다. 꽃의 뒷모습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삶의 이면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3일간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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