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지 19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 불리는 작가 백남준의 예술 세계.

<108번뇌>, 1998. 20인치와 29인치 CRT 모니터 108대, 컬러, 유성, 50분, 가변 크기.

만프레드 레베, <플럭서스 챔피언 콘테스트>, <페스톰 플럭소럼 플럭서스: 음악과 반음악, 기악 극장>, 1963. 백남준(작가 및 공연자), 흑백 사진, 20.3 × 25.4cm © Manfred Leve
청년 백남준이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다. 눈을 감고 양손을 얼굴 가까이 가져가서 눈을 가리고 다시 입을 가리며 움직인다. 그러다 한 손은 밑으로 내리고 또 다른 손은 이마 위로 올리며 서서히 얼굴을 드러낸다. 매우 예민하고 섬세하게 진행되는 퍼포먼스 중 어느 순간에도 집중과 긴장을 놓지 않는다. 1961년, 백남준이 카메라 앞에서 퍼포먼스하는 장면을 16mm 흑백 필름에 촬영한 뒤 비디오로 변환한 <손과 얼굴>의 한 장면이다. 비디오를 촬영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20대의 백남준은 이미 자신을 하나의 매체로 인식하고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이는 현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의 1부 가장 앞부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로봇 K-456>, 1964(1996). PCB, 서보모터, 센서, 스피커, 앰프, 배터리, 원격 조종기, 팬, 철 구조물, 185 × 70 × 55cm. © 백남준 에스테이트

<손과 얼굴>, 1961. 비디오, 흑백, 무성, 1분42초. ©백남준 에스테이트
지금까지 국내에서 자주 볼 수 없던 초기 백남준의 세계와 희귀 작품들이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에서 전시되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와 공동 기획해, 작가의 사후 개최된 국내 미술관의 회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본 전시는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가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실험적인 초기작들을 다룬다면, 2부 ‘필름 속의 백남준’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15점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3부 ‘백남준의 세계: 1980년대 후반~2006년’에서는 계속해서 창조적 도전을 일삼아온 그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인터넷이 없던 1974년 ‘전자 초고속도로’라는 단어를 통해 인터넷으로 연결될 세상을 예언했고, 1984년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모든 예술가가 곧 채널이 되는 미래를 예견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뇌졸중을 진단받고 2006년 마이애미에서 타계하기 전까지도 작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해프닝과 행위예술, 텔레비전과 방송, 인공위성, 대규모 비디오 설치와 레이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하며, 전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인류에게 선물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급진적인 작품세계는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실험적이고 도전적으로 평가된다. 타계한 지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가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 불리는 이유다.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은 2025년 3월 15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실 4, 5에서 만나볼 수 있다.

<TV 부처>, 1974(2002). 석불좌상 1기, CRT TV 모니터 1대, 폐쇄회로 카메라 1대, 가변 크기. © 백남준 에스테이트
자료제공: 부산현대미술관,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백남준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