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낙원

눈 덮인 낙원

눈 덮인 낙원

새하얀 설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녹이는 완벽한 겨울 여행. 알프스가 품은 특별한 쉼터 네 곳을 소개한다.

 

예술과 미식의 겨울 낙원, 슈발 블랑 쿠르슈벨

스위스 전통 가옥인 샬레 형식으로 설계된 슈발 블랑 쿠르슈벨. 클래식한 건물 위로 곱게 쌓인 눈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레드 톤의 감각적인 디테일이 돋보이며, 알프스 설산 전경이 보이는 전용 발코니가 포함된 객실 내부. © Cheval Blanc Courchevel

스키를 타고 나서 피로를 풀 수 있는 크로모테라피 스팀 룸. © Cheval Blanc Courchevel

장엄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알프스 정상에 위치한 슈발 블랑 쿠르슈벨. © Cheval Blanc Courchevel

LVMH 그룹이 선보이는 럭셔리 리조트 슈발 블랑 쿠르슈벨 Cheval Blanc Courchevel은 알프스 정상에 위치한다. 스위스 전통 가옥인 샬레 형식으로 설계된 이 호텔은 오직 36개 객실과 스위트룸만을 운영하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프라이빗한 여행을 위한 최적의 공간을 자랑한다. 이곳은 현대미술 감각을 더해 독특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로비에 자리한 파올라 피비의 붉은 깃털 곰 ‘루즈 루즈’를 비롯해, 호텔 곳곳에 배치된 예술 작품은 공간 전체를 갤러리처럼 감각적으로 채우고 있다. 또한 대형 수영장과 사우나, 한증막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스키 후 피로를 풀 수 있는 크로모테라피 스팀 룸과 얼음 분수 같은 특별한 경험이 가능하다. 미식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명성이 자자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르 1947 아 슈발 블랑’은 세계적인 셰프 야닉 알레노가 선보이는 독창적인 요리로 미식가들에게 잊지 못할 맛을 선사한다. 테라스에서는 불맛과 목재 향이 돋보이는 요리를 맛볼 수 있으며, 라이브 피아노 연주와 함께하는 바에서는 따뜻한 암체어에 몸을 맡기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315㎡ 규모의 프라이빗 샬레는 다이닝 룸, 전용 트리트먼트 룸, 영화관 등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어 완벽한 프라이버시와 럭셔리한 공간을 제공한다. 슈발 블랑 쿠르슈벨은 설산의 장엄한 자연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으로서, 알프스 겨울 여행을 예술과 럭셔리의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WEB www.chevalblanc.com

 

산속 별장에서의 우아한 쉼, 포시즌스 호텔 메제브

프라이빗 샬레 컨셉트로 프랑스 남동쪽 메제브 산 속에 위치한 포시즌스 호텔 메제브. © Four Seasons Hotel Megève

몽블랑 전경를 볼 수 있는 유서 깊은 이데알 1850 레스토랑. © Four Seasons Hotel Megève

유리조각가 질 샤브리에 Gilles Chabrier 작품의 유리 카운터가 돋보이는 현대적인 감각의 ‘글라스 바’. © Four Seasons Hotel Megève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의 개인 소장품 가구와 예술품이 비치되어 있는 아늑한 우드 톤의 객실 내부. © Four Seasons Hotel Megève

프랑스 남동쪽의 ‘알파인 원더랜드’라 불리는 메제브에 자리한 포시즌스 호텔 메제브 Four Seasons Hotel Megève는 유럽 산악 지역에서 포시즌스 그룹이 선보인 첫 번째 호텔이다. 프라이빗 샬레를 컨셉트로 설계된 곳인데, 마치 산속 별장에 온 듯한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2017년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협력을 통해 새롭게 문을 연 호텔은 메제브를 국제 관광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주요 동력이 되었다. 호텔 곳곳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와 정통성이 깃들어 있으며,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 Ariane de Rothschild의 개인 소장품으로 구성된 가구와 예술품들이 특별한 매력을 더한다. 포시즌스 호텔 메제브는 총 55개의 우아한 객실과 스위트룸을 갖추고 있다. 메제브에서 슬로프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최초의 호텔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전문 스키 컨시어지가 각 개인의 수준과 선호에 맞춘 맞춤형 일정을 제공해 최상의 스키 경험을 선사한다. 슬로프 꼭대기에는 유서 깊은 ‘이데알 1850’ 레스토랑과 함께 호화로운 18홀 골프 코스가 있어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또한 6개의 프라이빗 트리트먼트 룸을 포함한 웰니스 공간은 알프스의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완벽한 휴식을 제공한다. 포시즌스 호텔 메제브는 아늑함과 고급스러움,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며, 알프스의 매력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손색없다.

WEB www.fourseasons.com/megeve

 

대자연 속 짜릿한 겨울 액티비티, 아만 르 멜레장

눈으로 뒤덮인 외부와 대조되는 따스한 분위기의 목재로 마감한 레스토랑 내부.

아늑한 별장을 연상케 하는 객실 내부.

눈길을 시원하게 가르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개썰매 액티비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산장 레 프레 드 라 크루아.

스위트 스키 피스트 객실에서 즐길 수 있는 야외 욕조.

프랑스 알프스의 레 트루아 발레 Les Trois Vallées 중심부에 위치한 아만 르 멜레장 Aman Le Mélezin은 웅장한 자연 속에서 스키와 고요한 웰니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휴양지다. 쿠르슈벨 1850 마을의 벨코트 피스트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이 호텔은 한눈에 알파인의 매력을 오롯이 담고 있기 때문. 호텔은 31개 객실 중 23개에 발코니를 갖추고 있으며,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창을 통해 산과 숲, 스키 슬로프가 펼쳐진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최근 리노베이션으로 추가된 일광욕 테라스와 바는 설경을 더욱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하루 종일 스키를 즐긴 후 스파에서 피로를 풀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기에 더없이 완벽할 터. 좀 더 특별한 알프스 경험을 원한다면 그림 같은 산장인 레 프레 드 라 크루아 Les Prés de La Croix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를 추천한다. 황혼이 깔릴 무렵 스노모빌을 타고 라 타니아 La Tania에서 출발해 산장에 도착하면, 타오르는 벽난로 옆에서 치즈 퐁듀와 핫팟 같은 전통 사보이식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는 개인 셰프가 준비한 맞춤형 5코스 메뉴도 즐길 수 있으며,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썰매를 타고 돌아오는 여정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스키 외에도 알프스를 새로운 시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마련되어 있다. 일출 시간에 열기구를 타고 알프스 설경 위로 떠오르거나, 헬리콥터와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짜릿한 스릴과 함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아만 르 멜레장은 알프스의 웅장한 자연과 프랑스 샤토의 우아함을 조화롭게 담아낸 최고의 럭셔리 휴양지다.

WEB www.aman.com/resorts/aman-le-melezin

 

온 가족이 함께하는 설산의 모험, 클룸 호텔 생모리츠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로비 라운지.

겨울이면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지는 클룸 호텔 생모리츠. 봄, 여름철에는 또 색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객실 내부.

바깥 자연 풍경이 수영장 물가에 비춰 아름답다.

알프스 설산의 품에 자리한 클룸 KULM 호텔은 160년의 전통과 현대적 럭셔리함의 조화를 보여주는 스위스 생모리츠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생모리츠 호수와 엥가딘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숨막히는 뷰를 자랑하며, 겨울에는 설산 위로 펼쳐지는 스포츠, 여름에는 다채로운 액티비티를 모두 즐길 수 있다. 150개 객실은 각각 고급스럽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하며, 특히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피에르 이브 로촌 Pierre-Yves Rochon이 설계한 새로운 객실은 세련된 디자인과 편안함을 완벽하게 결합했다. 대부분의 객실에서 호수와 설산이 펼쳐지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가족 여행객을 위한 연결 가능한 객실도 마련되어 있다. 2000㎡ 규모의 클룸 스파는 실내외 수영장, 사우나, 맞춤형 트리트먼트,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호수와 엥가딘 산맥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은 방문객들에게 완벽한 휴식 시간을 선사한다. 겨울에는 호텔 소유의 자연 아이스 링크에서 스케이팅과 컬링을 즐길 수 있고, 여름에는 골프 코스에서 특별한 경기를 경험할 수 있다. 호텔 근처에서는 스노 폴로 월드컵과 화이트 터프 같은 국제 이벤트가 열리며, 이러한 이벤트는 생모리츠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한다. 아이들을 위한 마르모타 키즈클럽은 다양한 놀이와 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요리, 공예, 아이스 스케이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가족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제공한다.

WEB www.kulm.com

 

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

정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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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길

사진가의 길

사진가의 길

한파주의보가 내린 지난 1월의 어느 날, 사진가 마이클 케나를 따라 강원도의 설원과 바다를 누볐다. 예측 불가능한 겨울의 순간이 그의 렌즈에 포착되길 기대하며.

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ondo, South Korea. 2007. © Michael Kenna

미디엄 포맷 필름 카메라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마이클 케나 작가.

현재 공근혜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전시 <건축을 넘어>는 풍경사진의 대가 마이클 케나가 포착한 세계의 건축물을 모은 전시다.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포착한 건축물은 그의 풍경사진과 닮아 고요한 동시에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과 자연의 간극 따위엔 개의치 않은 듯, 오직 시간과 공간 속 존재하는 피사체가 지닌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이번 전시를 기념하여 2년 만에 한국을 찾은 마이클 케나 작가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으레 그랬듯, 카메라를 들고 자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의 발자취를 따랐을 때 내 시선의 끝엔 무엇이 맺힐지 궁금해하며 사진가의 길을 함께했다.

그날은 하필 올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내린, 추위가 절정으로 치달은 날이었다. 마이클 케나 작가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달하는 대관령 언덕 위에 누워 몇 분간 가만히 멈춰 있었다. 새롭게 찾은 ‘나무 친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흐르는 콧물을 닦을 여력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추위였지만, 일행 중 최고령자인 70대 작가는 초연히, 그리고 태연히 렌즈 앞 피사체에만 집중했다. 케나 작가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동행한 허동욱 사진가는 대관령 촬영이 끝나고 나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차에 올라타 “간만에 사진다운 사진을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안을 미리 구상하고, 사전 세팅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요소를 통제하는 스튜디오 촬영이 아니었다. 피사체부터 날씨까지, 그 어떤 것도 미리 생각해두거나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전 6시부터 시작한 스케줄이 끝나고, 제대로 된 첫 끼를 맞은 저녁 자리에서 작가에게 물었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고 고된 날씨에, 당신을 세상 밖으로 나서게 해 셔터를 누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라고. 그는 웃으며 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열정을 느끼는 일을 하게 되면 절로 움직이게 된다”고. 심지어 “이번엔 눈보라가 불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며,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제 막 고희를 넘긴 작가에게서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21세 무렵의 눈동자를 보았다. 고될 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여정을 따라간 이유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을 좇기 때문이 아니었을는지. 작가와 나눈 대화를 홀로 곱씹으며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해본다.

Basilica San Marco, Study 3, Venice, Italy. 2019.

Philosopher’s Tree, Study 1, Biei, Hokkaido, Japan. 2004. © Michael Kenna

Flatiron Building, Study 1, New York, New York, USA. 1976. © Michael Kenna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2월 15일까지 공근혜갤러리에서 진행하는 <건축을 넘어> 전은 건축물을 촬영한 작업을 다룬다. 당신에게 자연과 나무, 건축물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둘 사이엔 유사한 부분이 더 많다. 모두 우주의 일부인 동시에 살아 숨쉰다. 나는 나무, 바다, 산 또는 건물과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우리 모두 서로의 주변에 공생하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우리의 일부인 동시에 우리 또한 그들의 일부로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동일한 존재다.

강원도 영월의 솔고개 소나무를 바라보는 마이클 케나 작가.

대관령의 언덕을 오르며 피사체를 탐색 중이다.

한국 대중들에게 <솔섬>(2007)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LNG 생산기지가 될 뻔한 강원도 삼척 월천리의 솔섬이 당신의 사진 덕분에 자연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값지다’는 표현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내 사진이 이 아름다운 소나무를 보존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예술을 통해 전개되는 선의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누군가 사진을 지구에 심겨진 씨앗에 비유하며 각각의 작품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동시에 큰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그 말을 좋아한다. 내 작업은 관객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력을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바라며 일해오고 있다. 이를 통해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영향이나 변화를 전개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솔섬>같이 큰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작은 작품 하나가 관객을 움직이는 힘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당신 작업의 본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진 찍을 때마다 존중과 경외심, 그리고 우주의 신비에 대한 놀라움을 담아 촬영한다. 내 인생의 매 순간은 절대적인 기적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촬영을 할 때 지닌 마음가짐이 미세하게나마 인화된 사진으로 이어진다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관객의 반응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조용히 렌즈 속 피사체를 응시하고 있는 작가.

동해 바닷가에 잠시 멈춰 그곳의 정취를 카메라에 담았다.

겨울을 가장 선호하는 계절이라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겨울은 해가 짧은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은데. 이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겨울 촬영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에 바로 답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제약 조건 말이다. 작업 초기부터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감지할 수 있는 것, 즉 남겨진 것들의 자취와 흔적, 분위기 등을 포착하려 노력해왔다. 어린 시절에는 보이지 않는 신이나 우주 뒤 숨겨진 자연의 힘 같은 초인적 힘의 존재를 믿었는데, 동네 교회에 앉아 그 존재를 상징하는 듯한 제단 위 내리쬐는 빛을 지켜보곤 했다. 겨울에는 구름, 비, 눈, 바람, 그림자, 긴 밤이 있고, 선명함은 가려져 있다. 밝은 햇살이 돋보기 역할을 하며 모든 세세한 요소를 드러내는 여름과는 빛의 성격이 다르다. 개인적인 취향은 겨울 쪽이고, 그에 따라 사진 작업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동시에, 당신은 인내심이 강하고 조급해하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신학교에서 보낸 7년 동안, 매일 밤 ‘위대한 침묵 Magnum Silentium’이라는 시간을 가졌다. 10시간 동안 대화나 소통을 할 수 없었는데, 나는 이 시간을 내면의 상상력을 듣는 사색의 시간으로 갖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소음, 24시간 가능한 즉각적인 소통, 문자와 이메일, 소셜 미디어가 지배한 오늘날의 세상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시간이다. 내 성격은 어린 시절 절제된 명상과 집중, 채우지 않아도 될 빈 공간을 사색하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그 덕분에 내게 부여된 것보다 더 많은 인내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당신의 작품은 주로 6 × 6cm라는 비교적 작은 프레임을 통해 전시되는데, 이 한정된 프레임에 무엇을 담고 강조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내 작품들은 모두 암실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직접 인화한다. 톤 처리, 리터치, 질감 처리부터 서명과 마운트 작업 등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관객은 작품에서 10인치(25.4cm)가량 떨어져서 응시해야 한다. 이는 관객이 프레임에 홀로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친밀한 거리다. 사진을 찍고 인화할 때, 글을 쓸 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때 가장 최적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거울과 창 Mirrors and Windows> 전시를 기획한 존 사코우스키 John Szarkowski가 말한 것처럼 혼자 있는 상태는 내면의 대화와 외부의 관찰을 가능케 한다. 각자의 경험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압도감을 느낄 때, 누군가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내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흑백사진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는가? 색상의 제약 때문에 촬영부터 인화까지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 한계 때문에 흑백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항상 색으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나는 주변의 요소들을 복제하는 데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적어도 내게는 흑백사진을 보고 다양한 해석이 오가는 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 같지만) 흑백TV 시대 출신인 내겐 흑백이 컬러보다 더 차분한 동시에, 개인의 해석이 더 많이 개입될 수 있다고 느껴진다. 최근 토마스 만의 책을 원작으로 한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봤다. 과거 흑백 버전으로 본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항상 남아 있었지만, 이번에 본 컬러 버전은 예전과 같은 감동을 주지 않았다. 이는 최근의 예시에 불과하다. 물론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암실에서는 흑백이 더 유연하고, 변화에 열려 있다.

사진가로서 한국을 계속 방문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사진 촬영은 카메라 앞에 있는 대상과 대화를 나누는 행위로 간주한다고 말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날씨처럼 간단하고 피상적인 주제를 다루다가도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대화 또한 필연적으로 깊어지고, 사적인 이야기도 오가게 될 것이다.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다양한 층위를 탐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촬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번 방문한 장소를 다시 찾아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소도 변하고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누구든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지혜로운 명언을 남겼다. 사람이든 강물이든 변하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로 돌아가더라도 그곳은 매번 달라질 것이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세계 곳곳에 ‘나무 친구’를 두고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한국에도 당신의 ‘나무 친구’가 있는가? 솔섬 소나무들을 친구로 여겨서 그곳을 여러 번 방문했다. 내가 사진으로 담은 몇몇 나무들은 다시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이제는 내가 촬영한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이는 때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일본에서 무분별한 사진가들이 (내가 촬영한 장소를) 사진 찍으러 가는 길에 농작물을 짓밟고 경고표지판을 무시한 끝에 아름다운 나무가 베어진 일이 있었다. 그 외 또 다른 두 그루의 나무도 베어졌는데, 이 일이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를 바라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관리가 어려운 장소에 불필요한 관광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느꼈다.

세계의 다양한 공간을 탐험하고 돌아다니는데, 수많은 장소와 사물 중 셔터를 누르고 싶게끔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셔터를 누르는 이유, 시기, 방법에 대한 정해진 공식은 없지만, 최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려 노력한다. 먼저 공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내가 등장해, 주변을 탐색하며 시각적으로 끌리는 요소들을 감지하고 찾아내려 한다. 결과물을 미리 상상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어떤 사진이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이 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대화 속으로 들어간다. 그 대화가 5분짜리가 될지, 5년짜리가 될지, 50년짜리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 시간에 존재하고, 공식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답을 미리 알 필요는 없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사진가로서 커리어를 구축해왔다. 당신 나이의 절반보다 많은 기간이기도 한데,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와 현재를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내 나이 절반이 50세를 훌쩍 뛰어넘는 날이 올 때도 여전히 살아서 발로 뛰어다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쩔 수 없이, 내게 남겨진 시간이 뒤 세대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나는 21세의 마이클 케나가 71세의 마이클 케나와 여러모로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거울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몸은 수년간의 경험을 반영할 것이다. 사진을 시작한 초기에는 이 모든 것이 어디로 향할지 전혀 몰랐다. 항상 배가 고팠고, 열망했고, 열정적으로 매일 25시간씩 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더 이상은 현실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지금은 매일 24시간씩만 일한다.

2년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그동안 아직까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이 아름다운 나라와의 또 다른 대화가 기대된다. 가족, 사랑, 건강 등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시간의 소중함도 항상 떠올리곤 한다. 계속해서 흐르는 이 유한한 시간 속, 가능한 한 많은 장소에서 좋은 시간을 즐기고 싶다. 한국은 기회가 될 때마다 돌아와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멋진 곳 중 하나다. 기존 아카이브에 이번에 촬영한 사진을 몇 장이라도 더 추가할 수 있다면 더욱 기쁠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의 모습을 담은 책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지만, 프로젝트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일단 내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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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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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초상

흔적의 초상

흔적의 초상

사라져가는 것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 사진가 강진주는 전통 도구와 기억을 사진에 담아, 시간의 흔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강진주 작가의 작품 <나무 바가지 Wooden bowl>. 두손갤러리에서 개인전 <밥은 먹고 다니냐>가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올해 1월 4일까지 열렸다. © 강진주

촬영을 위해 수집한 떡살.

2020년 출간한 ≪쌀을 닮다≫는 미식 책 분야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구르망 월드 쿡북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생명의 순환’을 주제로 한국의 식문화를 예술로 표현하는 강진주 작가.

간장게장을 촬영한 사진을 패브릭에 프린트해 커튼으로 활용했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간이 멈춘 듯한 독특한 공기가 흐른다. 이곳에서 사진가 강진주는 전통 도구와 자연의 흔적을 사진에 담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깊은 애정과 탐구를 펼쳐낸다. 강 작가는 중앙대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일본의 아마나 스튜디오에서 커머셜 작업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곳에서 얻은 기술적 완벽함과 작업 태도는 지금까지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일하던 시절, 하루 수백 컷을 촬영하며 완벽함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사진이 단순히 기술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죠. 결국 제 작업은 사람과 도구, 그리고 시간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방향으로 옮겨갔어요.” 그녀의 작업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만난 멘토 니시미야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에게서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사진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배웠다. “니시미야 선생은 항상 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셨죠. 단순한 일상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어요. 그 시간은 저에게 ‘아트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 소중한 배움의 순간이었죠.” 강 작가는 지난여름, 9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멘토와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며, 그가 남긴 지혜를 여전히 작업에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또 다른 중요한 동반자는 바로 반려견 소피였다. 17년 동안 작가 곁을 지킨 소피는 단순히 반려동물이 아니라, 작업과 삶에서 균형을 찾도록 도와준 소중한 존재였다. “소피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삶을 조금 더 떨어져서 바라보는 법을 배웠어요. 소피와의 시간은 작업뿐만 아니라 제 삶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어요.”

<수저 Spoon and chopsticks>. © 강진주

<광주리 Multi-purpose hamper 2>.

작가는 작업에서 전통 도구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할아버지 집에서 접한 맷돌, 멍석, 떡살 같은 물건이 작품의 영감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가 절구에 쌀 빻던 모습, 멍석에서 피어오르던 먼지, 그리고 차례 음식에서 나던 간장과 참기름의 향은 제 작업의 기초가 되었어요. 그런 기억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에요.” 작가는 이런 도구를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진은 도구들을 주인공처럼 빛나게 하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제가 찍는 물건들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다워요. 하지만 저는 그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주고 싶어요.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는 주인공처럼요.”

철판과 합판으로 만든 작업 보드. 그동안 촬영한 작업물들이 가득하다.

오래된 건물이었던 터라 내부를 통째로 뜯어 고쳤다. 나무 바닥과 박공지붕이 주는 따스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가구 반닫이 위로 작가가 그동안 수집해온 독특한 오브제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은 곽인식 작가의 작품.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 그 달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촬영한 시리즈 중 4월의 딸기 작품.

 

<쌀싹과 유기>. © 강진주

집 안 곳곳 이야기가 담긴 한국 전통의 것들이 가득하다.

≪소피의 식탁≫, ≪쌀을 닮다≫ 등 그동안 출간해온 책과 아카이빙 자료들. 뒤에 걸린 작품은 10월의 배추 작품.

강진주 작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동반자인 반려견 소피 사진.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수납함. 세 번째 단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캐논 카메라가 강 작가의 인생 첫 번째 카메라다.

<저울 Scale>. © 강진주

아티스트 성능경의 퍼포먼스 도중 타다 남은 부채가 걸려 있다.

주방 선반 위에는 조선후기 도자기 석간주와 시각장애인이 만든 천사상이 놓여 있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도구를 의인화하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그녀가 사진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멈추는 행위지만, 동시에 시간의 흔적을 담는 과정이기도 해요.” 강 작가의 작업은 자연스레 한식과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1월부터 12월까지 기록하며, 사라져가는 전통과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특히 그녀가 쓴 책 ≪쌀을 닮다≫는 이런 작업의 연장선에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쌀은 단순히 식재료를 넘어서, 한국 문화와 역사의 중요한 상징이에요. 1만7000년 전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증명하듯이, 쌀은 이 땅의 뿌리 같은 존재죠.” 그녀의 작업은 과거를 향한 향수를 넘어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기후 변화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작업에 담아내고자 한다. “우리가 각자 쓰레기를 20%만 줄여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작은 실천이라도 하게 만드는 동기를 주고 싶어요.” 강진주 작가의 사진은 기록을 넘어서 사물과 인간, 자연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작업이다. 그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과 시간을 불러내어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사진은 제게 작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녀요. 그것은 삶의 여정이자, 제가 담고 싶은 세상을 담아내는 도구예요.” 사진가 강진주의 이야기는 시간과 기억에, 그리고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INSTAGRAM @jinju_k_artist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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