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차실

음악이 흐르는 차실

음악이 흐르는 차실

차와 음악, 그리고 공간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울림이 일상의 틈을 메운다.

오랜 시간 쌓아온 조은숙 대표의 감각이 머무는 이곳에서, 소리는 삶을 채우는 한 조각이 된다.

카레 클린트의 올 블랙 ‘KK47510 더 레드 체어 The Red Chair’, 박성철 작가의 옻칠 테이블, 플로스의 스트링 펜던트 조명이 어우러진 차실. 찻장을 촬영한 사진은 박찬우 작가의 작품.

데논의 CD 플레이어 DN – 951FA와 DB 테크놀로지 Technologies의 4496 컨버터.

 

집은 단순히 거처를 넘어, 삶의 취향과 태도를 담는 공간이다. 감도 높은 안목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를 이끌고 있는 조은숙 대표의 집 한쪽에는 오디오가 놓인 차실이 있다. 소리와 취향이 공명하는 이 공간에서 그녀는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때로는 책을 읽으며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조은숙 대표에게 음악은 배경음을 넘어 취향의 한 조각인 셈이다. “음악은 듣기만 한다고 아는 게 아니에요. 차도 마찬가지죠. 많이 마셔봐야 차를 알고, 음악도 계속 들어야 그 깊이가 느껴지기 마련이에요.” 그녀의 말처럼, 이 공간은 청음실으로서 존재한다기보다는 감각을 키우고 취향을 확장하는 시간이 쌓이는 곳이다. 그녀에게 차와 음악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오랜 시간을 들여야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것. “음악이든 차든 절대 금방 알아지는 게 아니에요.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내 것이 돼요.” 조은숙 대표는 차 마시는 행위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라 말한다. 차를 우려내고 찻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에도 생각이 정리되고 긴장이 풀어진다. 그런 시간 속에서 음악이 더해지면, 공간은 더욱 깊어진다.

자이스 이콘의 시네마 튜브 앰프 도미날 Dominar – L Typ 32-02/11.

조은숙 대표는 이곳에서 종종 차와 함께 심적 안정을 취하는 시간을 갖는다.

화려함보다는 단정한 디자인과 깊이 있는 소리를 중심으로 선택한 오디오는 빈티지 자이스 이콘 Zeiss Ikon의 Ikovox D Typ 31-15/1이다. 1926년 독일에서 설립된 자이스 이콘은 정밀 광학과 기계 공학을 기반으로 한 카메라와 오디오 기기를 제작했으며, 특히 20세기 중반에는 고품질 의 라디오와 스피커를 생산하며 명성을 쌓았다. 조은숙 대표가 선택한 이 빈티지 오디오는 화려한 장식 없이도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다. 공간 속에서 시간을 축적하고 감각을 확장시키는 매개체가 되는 것. “나는 돈 냄새 나는 것을 싫어해요. 너무 화려한 것보다는 차분하고, 묵직한 것. 그래서 블랙과 매트한 디자인을 좋아해요.” 실제로 드레스룸을 들여다보니, 놀라울 정도로 모든 옷이 블랙이었다. 그녀의 오랜 취향이 하나의 철학처럼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음악은 초보자라도 자꾸 듣다 보면 들리는 거예요. 글도 많이 읽어야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처럼, 음악도 마찬가지죠.” 기기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듣는 사람의 감각이라고 조은숙 대표는 강조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곳이 차실로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음악을 듣는 공간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게 되고 음반을 모으게 되면서 차와 음악이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이 공간은 시간이 지나며 조은숙 대표의 취향에 맞춰 진화했다. 이곳에서는 그녀가 사랑하는 클래식과 재즈가 흐른다. 특별한 순간에만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니다. “음반 하나 듣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해요. 그래서 늘 틀어두는 건 아니고 시간이 날 때나 저녁에 여유가 있을 때 틀어요.” 가끔은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처럼 편안한 곡을, 때로는 마음을 집중하게 만드는 클래식을 듣는다. “클래식은 듣다 보면 감정이 휘몰아쳐요. 그래서 더 몰입하게 되고, 함께 기쁘고, 함께 슬퍼지는 경험을 하게 돼요.”

그동안 사 모은 CD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이곳에는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테이블이 놓여 있고, 작가들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꼭 필요해서 들였다기보다는 마음이 가는 것을 하나둘 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완성됐다. “저는 취향을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도, 차도, 공간도 계속해서 배워가는 중이에요. 취미가 생활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죠. 그냥 듣고 마시는 게 아니라, 내 취향이 점점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차와 음악을 즐기는 시간은 정말 소중해요.” 이 공간은 앞으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차츰 변해갈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들을 오래 곁에 두고 천천히 즐기는 태도’일 것이다. “나는 오디오 마니아는 아니에요. 그냥 내가 즐길 수 있으면 된 거죠.” 조은숙 대표의 말처럼, 음악과 차, 그리고 공간은 그렇게 그녀의 취향 속에서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덴스크에서 구입한 흔들의자와 달항아리 작품, 한지로 마감한 슬라이딩 창문에서 동양적 미감이 느껴진다.

벽에 걸린 회화는 김근종 작가의 작품.

조은숙 대표가 가장 애정하는 미국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의 음반과 미 부에노스 아이레스 큐에리도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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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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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된 주택

미술관이 된 주택

미술관이 된 주택

성북동의 오랜 주택이 우손 갤러리 서울의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리노베이션을 책임진 건축가 김세진 대표와 인테리어 소장 정지욱 대표의 이야기.

막혔던 벽을 뚫고, 유리를 활용해 1, 2층이 하나처럼 보이게끔 만든 우손 갤러리 서울의 전시 공간.

우손 갤러리 서울의 외관. 기존 벽돌과 새 벽돌 사이의 이질감은 시간이 갈수록 중화될 것이다.

성북동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거닐다 보면 지난해 말 서울에 새롭게 둥지를 튼 우손갤러리가 차분하고도 장엄한 모습으로 찾아온 이들을 반긴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주택처럼 보이는 이 붉은 벽돌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화이트큐브 공간이 펼쳐진다. 과거 베네수엘라 관저였던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내부엔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자 한 지요건축사사무소 김세진 대표(건축 설계 담당)와 그루 스튜디오 정지욱 대표(인테리어 담당)의 숙고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처음부터 건물이 풍기는 무게감과 역사를 변형할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박공지붕만이 가진 매력적인 경사면, 덩어리의 물성, 시간이 가진 힘. 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김세진 대표는 건물의 매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택이 가지고 있던 창들을 메우며 기존의 벽돌과 비슷한 크기와 색의 벽돌들을 조합해 텍스처와 컬러감을 구현했다. 몇 차례씩 이를 재배치하고 줄눈을 맞춰가며 라인을 정리하기도 했다. 새롭게 지은 담장은 건물 세월의 흔적이 가진 내러티브를 확장하기 위해 코르텐 강판을 사용했다. 코르텐은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녹스는 소재인데, 오래된 벽돌이 가진 힘과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이를 선택한 것이다.

박공지붕의 특징이 돋보이는 2층의 전시 공간.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지날수록 기존 벽돌과 새 벽돌 사이의 이질성은 점점 옅어질 것이고, 코르텐 담장과 벽돌 사이의 그것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는 노출 콘크리트와 구로 철판으로 이루어진 대구 우손의 아이덴티티를 확장한 것이기도 하다. 이번 리노베이션의 가장 큰 숙제이자 목표는 건물이 풍기는 외부 이미지와 내부 공간 사이 전환되는 분위기. “결국 갤러리 밖의 세계와 안의 세계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언덕이 있는 주택 건물 안에 들어오면 작지만 강한,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지죠. 그 전환이 잘 이루어지면서도, 각자의 분위기가 잘 증폭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만들었어요. 겉에서 보면 왠지 내부가 우드로 꾸며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막상 공간에 들어서면 흰색 벽면에 그레이 톤의 스톤 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어요. 좀 더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공간의 미니멀함이 느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바닥을 덮는 소재로는 콘크리트가 후보로 잠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스톤 타일이 채택된 이유는 단 1cm의 두께 차이 때문이었다. “1cm인데, 이 1cm가 진짜 중요했어요. 워낙 층고가 낮은 건물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그 단점을 최소화한 거예요.” 기존의 룸과 기둥을 다 헐었지만 내부에 새로운 기둥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조적조로 시공된 건물 벽을 파 철골로 보강한 뒤 새로운 기둥을 세웠고, 천장의 노출 빔이 보이는 것을 택하기도 했다. 제한된 층고와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확장하고, 개방감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우손 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유진 작가의 전시 전경. 박공지붕에 달린 바리솔 조명은 작품에 따라 색을 바꿀 수 있다.

“조금이라도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죠. 갤러리에서는 시선에 따른 거리감을 더 줄 수 있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거잖아요. 건축적으로 볼 때는 조적조로 설계된 것을 파내 철골조로 바꾸는 것이 중요했는데, 거기에서 멈추는 건 엔지니어의 일이죠. 건축가가 해야 되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기본적으로 공간이 어떻게 되면 좋겠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 기술적인 솔루션을 생각했어요.” 김세진 대표가 말했다. 복층 형태로 보이는 1, 2층 모습도 그 연장선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복층 구조처럼 보이는데, 사실 복층 구조는 아니죠. 막혔던 벽을 털어내고 유리를 활용해 공간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현재 갤러리의 1층과 2층은 전시 공간으로, 지하 1층과 4층의 옥탑은 프라이빗 리셉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앞면이 뚫려 있던 주차 공간을 유리로 막아 ‘산 모양을 한, 하나의 반듯한 덩어리’의 모습을 연출한 것도 이들의 작업. 항상성을 가진 블랙 스테인리스 스틸로 1층 출입구와 지하 라운지를 분리하며 건축적인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지하 1층과 4층을 장식한 가구들은 정지욱 대표가 직접 셀렉한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들이다. 시간의 흐름을 보존한 외관의 질감과 융화되면서도 모던한 특징을 가진 바닥과 벽, 천장과는 부드럽게 전환되는 느낌을 준다. 이는 모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프로젝트와 금호미술관의 바우하우스 전시, 파리 메종 & 오브제의 한국관 전시 공간 등을 기획해온 정지욱 대표이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옥탑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장식한 1960년대의 빈티지 가구들.

대구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우손 갤러리가 서울로 지점을 이전한 건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이들이 바라는, 관객들에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우손 서울의 이미지도 비슷하다. “단순하게 그림만 보는 공간이 아니라 정말 집 같은, 미술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어서 강의도 듣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실제 앞으로 이곳에서 아카데미 같은 강의도 이루어질 거라 들었어요. 10년 넘게 대구의 메이저 갤러리로 단단하게 존재해온 우손이 서울에서 이렇게 미술을 풀어가면, 시간이 지날수록 코어가 더 강해지는 이 벽돌처럼 갤러리도 더 굳건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정지욱 대표가 말했다. 그리고 설계자 김세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굳이 스펙터클한 경험이 아니어도, 이곳에서 본 그림이 집에서도 생각난다든지, 그 경험을 돌아봤을 때 ‘참 좋았어’, 이 정도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을 갖고 있는 성북동 주택지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라는 것도, 새롭게 짓는 기념비적인 작업보다 이런 느낌에 가까운 것 같아요. 건물은 이미 포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 나머지의 새로움은 이제 우손이 채워가는 거죠.”

지하 1층의 리셉션 공간을 채운 빈티지 가구들. 르 코르뷔지에, 폴 카도비우스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업이다.

 

INTERVIEW
이유진 작가

우손 갤러리 서울에서는 4월 5일까지 이유진 작가의 전시 <Positive Sinking>이 개최되고 있다.

 

이유진 작가.

전시 이름이 언어 유희적인 동시에 중의적인 표현을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 22년을 생활하면서, 독일 사람들이 ‘th’가 들어간 ‘띵킹(thinking)’을 ‘싱킹’이라고 발음한다는 우스운 에피소드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생각에 잠기다’, ‘어딘가에 꽂혀 빠져 있다’는 표현을 보면 ‘잠긴다’라는 의미를 가진 ‘싱킹(sinking)’이라는 단어도 ‘띵킹’과 그렇게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라앉음’이라는 단어가 내가 창작 활동을 하는 모양새와 너무 닮아 있기도 한데,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법한 단어 앞에 긍정적인 형용사를 쓰며 한 번 더 질문할 거리를 만들었다.

작업할 때 한지를 캔버스로 사용하거나, 도교 사상의 여백의 미를 이야기하다가도 서양의 유화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를 이해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인데, 예술과 함께하는 인생은 독일에서부터 시작했다 보니 이곳에서 나의 선은 어디일까 하는 고민과, 그 선위에서 줄타기하면서 개인적인 밸런스를 찾기 위한 과정이 하나의 그림에 담겨있다. 그 선과 경계라는 건 항상 유동적인데, 모서리 끝에 서 있을 때 가장 큰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그 불편함을 긍정적으로 취하면서도 훨씬 더 적나라하게 느끼고자 하는 마음을 회화에 풀어낸다. 내 전기적 측면이 예술적 측면에 영감을 주는 것도 이 경계 자체가 열려 있기를 추구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Positive Sinking 전시 전경.

 

실제로 당신의 작품들을 보면 경계가 명확해 보이다가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의도한 것이다. 열린 경계를 만드는 것에 대해 많이 탐구한다. 그 표현법을 많이 시도하면서 새로운 경계들과 관계성, 그리고 그 사이의 것들에 대한 인식도 발전했다. 관객이 그림 속 경계를 보고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그건 내 영역이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나와 독립적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젤에 캔버스를 올리는 대신, 바닥에 두고 작업하는 것도 추상적인 표현과 연관 있는 것인가? 내가 그린 그림은 재현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실제 모델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어릴 때 과일 장사를 하던 부모님 덕에 과일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머릿속으로 캡처해둔 과일 이미지들이 스케치북에 옮겨진 걸 보고 짜릿한 감정이 들었다. 아마 다음날 똑같은 사과를 그렸으면 그날만의 기분과 분위기를 반영한 또 다른 그림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그리다’라는 한국어 단어를 생각하다 보니 ‘그리워하다’는 표현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쳐 지나가면서 보던 것을 그리워하며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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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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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짓다

소리를 짓다

소리를 짓다

사운드 전문가이자 디자이너 데본 턴불이 모듈 가구 브랜드 USM과 함께 뉴욕 소호에 소리로 지은 리스닝 룸을 오픈했다.
이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 음악 그 자체다.

1946년 설립된 미국의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 클립쉬와 협업해 탄생한 박스형 스피커 클립쉬 X 오자스 K0-R1. 퓨터 그레이 컬러로 마감해 더욱 미니멀하고 시크한 매력을 지녔다.

소리는 형태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파장이 공기를 가르고 벽을 타고 흐르며,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공간을 채운다. 뉴욕 소호의 USM 쇼룸 한편에는 정적을 깨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이곳의 이름은 ‘오자스 리스닝 룸 Ojas Listening Room at USM NY’. 아날로그 방식의 스피커와 오디오 장비로 유명한 뉴욕 브랜드 오자스의 수장이자 디자이너 데본 턴불 Devon Turnbull이 설계한 곳으로 사운드가 건축적 요소처럼 공간을 조형하는 실험적 공간이다. 사운드 마니아가 아니라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데본 턴불은 사운드를 하나의 예술적 형태로 다루며 듣는 경험 자체를 새롭게 정의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오디오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며 사운드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동시에 그래피티, 음악 그래픽 디자인, 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2003년, 그는 이사 살라비 Isa Saalabi, 윌 위트니 Wil Whitney, 홀리 한송크람 Holly Harnsongkram과 함께 놈 드 게르 Nom de Guerre라는 패션 브랜드를 공동 설립하며 스트리트 패션과 서브컬처 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패션 산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브랜드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사운드 조각 Sound Sculptures’을 제작하며 점점 오디오 세계로 깊숙이 빠져들었고, 점차 그 작업이 전 세계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오자스’다. 고효율 스피커와 저출력 진공관 앰프를 기반으로 한 오자스의 오디오 시스템은 20년 이상의 실험과 엔지니어링, 그리고 사운드 언더그라운드 신에서의 연구를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소위 뉴욕의 ‘힙쟁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게 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의 오자스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람객이 자유로이 앉아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좌석을 마련했다. 크바드랏 어쿠스틱의 포스 소재를 입힌 것.

USM의 모듈 가구를 쌓아 올려 계단식 좌석을 만든 점이 인상적이다. USM은 국내 스페이스로직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런 그가 USM과 협업한 이 프로젝트는 그의 사운드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뉴욕 소호 플래그십 스토어 내에 자리한 이 리스닝 룸은 외부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음악을 하나의 신성한 경험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사운드 성소’를 테마로 이 공간을 마치 신전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 턴불이 큐레이팅한 오디오 시스템과 USM의 모듈러 퍼니처, 그리고 크바드랏 어쿠스틱 Kvadrat Acoustics 패널이 결합되어 최적의 음향적 균형을 완성했다. 오자스 특유의 브루탈리즘 스타일이 반영된 스피커 시스템은 절제된 형태와 단단한 질감이 돋보이며, 특히 기술적 장치보다는 ‘음악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는 앰프, 스피커, 바이닐 레코드, 오디오 매거진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맞춤형 고성능 음향 솔류션을 제공하는 크바드랏 어쿠스틱과의 협업이다. 소프트 셀 브로드라인 Soft Cells Broadline 패널과 트랙 시스템이 벽면과 천장에 적용 되었으며, 진저 2 Ginger 2 패브릭으로 덮인 패널과 커튼, 비다 4 Vidar 4 패브릭으로 마감된 블랙 잭 체어, 포스 Foss 소재의 좌석 플랫폼이 배치되어 공간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만든다. 오자스 리스닝 룸은 청음 공간을 뛰어넘어 소리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소리를 조각하는 순간을 경험케 한다. 결국, 이곳에서 듣는 것은 공간으로 구현된 음악이다.

고효율과 저출력 진공관 앰프를 기반으로 제작된 오디오 시스템. 특별 제작한 바이닐 레코드, 오디오 매거진 등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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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로렌 콜만 Lauren Cole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