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식혀줄 시원한 호캉스가 우리에게 필요하듯
꿀벌도 그러한 휴식이 절실했다.
벌집을 닮은 조형물이 들판 곳곳에 들어섰다. 손바닥만 한 초소형 입구, 자연스러운 나뭇결, 벌의 눈에 띌 만한 파랑, 노랑, 보라색으로 꾸며진 벌집 모양의 외관까지. 누가 봐도 ‘벌을 위한 호텔’이다.

Seed Stories by Kristina Pulejkova, Jim Holden ⓒ RBG KEW
이 특별한 공간은 영국 웨스트 서식스의 야생 식물원인 ‘웨이크허스트 Wakehurst’에 설치된 설치 작품 <씨앗 이야기 Seed Stories>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예술가 ‘크리스티나 풀레이코바 Kristina Pulejkova’는 씨앗에서 시작된 생명의 순환을 예술로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 지속 가능성과 생태 과학, 디지털 기술을 함께 녹여냈다.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더위에 지친 벌들에게 실질적인 안식처를 제공한다.

Seed Stories by Kristina Pulejkova, Jim Holden ⓒ RBG KEW
네 개의 조형물로 구성된 작품은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 씨앗 은행 ‘큐 밀레니엄 시드 뱅크(MSB)’에서 보존 중인 다양한 야생 식물 종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천연 항진균 성분과 방향성을 가진 마린 플라이와 삼나무를 재료로 선택해 여름철 폭염 속에서도 벌이 쉴 수 있는 조건을 완성했다.
심지어 호텔의 출입구 색상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선정됐다. 벌의 시각 스펙트럼을 고려해 파랑, 노랑, 보라 등 꿀벌이 잘 인식하는 색을 적용하고 빨강과 초록은 피했다. 이 작은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가 벌에게 휴식을 부여한다.

Seed Stories by Kristina Pulejkova, Jim Holden ⓒ RBG KEW
뿐만 아니라 이 조형물은 꿀벌의 꽃가루를 수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수분 매개자 연구에도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 과학자들은 벌이 남긴 꽃가루를 분석해 어떤 종이 어떤 식물에 끌리는지, 생물 다양성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연구한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생태 실험실이다.
조형물에는 AR 기능도 탑재되어 있어 관람객이 전용 앱으로 작품을 스캔하면 큐 시드 뱅크의 특정 씨앗 이야기와 기후 보존, 식량 안보와의 연관성을 시청각 콘텐츠로 체험할 수 있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이번 여름, 벌을 위한 호텔을 찾아 떠나볼까?

Seed Stories by Kristina Pulejkova, Jim Holden ⓒ RBG K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