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지에서 비싼 호텔을 예약해도 정작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틀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숙소의 매력을 온전히 누려봐도 좋겠다. 농장에서 난 것을 먹고, 오래된 정원과 숲을 걸으며 그 지역의 생활까지 경험할 수 있는 네 곳의 컨트리 스테이.
농장에서의 하룻밤



오늘 저녁 식탁에 무엇이 오를지는 그날 농장 풍경에 달려 있다. 밭에 어떤 채소가 자랐는지, 무엇을 수확했는지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기 때문. 영국 사우스 데번의 약 180만㎡ 농장에 자리한 파울스컴 팜 Fowlescombe Farm은 전원 풍경만 빌려온 호텔이 아니라 지금도 실제 농사가 이루어지는 농장이다. 500년 역사를 지닌 부지의 빅토리아 시대 팜하우스와 오래된 석조 헛간을 복원해 단 10개의 스위트를 만들었다. 객실에는 농장 내 채석장에서 가져온 돌과 오크, 울을 사용했고, 침대 매트리스에는 이곳에서 직접 기르는 맨스 로탄 양의 털까지 사용했다. 농장에서 난 것은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이어진다. 18석 규모의 레스토랑 더 레펙토리 The Refectory에서는 헤드셰프 엘리 웬트워스가 정원사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그날 밭에서 수확한 재료를 중심으로 매일 다른 4코스 메뉴를 선보인다. 직접 기른 채소와 식용 꽃부터 소와 양, 돼지와 염소까지 농장의 생산물이 식재료가 되고, 다음날 아침에는 탬워스 돼지로 직접 만든 베이컨과 소시지가 갓 구운 빵과 함께 오른다. 할 일도 제법 많다. 씨앗을 수확하고 빵을 만들거나 들판에서 새를 관찰하고, 다트무어를 걷고,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 식재료를 채집한다. 패들보드를 타고 로컬 펍까지 가는 프로그램도 있다. 2025년 문을 연 지 1년 만에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핫 리스트 Condé Nast Traveller Hot List와 트래블 + 레저 잇 리스트 Travel + Leisure It List 2026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농장에서 자고, 농장에서 수확한 것을 먹고, 농장의 하루에 직접 들어가보는 것. 파울스컴 팜은 오래된 농장을 오늘날의 여행 방식으로 영리하게 바꿔놓았다.
WEB fowlescombe.com ADD Fowlescombe Farm, Ugborough, Ivybridge, Devon PL21 0HW, UK



400년 된 토스카나 빌라



아침에는 사이프러스가 늘어선 정원을 걷고, 오후에는 말을 타거나 올리브 숲을 지나 3백 개의 돌계단을 오른다. 저녁에는 오래된 팜하우스의 피자 오븐에 불을 지피고 테라스에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시에나 인근에 자리한 빌라 체티날레 Villa Cetinale는 1680년 추기경 플라비오 키지를 위해 완성된 컨트리 빌라다. 베르니니의 제자 카를로 폰타나가 기존 팜하우스를 바탕으로 설계했으며, 장미와 아이리스가 피는 정원 너머로 올리브나무와 포도밭, 사이프러스 숲이 이어진다. ‘테바이드 Thebaid’라 불리는 성스러운 숲에는 7개의 작은 예배당과 수십 점의 석조 조각이 숨어 있다. 3백 개의 돌계단 ‘산타 스칼라 Santa Scala’를 오르면 한때 수도사들이 머물렀던 은둔처 로미토리오 Romitorio에 닿는다. 숙박은 각기 다른 색과 앤티크 가구로 꾸민 본채의 객실뿐 아니라 에스테이트 곳곳에 흩어진 옛 팜하우스에서도 가능하다. 라 체르바이아 La Cerbaia는 옛 돼지우리를 커다란 주방과 다이닝 공간으로 개조해 피자 오븐과 수영장을 갖췄다. 카사 파브리 Casa Fabbri는 올리브 숲 한가운데 전용 수영장을 품고 있다. 낮에는 승마와 트레킹을 즐기고 몬탈치노와 몬테풀치아노의 와이너리를 찾아가도 좋다. 17세기에는 시에나의 팔리오 경마가 이곳에서 일곱 차례 열렸을 만큼 사냥과 경마, 연회와 순례가 뒤섞였던 곳. 4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오래된 토스카나 영지에서 며칠간 직접 살아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WEB villacetinale.com ADD Str. di Cetinale, 9, 53018 Sovicille SI, Italy



80년 만에 다시 열린 여름 별장




프랑스 비아리츠의 3만㎡ 숲속에는 무려 80년간 사람이 살지 않은 저택이 있었다. 한때 벨기에 왕비 파비올라의 부모가 머물고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드나들었던 빌라 마그난 Villa Magnan이다. 2017년 영화 세트 디자이너 앤 이스라엘 Anne Israel과 촬영감독 제롬 이스라엘 Jérôme Israel 부부가 덤불과 수백 년 된 나무에 파묻혀 있던 저택을 발견하면서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아르데코 모자이크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살리고, 플리마켓과 앤티크 숍에서 찾은 가구와 오브제를 자유롭게 뒤섞었다. 객실은 옛 정원사와 운전기사, 관리인이 살던 건물에 마련한 단 5개. 수영장과 동물들이 있는 정원까지 갖췄지만 객실에는 뜻밖에도 와이파이가 없다. 대신 아침이면 모두 본채의 커다란 테이블로 모인다. 주방에서 제철 재료로 아침을 만드는 동안 LP를 틀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가끔은 춤도 춘다. 여름에는 정원 생활이 더 재미있어진다. 오래된 온실을 주방으로 바꾼 드 푸타 마드리 De Puta Madre에서 장작불에 구운 지역 식재료로 5코스 저녁을 먹고, 등나무 아래에서는 낮부터 와인과 타파스를 즐기다 그대로 낮잠을 자도 된다. 어떤 밤에는 LP를 틀고 갈레트와 크레페를 먹는 ‘디제이 갈레트 DJ Galette’가 열리고, 또 어떤 날에는 정어리를 굽는다. 정해진 호텔 프로그램을 소비하기보다, 아주 취향 좋은 가족의 여름 별장에 며칠 끼어 있는 기분이랄까? 빌라 마그난에서 누리는 호사는 오히려 그런 느슨함에 있다.
WEB villamagnan.com ADD 13 Rue de Mouriscot, 64200 Biarritz, France



숲속의 팜 리조트


창밖에는 이와테산과 깊은 숲이 펼쳐지고, 낮에는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린다. 저녁에는 산리쿠 해안에서 잡아올린 해산물과 고이와이 농장에서 난 식재료를 맛보고, 다음날에는 이와테의 전통 공예인 남부철기를 만드는 장인을 만난다. 지난봄, 일본 이와테현 고이와이 농장 안에 문을 연 아즈마 팜 고이와이는 농장과 자연은 물론 도호쿠의 음식과 공예, 지역 문화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팜 리조트다. 도쿄역에서 모리오카역까지 신칸센으로 약 2시간 20분, 다시 차로 25분을 달리면 이와테산을 품은 숲에 도착한다. 객실은 숲 사이에 자리한 포레스트 빌라 22실과 단 두 채뿐인 가든 빌라까지 총 24실. 특히 ‘잔불’을 뜻하는 다이닝 오키비 Okibi에서는 중앙의 불을 둘러싸고 앉아 숯불에 천천히 구운 요리를 맛본다. 21석뿐인 작은 공간이라 셰프가 눈앞에서 불을 다루는 과정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숲속에는 장작 사우나와 냉탕, 벽난로와 데이베드를 갖춘 세 채의 프라이빗 웰니스 공간 포레스트 스프링스도 자리한다. 밖으로 나서면 승마를 즐기고, 남부철기 장인에게 전통 기법을 배우거나 도노와 하치만타이 일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이어진다. 단순히 농장 풍경 속에서 쉬는 데 그치지 않고 고이와이 농장을 거점으로 이와테의 자연과 음식, 공예를 두루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이곳 매력이다. 유럽의 오래된 농가를 복원한 팜 스테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일본 북부의 지역색을 담아낸 새로운 컨트리 스테이다.
WEB azumafarms.com ADD 68-77 Maruyachi, Shizukuishi, Iwate District, Iwate 020-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