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부시 여겨졌던 화장실이 본능적 자유와 미학적 여유를 담은 리빙 아트로 재탄생했다. 가장 사적인 공간, 화장실이 예술적 경험의 무대가 된 컬렉터 사보의 <Toi Toi Toilette>전.
우아한 곡선미와 색채의 조화를 보여주는 1970년대 루이지 콜라니 디자인의 빌레로이앤보흐 세면기와 변기 세트. 프랑스 알리베어트의 2인 화장거울 세트와 독일 게어트 랑에의 화장선반이 실용성과 미학의 조화를 선보이며, 발터 도너의 핑크 행잉램프와 헬레나 튀넬의 크리스털 화장거울은 감각적인 아우라를 더한다. 왼쪽 제일 앞에 걸린 거울은 1950년대 에밀 스테나의 크리스털 꽃 화장거울. 벽지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겸하고 있는 사보가 제작한 1970년대 스타일의 독일 벽지.
한스 올센이 디자인한 1960년대 덴마크산 가죽 흔들의자와 화려한 패턴의 벽지가 어우러져 편안함과 동시에 세련된 미감을 자아낸다. 여기에 변을 머리에 잔뜩 얹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사보의 작품 <Toi, Toi, Toilette>(2022)이 공간에 유쾌함을 불어넣는다.

실제 아카이빙 사진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이번 전시 공간의 전경. 1950년대 오스트리아의 율리우스 테오도르 칼마가 디자인한 크리스털 램프 2종이 욕실에 고전적인 우아함을 더하며 독일 페터 기취의 1960년대 의자 세트, 빌레로이앤보흐의 변기 및 비데가 조화를 이룬다. 벽에 걸린 크리스털 화장거울 2종은 헬레나 튀넬 디자인. 욕실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플로어스탠드는 코작.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내밀한 순간을 맞이하는 곳, 화장실. 일상 속에서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하지만, 실은 깊은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 개인만의 고요가 깃든 공간이기도 하다.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거울 앞 정돈되지 않은 얼굴과 혼자만의 시간에 스며드는 정적, 그리고 하루 끝 자락의 생각을 내려놓는 장소이기도 한 화장실은 그 어느 공간보다도 인간적이고 사적인 곳이다. 이런 화장실이 이제 새로운 발견의 여정을 시작했다. 김리아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Toi Toi Toilette>는 화장실을 그저 신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화장실의 미학적 재발견’을 시도한다.

독일 출신의 정블루트 Jungblut 부부는 루이지 콜라니가 디자인한 빌레로이앤보흐의 욕실 컬렉션을 선택했다. 노란 카레색의 세면대, 변기, 샤워기, 욕조, 거울, 비데 등 콜라니가 설계한 독창적이고 우아한 욕실 세트를 집에 적용했다.

당시 루이지 콜라니가 디자인한 욕실 컬렉션은 독일의 공공 화장실에도 널리 적용되었다. 오늘날에는 구하기조차 어려운 희귀한 디자인이지만, 당시에는 일상 속에서도 누구나 이처럼 독창적이고 우아한 디자인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컬렉터 사보는 ‘화장실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본능적 자유를 누리는 공간’이라며, 터부시 여기던 화장실이라는 존재는 아름답고 우아하게 꾸며야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유럽의 욕실 문화를 접했어요. 제가 본 독일의 화장실은 단순한 기능의 공간이 아니었어요. 아침에 욕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여유, 음악과 함께 고요히 하루를 시작하는 그 품격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보는 특히 독일 상류층의 넓고 우아한 욕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금새 그 매력에 사로잡혔다. “이게 진짜 ‘화장실’이구나!” 하고 깨닫던 그 순간부터 그는 화장실을 하나의 ‘리빙 아트’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자신이 수집한 화장실 컬렉션을 통해 삶의 미학을 전하려는 열정을 담뿍 담아 이번 전시를 기획한 것.

화장실 수납장은 실용성과 디자인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독일의 대표적인 욕실 가구다.
컬렉터 사보가 특히 애정을 가진 것은 1950~70년대 빌레로이앤보흐 Villeroy&Boch와 베를린 태생의 스위스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Luigi Colani의 협업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빌레로이앤보흐는 욕실보다는 테이블웨어 브랜드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당시 빌레로이앤보흐는 고급 욕실 문화를 선도하던 브랜드였고, 콜라니는 곡선과 색감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내 욕실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디자이너였다. 그는 흰색이던 욕실에 녹색, 핑크색, 주황색 같은 화려한 색을 접목해 기존 욕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린 인물이었다. “흰색만 고집하던 욕실이 아니라, 색감이 살아 있는 욕실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콜라니는 보여줬어요. 단순히 실용적 목적을 넘어 욕실을 예술적인 감각으로 물들였고, 이는 상류층 욕실 문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죠. 콜라니의 디자인은 욕실이 개성과 감각이 담기는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어요”라며 사보가 강조해서 말했다.

곡선미와 실용성이 조화를 이뤄 독특한 욕실 미학을 보여주는 루이지 콜라니의 세면기와 비누걸이, 수건걸이, 변기와 휴지걸이. 세련된 디테일로 욕실에 우아함을 더한다.

루이지 콜라니가 디자인한 1970년대 범랑 욕조와 세면기 액세서리는 독창적인 곡선과 감각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아이템이다.
전시장 1층에는 바우하우스의 공기를 담아 콜라니의 곡선미와 색채가 돋보이는 70년대 욕실을 재현하고, 2층에는 당시 유행하던 모듈형 가구와 조명, 3층에는 조명과 소품들을 유쾌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사실 2층과 3층에 전시된 가구들은 욕실을 주제로 디스플레이된 것은 아니지만, 조명과 라운지 체어 등 욕실 공간에도 잘 어울릴 법한 아이템들이 가득하다. 이것들이 만약 욕실에 적용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 또한 이번 전시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이는 욕실을 단순히 기능적 공간으로만 한정 짓지 않고, 확장된 예술의 영역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하는 이번 전시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사보는 “화장실을 마치 ‘갤러리 속의 갤러리’로 탈바꿈시키며 일상의 공간에서 관람객이 새로운 미적 경험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화장실조차 예술적으로 접근해야 돼요. 화장실도 아트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전시에 담긴 메시지를 말해줬다. 사보의 철학은 단순히 예술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것이다. “삶 자체가 아트여야 해요. 인간이 가장 본능적인 순간에도 아름다움이 스며들 수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화장실이 우리 삶에서 사적이고 은밀한 장소일 뿐 아니라 일상을 예술적으로 채우는 중요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을요.” 이번 전시 <Toi Toi Toilette>는 관람객에게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할 뿐 아니라, 숨겨진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를 준다. 오는 12월 19일까지 김리아 갤러리에서 이어지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화장실 미학을 경험해보기 바란다.

1950년대 미국 조지 넬슨의 엑션 오피스 벽장과 독일 잉고 마우러의 1960년대 크리스털 스탠드는 기능과 미학의 균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이와 함께 1970년대 독일 벽지가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베르너 판톤의 1960년대 라운지 의자 세트와 범랑 빅 플라워 폿 램프 세트는 덴마크 디자인 특유의 독창성과 감각을 엿볼 수 있어 욕실 공간에도 제격이다. 여기에 1970년대 독일 벽지가 경쾌한 무드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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