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과정, 결과보다 질문. 불완전함을 수용하며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해 나아가는 디자이너 헬라 용에리우스의 작업 세계.

헬라 용에리우스의 베를린 작업실. 직조 샘플, 비즈, 점토 조각들이 가득한 공간은 실험과 탐구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 Anne-Catherine Scoffoni
헬라 용에리우스는 지난 30년간 디자인 산업 안팎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온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다. 비트라와 텍스타일 브랜드 마하람, 네덜란드 항공사 KLM 등과 협업은 물론 색채와 재료, 직조와 도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작업은 늘 실험과 사유의 연속이었다. 최근 파리 갤러리 크레오에서 열린 개인전을 계기로, 그녀의 폭넓은 작업 세계관을 직접 들어봤다.
1993년 용에리우스 랩을 설립하고 무수히 많은 브랜드와 협업해왔다. 디자인 여정에서 전환점이 된 순간은 언제였나? 비트라와의 협업은 내게 디자인 산업에서 활동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내부로부터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질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전환점은 ‘Beyond the New’ 선언문을 쓴 일이었다. 그 글을 통해 더는 기존 시스템을 꾸미고 싶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로 ‘Woven Cosmos’와 ‘Breathing Colour’는 리서치와 자율성에 뿌리를 둔 새로운 챕터로 이어졌다.
왜 완벽하게 마감된 디자인보다 미완성이나 어색한 형태에 더 끌리는가? 완벽함은 허상이다. 그것은 우리를 현실과 단절시키기도 한다. 나는 어색함, 미완성, 불규칙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 안에 인간성이 담겨 있다고 느낀다. 산업 디자인에서는 매끄러움이 주는 유혹이 크지만, 그 과정에서 제작의 흔적이 지워지는 경우가 많다. 점토에 남은 손자국이나 삐뚤빼뚤한 구슬처럼, 나는 만들어진 흔적을 드러냄으로써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재료, 질감, 색채에 대한 탐구는 무엇에서 비롯되나? 재료 연구는 내 작업의 중심이다. 요즘은 도자기 유약에 몰두하는데 이 실험은 완벽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불완전함, 예기치 않은 결과를 수용하는 일이다. 성공이라는 기준을 벗어남으로써, 재료 자체가 들려주는 말에 귀기울일 수 있게 된다.
섬유와 직조는 오랫동안 작업의 일부였다. 섬유는 시간이다. 실 하나하나가 리듬을 담고 있다. 나는 직기를 짓거나 직조 커튼을 걸 때마다 공간 안에 시간을 그려넣는다고 느낀다. 섬유는 납작한 평면이 아니다. 긴장감을 가지고 움직이며중력의 흐름을 따른다. ‘Interlace’와 ‘Woven Cosmos’에서는 직조가 단순한 장식이 아닌, 호흡하는 공간이자 건축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헬라 용에리우스가 이끈 유엔 뉴욕 본부의 대표 라운지 공간. © Frank Oudeman

비트라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블린더’ 소파.

서로 다른 패턴을 타일처럼 조합해 만든 사이드 테이블. © Deniz Guzel, Galerie kreo

형상화된 개구리가 테이블 다리가 된 ‘프로그 테이블’. 기능과 유머, 조형성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실험 작업. © Fabrice Gousset, Galerie kreo

헬라 용에리우스의 직조 세계를 건축적 감각으로 확장한 전시 ‘우븐 코스모스’ 전경.

색의 물성을 탐구한 전시 ‘브리딩 컬러’. 색채를 재료처럼 다뤄온 연구의 연장선이다.

직조가 공간을 구성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인터레이스’.

마지스의 체어 원에 비즈와 직조를 덧입힌 실험적 변형이 돋보인다. © Alexandra de Cossette, Galerie kreo

테이블과 벽면에 비즈, 매듭, 끈을 조합한 설치 작업. © Alexandra de Cossette, Galerie kreo

코로나 시기 동안 본능적으로 만들어낸 ‘앵그리 애니멀’ 시리즈. 감정의 형상화를 통해 사물에 주체성을 부여했다. © AAlexandra de Cossette
종종 의도적인 ‘미완성’ 작품도 있다. 완결되지 않은 오브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열린 오브제는 마무리를 거부한다. 그것은 상상과 해석, 끊임없는 진화를 위한 공간을 남긴다. 효율성과 완성된 결과물에 집착하는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내 작업의 미완성은 의도적인 반론이다. 이 오브제는 제작의 흔적을 드러내고, 보는 이를 과정 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직조에서는 실수와 실험, 반복을 통한 배움을 반영한다. 모든 것이 매끈하게 마무리되면 더 이상 질문하거나 성장할 수 없다. 나는 그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자 한다.
구슬을 엮어 만든 비즈 테이블 시리즈는 어떤 발상에서 출발했나? 직조와 비즈는 문화, 과학, 경제, 전통, 장인정신이 얽힌 복합적인 역사를 품고 있다. 나는 늘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경계 위에서 작업해왔고, 때로는 그중 한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그 모호한 중간 지점이 내게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저항하거나 화난 듯한 표정을 담은 애니멀 시리즈도 궁금하다. 코로나19 시기에 시작된 작품인데, 직관적으로 감정이 자연스럽게 형태로 흘러 들어갔다. 소수자들의 권리를 되돌리려는 가부장적 권력의 회귀, 끊임없는 좌절과 무력감. 요즘 분노는 너무나 가시적이고, 언제나 주변에 있다. 분노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친구들은 나를 웃게 하기도 한다. 괴짜 같고, 상상 속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사물이 감정이나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나? 그렇다. 나는 사물도 감정을 표현하고, 일종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대신 전달하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니멀 시리즈의 돼지나 상어, 원숭이들은 마치 자신만의 감정을 가지고 손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비록 침묵하고 있지만, 이들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갤러리 크레오에서 전시를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수년간 실천 기반 리서치와 협업을 이어온 결과가 의미 있게 모이는 시점이다. 25년 넘게 함께한 갤러리 크레오와의 관계는 빠른 유행보다 깊이와 품질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런 인내와 지속성, 오래된 관계들을 돌아보는 기회이자, 그것이 내 작업을 어떻게 형성해왔는지 되짚는 자리다.
최근 몇 년간 베를린과 아른험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는데. 아른험에서는 자연과 더 가까운 삶을 산다. 스튜디오는 숲 속에 있고, 매일 아침 한 시간 이상 산책을 한다. 여름 저녁에는 자전거를 타고 노을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반면 베를린에서는 좀 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도시의 리듬 안에서 지낸다.
재충전이 필요할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자연 속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원천이다. 걷기, 자전거, 수영 같은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감각이 다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