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스위치를 예술적인 오브제로 혹은 공간을 전환하는 미학적인 퍼포먼스로 구현한 공간을 만났다. 독일의 스위치 브랜드 ‘융’ 쇼룸이 바로 그곳이다.

스위치 설치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는 전시 벽면, 마감 전 박스부터 프레임, 메커니즘, 커버까지 스위치의 조립 구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1층 쇼룸 전면에 자리한 빈티지 컬렉션 존. 이정엽 대표가 수년간 수집한 오디오, 스위치, 라디오 등 시대별 오브제가 촘촘하게 진열돼 있다.
스위치를 보러 왔다가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머문다. 공간을 누비는 발걸음은 일종의 전시 투어 같고, 커다란 오디오 앞에 멈춘 순간엔 공연장에 들어선 듯하다. 학동에 자리한 독일 스위치 브랜드 융 JUNG의 서울 쇼룸이 ‘융 갤러리’라는 이름을 달고 오픈한 이유다. 이곳은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을 넘어서 브랜드의 미감과 철학, 그리고 사운드와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보여주는 하나의 복합적 경험 공간이다. 이곳을 총괄한 이는 오디오 수집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TIS 갤러리의 이정엽 대표다. “스위치는 작고 기능적인 요소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감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위치를 제품이 아닌 경험의 일부로 녹여내고 싶었죠.” 이 대표가 말했다. ‘스위치라는 미세한 조형 언어를 공간 전체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는, 그의 수집과 연출이 겹쳐진 입체적 풍경으로 완성되었다. 1층은 커피와 오디오, 가구, 그리고 스위치가 어우러지는 라운지형 카페로서 공간 곳곳에 그가 직접 구상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 “카페 상부장에도 스위치를 넣었어요. 스위치가 어떤 방식으로든 일상에 배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단순한 조작의 도구가 아니라 미감을 가진 사물로서 자리 잡도록 설계했습니다.” 실제로 천장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스위치 도안이 새겨져 있고, 테이블 옆이나 커피머신 주변에도 실물 스위치가 연결돼 있다. 통유리창 너머로 얼핏 보면 여느 카페처럼 보이는 첫인상 덕에, 학동 거리를 지나는 이들이 무심코 들어섰다가 오랜 스위치와 오디오의 매력에 빠져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안쪽에는 평소 닫혀 있는 ‘비밀의 공간’이 자리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JBL의 커스텀 빈티지 스피커, 대형 스크린, 그리고 그가 20여 년간 수집해온 오디오 장비가 공간을 채운다. “이곳은 주로 융의 VIP 고객이나 협력 파트너를 위한 청음 공간이에요. 융이라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깊이감 있는 경험을 오디오로 전달해보고 싶었어요.” 그가 이 공간의 목적을 말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피커라 불리는 JBL의 명작, 파라곤이 중심을 이룬다.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도록 이동식 패널 벽을 설계했다.

디제잉을 즐기는 이정엽 대표의 사적이자 유희적인 공간.
무엇보다도 이정엽 대표가 스위치에 진심이라는 사실은, 그가 실제로 스위치를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심지어 독일 융 본사에서도 보유하지 못한 1세대 모델까지 포함해 그의 컬렉션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렇게 희귀한 빈티지 스위치를 수집할 수 있게 된 것도 수년간 오디오를 수집해온 노하우 덕분이에요. 오래된 오디오는 연결된 코드, 버튼, 전원 하나하나 아름다워요. 그것을 작동시키는 스위치도 자연히 관심의 대상이 됐고, 보면 볼수록 조형적으로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쇼룸에 놓인 오디오와 가구, 디스플레이 소품 등 모두 그가 직접 수집하고 큐레이션한 것이다. 수집가의 집요함과 디자이너의 절제된 미감 사이에서 공간은 감각적으로 정돈될 수 있었다. 보는 것에서 머무는 것으로, 제품에서 이야기로 이어지는 융 갤러리. 이곳의 중심엔 언제나 손끝으로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마르멜로와 함께 연출한 레지던스 존의 침실 공간.

융과 르코르뷔지에가 협업해 출시한 컬러 스위치 라인.

브랜드의 역사와 기술을 담은 아카이브 공간.

다양한 마감재와 컬러 샘플을 매칭해볼 수 있는 머티리얼 라이브러리.
지하로 내려가면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지하층은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마르멜로가 함께 설계한 공간으로서, 총 세 개의 존으로 구성된다. 입구쪽 머트리얼 라이브러리는 융의 다양한 스위치 시리즈와 컬러 옵션을 직관적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공간이다. 하부장에는 다양한 마감재와 소재가 함께 큐레이션되어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가 직접 조합을 시도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어지는 융 뮤지엄 & 미디어 룸은 100년이 넘는 브랜드의 기술과 디자인의 진화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보여준다. 영상 콘텐츠와 연대기적 전시를 통해 하나의 브랜드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안쪽의 레지던스는 프라이빗 하우스의 다실, 거실, 침실로 이어지는 시퀀스를 통해 실제 주거 공간처럼 설계되었다. 예술 작품과 기술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구성 속에서 융의 시스템이 삶에 스며드는 방식을 감각적으로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