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벽을 세우는 대신 컬러와 명암으로 공간의 영역을 나눴다. 1930년대 이탈리아 합리주의 건축의 정돈된 질서 위에 입혀진 대담한 컬러 스펙트럼.

로마의 번화가를 벗어나 초록빛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고즈넉한 주택가 몬테베르데 베키오. 1930년대의 예스러운 풍경이 남아 있는 건물의 묵직한 문을 열면, 고요한 건축적 질서 위로 생동감 넘치는 색채가 제일 먼저 감각을 깨운다. 널찍한 야외 테라스를 품은 ‘카사 알키미아 Casa Alkymia’는 로마 스튜디오 푼토 제로 Punto Zero의 손길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합리주의 건축이 남긴 단정한 아치와 기하학적 비례. 세월이 흐르며 미로처럼 복잡하게 나눠졌던 공간을 다시 넓게 터주고, 오래된 건축의 아름다운 뼈대를 지금의 삶에 맞게 되살려냈다. 가장 큰 변화는 거실과 주방 사이였다. 두 공간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크게 열어 빛과 바람이 통하게 하고, 집 안에서는 시야가 자연스럽게 테라스까지 이어지게 했다. 푼토 제로의 파트너 아리아나 노빌레는 “테라스의 공간감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라고 말한다. 새롭게 조성한 아치형 통로 주변에는 파사드의 곡선과 아치 형태를 가져와 내부에서도 건축적 질서가 느껴지도록 했다. 제각각이던 기존 창들의 비례 역시 굳이 통일하지 않고, 아치 가벽 뒤로 시각적으로 후퇴시켜 프레임 속 한 장면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했다. “서로 다른 비례의 창들이 20세기 초 건축 언어에서 영감을 얻은 조화로운 구성 안에 담기도록 했습니다.” 대표 조르지오 마르케제의 말처럼, 오래된 건축의 흔적을 감추기보다 새로운 구성 안에서 다시 돋보이도록 한 셈이다.










이처럼 명확해진 구조 위에 컬러와 재료가 더해지며 각 공간의 성격이 선명해진다. 푼토 제로는 벽을 세워 공간을 차단하는 대신, 색으로 영역을 구획해 열린 구조를 유연하게 나누는 감각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주방은 벽과 천장 전체를 파우더 핑크로 감싸 하나의 독립된 오아시스처럼 연출했다. 여기에 팔멕의 브라스 마감 후드와 지노 사파티가 디자인한 스틸노보 펜던트 조명을 매치해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이루는 감각적인 대비를 완성했다. 현관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에는 촘촘하고 어두운 그레이 테라조를 깔았고, 거실로 들어서면 입자가 한층 크고 다채로운 자갈이 돋보이는 테라조로 바닥재를 전환했다. 두 재료가 만나는 경계에는 황동 선을 매립해 직진과 유려한 곡선으로 동선과 영역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침실에서는 색의 대담함이 한층 더 짙어진다. 옅은 그린 바탕의 침실 한가운데에는 선명한 레드 컬러로 ‘입체적인 박스’처럼 밀어넣고 블랙 테라초 바닥을 매치했다. 물리적인 가벽 하나 없이 오직 색의 밀도만으로 라운지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 스위트룸 같은 아늑함을 구현한 것이다. 높은 층고의 아이 방 역시 천장에만 푸른빛을 집중시켜 공간의 포근함을 더했다. 이 집의 구분을 더욱 정교하게 완성하는 것은 표면의 광택이다. 벽과 천장의 퍼티 화이트 면에는 빛을 흡수하는 매트한 마감을 적용하고, 거실 웨인스코팅 하단에는 은은한 윤기가 도는 새틴과 에나멜을, 공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프레임 몰딩에는 글로시한 마감을 입혔다. 각 소재가 가진 광택감의 차이는 조명과 햇살이 반사될 때마다 벽면에 미세한 입체감과 경계선을 만들어낸다. 답답한 가벽 하나 없이도 공간의 성격이 선명하게 분리되는 이유다. 1930년대 이탈리아 합리주의 건축이 남긴 견고한 뼈대 위에 겹겹이 입혀진 색과 빛의 레이어. 카사 알키미아는 오래된 건축의 흔적을 존중하면서도, 색채와 질감이라는 가장 유연한 언어로 지금의 삶에 맞는 새로운 리듬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