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집의 원형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태어나 경험한 첫 번째 집, 말하자면 자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전경.
인류가 최초로 경험한 집은 아마도 10개월간 머물렀던 어머니의 자궁이 아닐까 싶다. 이 첫 번째 집에 대한 기억은 태내에서부터 몸에 밴 습관, 일종의 요나 콤플렉스 Jonah Complex에서 찾을 수 있다. 자궁 속 태반에 머물 때 그 내밀함과 따뜻함의 기억으로 인해 우리는 물리적인 공간에서도 여전히 그 기준에 의존한다. 프랑스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도 집의 실내, 구석, 장롱 서랍 등 집이 가지는 모든 장소는 내밀함의 총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듯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유형의 집에는 자궁의 원형이 곳곳에 남아 있다. 원시 인류가 거주를 하기 위해 발견한 동굴이나 수렵과 채집을 위해 이동하며 가설적으로 사용하였던 임시 주거인 움막도 마찬가지다. 이 움막의 평면은 보통 원형 또는 편자 모양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머니의 자궁을 닮아 있어 모든 것을 품고 보호해주는 느낌을 준다. 초기의 벌집형 움막은 지붕과 벽의 구분의 없는 단순한 은신처였다가 벽과 지붕을 각각 다른 재료로 사용하면서 분리가 이루어졌다. 움막은 이동식 주거이긴 하나 땅 위에 처음으로 시도한 건축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집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의 바위 동굴처럼 부드러운 화산암 지역에 인공적으로 굴을 파내어 도시를 형성한 예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연 동굴들은 비와 바람, 야생동물의 습격을 피하기 위한 장소로서 사용되었다. 그들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 같은 동굴의 어두움 속에서 궁극의 안정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 위 카파도키아의 동굴 집. 아래 아돌프 로스의 뮬러 주택.
문화의 진화란 일상에서 장식을 배제해가는 과정과 같다는 주장을 통해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말한 유명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그의 주택 작품인 ‘뮬러 주택’을 동굴로 표현하였다. 그는 건축을 동굴로 간주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닌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뮬러 주택의 파사드는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는 입면으로 구성했고 계단과 슬로프의 높이를 다양하게 두어 내부 공간 구성을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각 방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적용해 동굴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 건축가인 프레드릭 키슬러는 동굴의 공간 구성과 흡사한 평면 구성으로 재현한 ‘엔드리스 하우스 Endless House’를 통해 이것이 바로 ‘어떠한 부조리도 느낄 수 없는 완벽한 공간’이라 이야기했다. 자궁이나 동굴 등의 원초적 공간이야말로 인간이 안주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말한 바 있는 그는 주거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거주인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할 엔드리스 하우스를 암컷의 건축이라 했다. 이렇게 태초에 인간이 처음으로 거주했던 동굴은 현재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 뿌리는 자궁에 원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글 정영한(스튜디오 아키홀릭) | 에디터 최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