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 가면 내가 항상 방문하는 곳이 있다. 재래시장인 보케리아 시장과 바르셀로네타 시장이다. 바르셀로나 시민의 식탁을 책임지는 곳이면서 도시와의 공존에 성공한 이곳. 디자인을 통해 전형적인 재래시장이었던 바르셀로네타 시장을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킨 건축가 요셉 미아즈를 만났다.
↑ 바르셀로네타 시장의 외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는 크고 작은 40여 개의 시장이 존재한다. 때문에 이 아름다운 도시는 ‘시장의 도시’ 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곳은 아마도 람블라스 거리 뒤편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규모의 보케리아 시장과 바르셀로네타 시장(Barceloneta Market)일 것이다. 디자인 계통의 종사자로 나에게 시장은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고 살아 있는 도서관이나 다름없다. 활기찬 소음과 온갖 냄새, 그리고 표정과 모습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태도는 나의 오감을 열어준다.
1884년 안토니 로비라(Antoni Rovira)에 의해 만들어진 바르셀로네타 시장은 본래 어시장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대대적인 레노베이션 작업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건축가들로부터 과거와 현대의 완벽한 조우를 이루어낸 공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재탄생했다. 과거의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현대적인 외관을 가진 공간으로 변했으리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다시 방문했을 때 내가 품었던 절반의 걱정은 이미 사라졌다. 아니, 걱정은 서서히 부러움으로 변해갔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오래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내부 골조는 그대로 남아 살아 있었다. 태양열 시스템을 도입한 지붕의 둥근 곡선은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상인들에게 더욱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여기에 새롭게 조성된 외부 광장과 이어진 서점과 문화 공간은 하나의 작은 쉼터로서 시민들의 또 다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바르셀로네타 시장의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는 2007년 바르셀로나 시티 프로젝트 중 건축, 도시 기획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다음 해 2008년 카탈루냐 건축 대상을 수상했다. 이 멋진 공간을 탄생시킨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 요셉 미아즈(Josep Mias)였다. 평소 공공 건축과 도시 기획, 그리고 사용자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공간의 지속성과 새로운 방향에 대한 제시를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본래 공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후 2000년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회사 미아즈 아키텍테즈(Mias Arquitectes)를 설립한 요셉 미아즈. 세계적인 건축 디자인 어워드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현재 스페인을 대표하는 현대 공공건축 디자이너로 부상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 요셉 미아즈는 이곳의 역사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 골조를 그대로 두었다. copyrights©MiAS Arquitectes
레노베이션 이전의 바르셀로네타 시장을 매우 로맨틱하게 묘사한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의 시장도 여전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저는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오히려 건물과 장소, 그리고 과거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과거의 가치가 우리의 새로운 일상에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의 추억보다는 모두가 나눌 수 있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춥니다. 공동의 추억이야말로 건축에서 그 어떠한 프로젝트든 수반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건물은 과거로부터 개개인의 추억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공동의 과거’에 기반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업 전부터 시장 주변의 이웃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바르셀로네타 시장은 이러한 기반 위에 지어졌습니다. 친근하고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열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말입니다.
당신은 ‘시장은 언제나 사회의 연결점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런 당신의 의도가 잘 반영되었나요?
구태의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건축이란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건축물은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경우,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상업 활동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더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예술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마치 놀이 같은 활동과 뒤섞여 있습니다. 건축가에게 있어 이러한 순간이 실현되도록 준비하고 디자인하는 것은 대단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당신이 시장을 레노베이션할 때 상상한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우선 당시의 건물이 존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시장을 재단장하기 위해 건물을 해체했을 때, 그 근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죠. 일반적으로 건물은 허물어질 때, 무엇이 건물의 근본이 되는지 혹은 없애야 하는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해체를 통해 시공사와 설계사무소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장소를 변경하거나 건물을 다시 짓는 등의 행위는 매우 책임이 막중하며 숙고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 오래된 것이 아직 새로운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진행했기에 처음 계획에 맞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왼쪽 레노베이션을 통해 보다 쾌적한 시장으로 태어난 모습.
오른쪽 공원 쪽으로 만든 아치형 구조물.
아래 바르셀로네타 시장의 외관.
시장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뜯어낸 과거의 구조물이나 시설물 중 버리기 아까웠던 것이 있었나요?
저희는 오래된 건물의 구조, 다시 말해 추억을 담은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새로운 구조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것보다는 건물의 옷을 갈아입히는 수준의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르셀로네타 시장 프로젝트가 이전의 프로젝트들과 차별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특정 장소의 일부분 혹은 자연의 일부분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맥락을 파악하고 그곳에서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바르셀로네타 시장은 그 자체가 매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제안서는 강하고 본능적이며 거의 난폭했을 정도로 이 프로젝트는 그 시작부터 매우 강렬했습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소개 바랍니다.
현재, 우리는 사무용 건물과 주거 공간(단독주택에서부터 아파트까지), 문화 시설, 학교, 병원, 도시 공간 등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에 대한 고민은 물론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디자인하는 공간에 살게 될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죠. 저는 예상치 못한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장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진정한 의미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사람과 건물이 풍경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재래시장은 현대적인 마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시장도 개선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역사를 통해 발견한 그 가치를 포기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르셀로네타 시장을 보면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역사를 간직한 시장은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살아 있고 매 순간 빛납니다. 그리고 유치원과 레스토랑, 슈퍼마켓, 모임을 위한 회의실 등 새로운 공간이 자리 잡은 바르셀로네타 시장은 과거와 미래가 화합하는 곳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만약 저에게 한국의 시장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맡겨진다면 매우 기쁜 도전이겠지요.
↑ 바르셀로네타 시장의 스케치안.
↑ 건축가 요셉 미아즈.
↑ 레노베이션을 통해 보다 쾌적한 시장으로 태어난 모습.
인터뷰 김명한(aA디자인뮤지엄 대표) | 구술정리 강지영 | 사진 Adrià Goula
출처 〈MAISON〉 201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