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건축물이자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뮤지엄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곳. 부드러운 곡선 건물의 넉넉함이 느껴지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다.

↑ 위에서 내려다보면 말밥굽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보면 두꺼운 책을 세로로 펼쳐서 세워놓은 듯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옛날 중국 황제가 유명한 화가에게 자신이 아끼는 고양이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했다. 7년이 지나도록 그림이 완성되지 않자 황제는 화가를 불러들여 크게 화를 냈고 화가는 황제 앞에서 바로 고양이를 그려냈다. 그림이 마음에 든 황제가 그림값을 묻자 화가는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 단숨에 그린 그림에 높은 값을 부른 이유를 묻는 황제에게 화가가 대답했다. “폐하, 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고양이를 그려왔습니다.”

1 촬영날에는 민병헌 작가의 흑백사진전이 전시 중이었다. 빛에 따라서 흑백사진의 농도가 달리 보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2 건물 전체의 곡선이 내부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시실에서 둥글게 각진 변을 많이 볼 수 있다.
건축가에게 자신의 작품은 화가의 고양이 같은 의미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나서야 꼭 맞는 옷을 입은 건축물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짓기로 결심한 출판사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가 파주에 1405평 면적의 부지를 구입하고 염두에 둔 건축가는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였다. 미메시스란 이름은 열린책들 안에서 디자인, 건축, 사진, 미술 등의 예술 서적을 소개하는 브랜드인 ‘미메시스’에서 따왔다. 그리고 2005년 말, 알바루 시자와 설계를 계약한지 8개월 만에 첫 스케치를 받았고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나서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완공됐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끈 알바루 시자의 또 다른 고양이인 셈이었다.

1 2층에서 3층에 다다랐을 때의 모습으로 3층 전시실이 중심 전시 공간이다. 2,3 오르고 내리는 계단의 구조와 난간에서도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2009년 파주 출판단지에 문을 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지어질 당시 일부 공간을 열린책들의 사무실로 사용했다. 작년에 완공된 바로 옆 사무동으로 열린책들이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미메시스 관련 부서만 뮤지엄에 남았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출판단지에서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알바루 시자의 특징인 유기적인 디자인의 건축물이지만 자하 하디드의 그것과는 다른 시적인 느낌이 있다. 거대하고 육중한 콘크리트가 기분 좋게 물결치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위에서 보면 말발굽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보면 두꺼운 책을 펼쳐서 세워놓은 모습이다. 원래는 흰색 콘크리트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게 됐다고. 독특한 외관도 멋지지만 내부는 더욱 흥미롭다. 소장고로 활용하고 있는 지하 1층과 카페와 책 코너가 있는 1층, 2층, 전시실, 가장 중심이 되는 3층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카페를 지나 책 코너에 전시된 미메시스와 열린책들의 책을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시실로 들어설 수 있다. 외관의 곡선은 내부에서도 그대로 느껴져 부드러운 동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알바루 시자는 냉난방 시설이 보이지 않도록 이중벽을 만들어 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뮤지엄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펼쳐진 흰 벽 외에 다른 장치는 찾아볼 수 없다.

1,2 건물에서 가장 움푹 파인 곳에 서서 올려다본 모습과 내부.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부드러운 곡선으로 딱딱한 느낌이 없다. 날씨를 알 수 없도록 벽을 전부 막은 다른 뮤지엄이나 갤러리와 달리 빛과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내부의 조명은 자연의 법칙을 따랐다. 스폿 조명으로 작품에 빛을 밝힐 수는 있지만 되도록 자연광을 통해서 작품을 감상할 것을 건축가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권한다. 흐린 날의 흰 벽은 회색빛을 띠어 더욱 차분하게 느껴지고, 맑은 날엔 물기를 머금은 흙처럼 반질거리는 흰 벽을 배경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촬영날에는 민병헌 작가의 흑백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햇빛이 만든 음영 덕분에 인공 조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도 짙은 오라를 풍겼다. 이것이 미메시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뮤지엄을 찾은 날의 날씨와 햇빛에 따라 작품이 달라 보여 같은 전시를 본 이들도 저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다. 특히 2층에서 계단을 올라가 3층 메인 전시실에 다다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높은 천고와 어떤 작품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폭이 넓은 전시실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울리는 신발 굽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깬다. 전시실이 넓기 때문에 관람객은 작품 앞으로 바짝 다가가 천천히 걸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때론 뒤로 물러서서 천장의 일부와 벽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조명 삼아 뮤지엄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벽과 천장 사이로 잘게 부서진 햇빛이 한낮에도 간접조명을 켠 듯 내부를 몽환적이고 화사하게 밝혀준다.

↑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박찬용 작가의 조각 작품.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개관 당시에는 주로 표지전, 원화전 등 책과 관련한 전시를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조각전, 그림전, 사진전 등 전시의 폭을 다양하게 넓혀가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면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도 점차 활기를 더해간다. 사용자를 고려한 설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알바루 시자의 바람처럼 다른 나라에서 건축가의 자취를 찾아온 건축학도, 아이 손을 잡고 전시를 관람하러 온 가족,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노부부까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포용한다.

↑ 홍지웅 대표가 디자인해서 제작한 커다란 나무 바스켓. 굴곡진 건물의 느낌을 내부 구조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시인이 종이에 시를 쓰듯 건축가는 물리적으로 대지 위에 시를 쓴다. 퇴고의 과정이 어려운 만큼 건축가는 수없이 스케치와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어 완벽에 가까운 설계를 향해 나아간다. 완공 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방문한 알바루 시자는 자신의 작품 중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겐 언제든 그가 그린 고양이를 쓰다듬고 그가 쓴 시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는 일만 남았다.
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