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방, 여자의 방

남자의 방, 여자의 방

남자의 방, 여자의 방

서로 다른 두 남녀는 각자의 영역을 이해하고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될 때 건강한 사이를 지속할 수 있다.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도록 공간을 설계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의 전통적인 주거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향에 따라 동쪽에는 상 上의 의미로 남자의 공간인 사랑채, 서쪽에는 하 下의 의미로 여자의 공간인 안채를 배치하는 등 남녀의 위계가 명확했으며 각자만의 사적인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과거 우리의 전통에서는 존재했던 남자의 방과 여자의 방은 사라지고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침실 하나로 끝나고 만다. 굳이 찾아본다면 남자를 위한 대표적인 방으로는 서재가 해당된다. 서재는 큰 서고에 많은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공간으로 떠올리기 쉽지만,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닌 남자에게 많은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은밀하고 사적인 최소한의 장소일 수 있기에 그 크기와 무관하겠다. 중국의 거대한 자금성에는 왕이 일상생활을 하는 양심전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안에 삼희당이라는 작은 서재가 있다. 이 서재의 본래 이름은 ‘온실’이며 청나라 건륭 황제의 독서방이었다. 희대의 진품 보물 세 가지인 ‘왕희지’, ‘왕헌지’, ‘왕순’이 쓴 붓글씨 서적 3권을 보관하고 있어 삼희당이 되었다 한다. 이곳은 4㎡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건륭 황제는 이 극도로 작은 방 안에 들어가 호중천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여자의 방을 살펴보자면, 18세기 프랑스에는 여성을 위한 작은 사랑방이 있었다. 이 방을 ‘부두아르 Boudoir’라고 부르는데, 로코코 시대의 상류층 여성이 지내던 침실보다 더 깊은 장소에 위치해 정부와 사랑을 나누는 밀실이자 애욕의 장소이기도 했고 화장을 하거나 명상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귀족들의 풍속과 애정 장면을 즐겨 그렸던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가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을 그린 ‘마담 드 퐁파두르 Madame de Pompadour’ 그림을 보면 부두아르가 얼마나 작은 공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2012년에 ‘거리의 집’이란 작은 주택을 설계할 때 남자와 여자, 다시 말해 부부 사이에 늘 변화가 가능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 주택에서는 각각 남자의 방과 여자의 방을 분리했지만 이 두 방 사이의 적당한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인식의 거리를 스스로가 새롭게 정의할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내부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통로로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주칠 수밖에 없게 한다든지, 외부에서는 수목을 심어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심리적 거리감을 통해 서로에게 일상에서의 배려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남자의 방은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계단을 통해 2층 높이에 두었고 여자의 방은 현관에서 거실과 주방, 욕실, 아이 방을 지나도록 계획했다. 대지 높이 차에 맞게 배치하니 그 모습이 우리의 전통과 같이 남자는 하늘과 마주하게 되었고 여자는 땅과 가깝게 되었다. 건축적으로 접근한 상하의 구조가 그 옛날처럼 위계 질서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남녀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존중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부부는 이 집에 입주한 뒤 각자의 사적 영역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마주하는 동시에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늘 긴장하며 배려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공간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데에 늘 동의하는 나로서는 그들이 새로운 공간을 통해 거리감의 긍정적인 면을 늘 마주하고 살았으면 한다.

2013년에는 40대 중반에 헤어진 후 20년 만에 재결합한 부부의 의뢰로 ‘5×5 주택’을 설계했다. 두 개의 동 중 주택 하나의 바닥 면적이 25㎡, 즉 8평으로 가로와 세로가 각각 5m로 구성된 두 동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위에 소개한 거리의 집보다 더 짧은 길이인데, 20년 만에 재회함으로써 서먹했던 부부에게 각자의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위한 최소의 집을 각각 지은 후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한 동의 1층에는 여성의 공간인 주방을, 2층에는 남자의 방을 배치했고 다른 동에는 1층에 남성 공간인 거실, 2층에는 여자의 방을 놓아 상대의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설계안을 보여주니 여자는 만족스러워했고 남자는 떨어져 있는 각 방에 난색을 표명했다. 부부가 서로 각방을 쓰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한 방을 사용하고 다른 방은 손님방이나 취미를 위한 작업실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나서야 남자 역시 흐뭇해했다. 하지만 이는 아쉽게 계획안으로 남은 상태다.

남자의 방과 여자의 방은 우리 모두가 내면에 숨겨놓은 꿈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부부라 하더라도 각자의 사적 영역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태생부터가 다른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는 이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은 ‘화성’ 같은 방, ‘금성’ 같은 방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어울릴 수도 있다.

*집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생각을 최고은 기자(deneb@mckorea.com) 앞으로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최소의 집`에 대한 개념을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정영한(스튜디오 아키홀릭) | 에디터 최고은 | 사진 스튜디오 아키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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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오래된 미래를 찾다

디자인, 오래된 미래를 찾다

디자인, 오래된 미래를 찾다

뉴욕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헬싱키에서 북유럽 디자인의 본령을 실감하고 있는 필자가 그곳에서 머리와 가슴으로 경험한 북유럽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찬찬히 써내려간 그의 소회에서 헬싱키의 긴긴 겨울밤을 채우고 있을 고요와 청명한 기운이 전해진다.

↑ 알토대학교 디자인 대학 캠퍼스의 모습. 기하학적인 조형물이 이곳이 디자인 대학임을 말해주고 있다.

2013년 12월, 뉴욕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2014년 1월 핀란드로 넘어왔으니 최근 나에게는 이국에서 보낸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셈이다. 핀란드의 사계절과 희로애락을 알고 싶어 다른 인접국가로의 여행도 자제하며 이곳 사람들의 무표정 뒤에 감춰진 진심을 배워온 지 1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북유럽 디자인에 비해 내가 간과한 것은 춥고 어둡고도 긴 이곳의 겨울이었다. 10월 말부터 4월까지 1년의 반을 차지하는 겨울 중에서도 특히 눈이 많이 쌓이기 직전인 11, 12월 무렵에는 우울함이 밀려온다. 더군다나 연초에는 영하 25℃를 넘나드는 추위로 실내 활동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매일매일 사용하고 마주하게 되는 일상 용품들이다. 때문에 북유럽의 유명한 디자인 제품들은 일상과 현실에 깊게 발을 내딛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쓰고 또 써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고안된 세심한 디자인은 날씨에서 기인했다지만 북유럽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꼭 닮아 있었다.

1 알바 알토를 세상에 널리 알린 알토 화병. 2,3 핀란드를 대표하는 브랜드 이딸라와 마리메꼬의 테이블웨어.

진솔함 그리고 소박함
가장 먼저 경험한 것은 북유럽 사람들의 진솔함이었다. 미국 특히 뉴욕은 낮선 이들과의 오가는 잔인사와 대화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다. 반대로 이곳은 그런 사소한 인사와 감정 표현이 극히 드물었다. 필요한 말, 필요한 표현만 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태도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그런 그들의 진솔함에 감사했다. 이제는 복잡한 은유와 겉치레식 미소 뒤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이곳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세계 금융의 중심, 일회용품이 난무하는 소비가 미덕인 뉴욕과 달리 북유럽인의 삶 기저에 깔린 소박한 생활습관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물가 탓도 있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새로 사지 않는 그들에게는 중고품 판매점 혹은 재활용 자선 가게에서 의류, 생필품 및 가구들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당연했다. 물건을 구입하기보다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직접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어, 자투리 실을 이용해서 만드는 러그는 북유럽 모든 나라, 모든 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전통이다.
이들의 특징을 뒷받침하는 사례로는 라빈톨라파이바 Ravintolapäivä와 시부스파이바 Siivouspäivä를 들 수 있다. 라빈톨라파이바는 레스토랑 데이를 의미하는데 시민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공원이나 광장 혹은 길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는 날이다. 헬싱키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되었지만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국제적인 행사로 확장되었다. 한편 시부스파이바, 즉 클리닝 데이는 여름에 두 번 진행되는 대규모의 야외 벼룩시장으로 필요없는 물건은 처분하고 필요한 물건은 헐값에 살 수 있는 행사다. 이외에도 자율적인 참여가 가능한 벼룩시장이 도시 곳곳에서 주말마다 진행된다. 북유럽 디자인 제품의 인기 요인으로 꼽는 내구성, 역사성, 합리성은 이런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 디자인학부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

북유럽 디자인 그리고 교육
그런 북유럽, 특히 핀란드 헬싱키에서 디자인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공부하고 있는 헬싱키의 알토대학교 예술학부 Aalto University School of Arts, Design and Architecture, 그리고 그 외에 직간접적으로 덴마크와 스웨덴의 주요 디자인 학교들을 통해 알게 된 바를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 북유럽의 교육은 학비가 없는 만큼 학생들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인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 역시 수평적이다. 특히 디자인 교육은 기존의 수공예적 강점을 골조로 하되, 그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바탕으로 한 인간 중심적이고 민주적인 관점을 키우도록 돕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알토대학교의 크리에이티브 서스테이너빌리티 Creative Sustainability나 덴마크 왕립예술학교의 코디자인 Co-Design 같은 실험적인 통합 석사과정의 탄생 또한 그런 변화가 잘 반영된 가시적인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융합적 혹은 통섭적 교육 시스템 자체는 나에게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무척 실험적이었던 뉴욕 파슨스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개방된 분위기 속에서 다학제적 multidisciplinary을 넘어 초학제적 transdisciplinary인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다만 실제적인 스튜디오 작업이 위주였던 파슨스에 비하면 알토대학교의 디자인 석사과정은 상대적으로 학술적인 접근이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술 대학뿐 아니라 모든 석사 논문이 데이터베이스화되고 결국 사회와 시민에게 환원된다. 다시 말해 대학에 입학한다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석사과정까지 염두에 두고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학 입학이 아닌 실질적으로 장인 밑으로 들어가서 견습생이 되거나 직업학교 등에서 실무를 배우고 곧바로 취업을 할 수 있다. 알토대학교처럼 고등교육을 전담하는 학교는 단지 ‘기술’이 아닌 (학사과정에서 배운다) ‘사고’와 그 전반에 이르는 것을 고민하도록 돕는다.

↑ 알토대학교가 주최한 디자인 컨퍼런스 ‘아트 오브 리서치’와 관련 전시.

이처럼 디자인을 학술적으로 접근하려는 북유럽 디자인 교육의 강점이 잘 반영된 행사가 있다. 2005년부터 알토대학교에서 주최해온 아트 오브 리서치 The Art of Research 컨퍼런스가 바로 그것. 이 컨퍼런스는 실천적 접근이 중심이 된 연구와 프로젝트를 소개해왔다( http://designresearch.aalto.fi/events/aor2014 참조). 단지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닌 학문으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을 결과물이 아닌 과정으로 보고 새로운 동인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은 영국 및 북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때문에 그 한 축을 담당하는 핀란드에서 이와 같은 컨퍼런스가 시작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셈이다. 핵심적인 것은 물질적인 작업이 어떻게 학술적으로 연계되는지 고민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유하니 팔라스마 Juhani Pallasmaa라는 저명한 건축 학자가 기조 발표를 통해 ‘드로잉이 건축 설계에서 갖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새로운 기술과 테크놀로지가 등장하며 모든 작업이 디지털화되고 자동화 되어가는 추세에서 과거부터 이어온 드로잉이나 스케치 등 수작업의 의미와 교육이 간과되어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 중요성을 찾아낸 학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분석은 객석의 깊은 공감을 이끌었다.
어쩌면 이 시점에 한국에서 북유럽 디자인이 주목받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유럽 디자인의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는 우리에게 존재해왔으나 격변하는 시류에서 놓쳐버린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니까. 지금과 같은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곳에서 지극히 북유럽적인, 잊혀졌던 한국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덧붙이건대 북유럽 디자인 제품들이 단순히 이번 시즌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욕망의 대상이 아닌 영감의 대상이 된다면 일상에서 디자인을 즐기는 방법은 무한대로 넓어질 것이다.

전남규 (알토대학교 디자인 박사과정 연구원) | 에디터 최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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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칸으로 간다

우리는 칸으로 간다

우리는 칸으로 간다

칸칸이 나누어져 실용적인 수납이 가능한 다양한 디자인과 가격대의 서랍장을 모았다.

1 물푸레나무 소재로 견고하며 나뭇결이 살아 있는 6단 서랍장은 마켓엠에서 판매. 84만8천원. 2 수작업으로 색깔을 칠한 6개의 서랍으로 구성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캐비닛은 호메오에서 판매. 가격 미정. 3 곡선 장식과 잠금쇠가 클래식한 서랍장은 티네 케이 홈 tine K home 제품으로 하우스라벨에서 판매. 가격 미정. 4 브랜드 특유의 고급스러운 장식과 빛이 바랜듯 한 색깔이 멋스러운 서랍장은 무아쏘니에에서 판매. 가격 미정.

1 고광택 블랙 라미네이트와 월넛 소재로 만든 ‘그로스만 4단 서랍장’은 구비 제품으로 이노메싸에서 판매. 5백85만원. 2 티크 소재의 6단 서랍장으로 입체적으로 돌출된 손잡이가 특징인 ‘톨보이’ 서랍장은 1960년대 빈티지 가구로 덴스크에서 판매. 1백60만원. 3 둥글게 각진 모서리 부분과 서랍 디테일이 귀여운 느낌을 주는 ‘모더니카 4단 서랍장’은 매스티지데코에서 판매. 19만5천원. 4 분리가 되는 원형 트레이를 쌓아 탁자 겸 수납함으로 사용할 수 있는 ‘PS 수납 테이블’은 이케아에서 판매. 12만9천원. 5 폭이 깊어서 담요나 두꺼운 옷을 수납할 수 있고 다양한 크기의 서랍으로 구성된 ‘비에니800 5단 서랍장’은 두닷에서 판매. 47만원.

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이향아 | 어시스턴트 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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