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 요리를 메인으로 한 일본식 가정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그릴 밥상’이 가로수길 뒤편, 일명 세로수길에 오픈했다. 1970년대풍의 인테리어와 맛있는 음식이 있어 더없이 정겨운 이곳의 오프닝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 오래된 문짝과 고가구가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릴 밥상.
↑ 1 오픈된 주방. 의자를 활용해 제작한 그릇 선반이 독특하다. 2 혼자 방문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
가로수길 뒤편에 위치한 ‘오기하라의 작은 부엌’을 근래에 한 번쯤 방문해본 이들이라면 같은 건물의 1층이 레노베이션 중이었다는 것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가림막 너머로 언뜻 비치는 낡은 창틀과 한국의 고가구들이 호기심을 자아냈던 이 공간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다. 청담동의 다이닝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페 드 플로라’와 레스토랑 ‘씨즌스’를 비롯해 가로수길의 ‘모던밥상’, ‘콰이’, ‘네꼬 맘마’, ‘오기하라의 작은 부엌’까지 성공리에 운영해온 김영희 대표가 새롭게 선보인 ‘그릴 밥상’. 김영희 대표의 15년지기 친구이자 모던밥상의 인테리어를 도맡았던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신경옥이 그릴 밥상의 컨셉트 및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고, 씨즌스와 오기하라의 작은 부엌 등을 거쳐 김영희 대표와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셰프 오기하라가 메뉴의 컨셉트를 잡았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신경옥은 이번 작업에서 집처럼 편안한 느낌의 다이닝 공간을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김영희 대표와 처음 그릴 밥상의 컨셉트를 논의할 때 서로 의견을 모았던 부분이 누구나 편안하게 와서 먹고 즐길 수 있는 밥집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레스토랑의 문턱이 높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뭔가 내 집 같은, 상 공간이지만 내 지정석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어요.”
↑ 1 생면으로 만든 라면 샐러드 2 고소한 등갈비구이.
↑ 김영희 대표의 오랜 지인이기도 한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신경옥이 그릴 밥상의 인테리어를 맡았다.
그릴 밥상을 작업하면서 군산의 유명 빵집인 이성당의 서울 지점 오픈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던 디자이너 신경옥은 군산을 오가며 새로운 디자인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작업 중 군산의 적산가옥을 열심히 탐색하고 다녔는데 특히 유명 관광지로 알려진 ‘히로스 가옥’의 구조와 창틀의 모양 등에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그래서 그릴 밥상에는 낡은 창틀과 문짝, 한국의 고가구를 곳곳에 활용한 모습이 눈에 띈다. 1970년대 신문지로 마감한 벽면이 있는가 하면, 빈티지 스피커를 비롯해 오래된 액자, 전화기, 시계 등의 소품으로 공간을 채웠다. 오픈식 주방 천장에는 찬장, 선반 등 한국의 고가구를 빌트인 가구처럼 달아 독특한 느낌의 수납장을 완성했다. 그릴 밥상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커다란 창문이 있는 한쪽 벽면에 1인용 좌석을 일렬로 마련했다는 것이다. 각 자리에는 가방 보관함과 소지품함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테이블에 달린 서랍을 열면 그 안에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연결되어 있다. 혼자서 식사하며 스마트폰이나 개인용 컴퓨터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배려이다. 소박한 1970년대 부엌을 보는 듯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배려는 여느 현대적인 레스토랑 이상이다. “요즘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혼자서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혼자 와도 내 집처럼 편하게 밥을 먹고, 때로는 퇴근길에 술 한잔 마음 편히 기울이길 바라는 마음에 1인석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신경옥은 만들고 보니 예상보다 1인석이 인기가 많다는 말도 전했다.
↑ 특유의 완벽주의로 정갈하고 깔끔한 일본식 요리를 선보이는 오기하라 셰프.
정통 가이세키 요리를 현대적이고 정갈하게 풀어내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오기하라 셰프는 이번 그릴 밥상을 통해 보다 가벼운 일본 가정식 요리를 선보이고자 했다. “편안한 일본 가정 요리를 주로 선보이되, 그릴을 이용한 요리를 다양하게 마련했어요. 생선과 고기를 굽는 전용 그릴을 따로 마련했고, 강원도에서 공수해온 질 좋은 비장탄(참숯)을 이용해 맛있고 건강한 그릴 메뉴를 선보입니다.”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오기하라 셰프는 특히 일본식 생선구이의 맛을 최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옥상에 생선을 말리는 장소를 따로 마련할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식으로 조미한 생선은 하룻밤 동안 이 공간에서 반건조되어 그릴에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수분이 가득한 생선구이가 완성된다. 오기하라 셰프가 야심차게 준비한 또 다른 메뉴는 품질 좋은 대창으로 만든 모쯔나베(일본식 곱창전골)이다. 대창 특유의 냄새 때문에 잘 먹지 않는 이들도 그릴 밥상만의 고소하고 담백한 대창 맛에 찾는 이들이 많다고. 최상급 돼지 등갈비로 만든 등갈비구이 역시 잡내 없이 깔끔한 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생면과 싱싱한 야채가 가득 들어간 라면 샐러드는 여자들에게 특히 인기다. “오기하라의 작은 부엌이 잘 차려진 정찬을 맛볼 수 있는 것에 반해 그릴 밥상은 집처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메뉴들이 많아요. 가격도 부담 없고, 서빙되는 음식의 양도 적당해 혼자 먹기에 좋죠.” 매일 저녁 퇴근길, 자석에 이끌리듯 오래된 단골집을 찾아가 익숙한 자리에 앉아 먹는 밥상이 주는 위로. 구구한 설명 없이 마주한 것만으로도 가슴속 퇴적되었던 응어리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딱 그만큼의 편안함이다. 세련되고 화려한 먹거리로 넘쳐나는 이 동네에 모처럼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공간이다.
↑ 오래된 창틀과 문짝 등을 활용해 꾸민 그릴 밥상의 멋스러운 외관.
INFO
OPEN 오후 5시~새벽 1시(곧 점심 영업을 시작할 예정)
ADD 주소 강남구 신사동 524-1 1층
TEL 02-540-4111
에디터 송정림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