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1)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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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이고 여성적인 디저트, 가구 갤러리 같은 호텔, 그의 집

시적이고 여성적인 디저트
영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셰프 고든 램지가 운영했던 베르사유의 트리아농 팰리스 호텔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를 책임지고 있는 파티셰 에디 뱅하넴과 30대의 패기 있는 두 명의 여성 파티셰 드보라 레비와 사라 하브가 새로운 디저트숍 ‘레피 파티셰리 Les Fees Patissieres’를 오픈했다. ‘오트 디저트’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지닌 이곳은 마카롱과 에클레어, 컵케이크 등 프랑스의 고전적인 디저트를 모던한 스타일로 재해석해 선보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12종류의 케이크 중 타르트 오 시트롱, 파리 브레스트, 오페라, 바바와 같은 제품은 한입에 쏙 넣을 수 있도록 콤팩트하게 재탄생됐으며, 전통적인 레시피에서 지방을 줄여 다이어트에도 걱정이 없다. 옛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모던하고 파격적인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에까지 폭넓은 고객층에게 사랑받는 곳.
주소 21 Rue Rambuteau 75004 Paris
문의 +33- (0)1-42-77-42-15

가구 갤러리 같은 호텔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의 벨 아미 호텔과 오페라 거리의 에드워드 7 호텔을 비롯하여 프랑스에 5개의 럭셔리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베세 시그너처 그룹이 유명 디자이너 프랑수아 샹소르와 손잡고 샹젤리제 거리 부근에 새로운 호텔 베르네 Vernet를 열었다. 프랑수아 샹소르는 오스만 양식의 오래된 건물을 호텔로 새롭게 단장하며, 외관은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는 컨템포러리한 스타일로 과감하게 바꾸는 시도를 했다. 호텔 이름의 첫 이니셜인 알파벳 V를 손잡이로 형상화한 입구를 통해 호텔 내부에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된 모던한 리셉션이 나오고 화려한 태피스트리가 깔려 있는, 현대 작가의 가구로 가득한 로비가 이어진다. 따스한 햇살이 실내를 비추도록 설계하고 유리와 철골로 된 천장이 독특한 레스토랑은 비비드한 컬러의 가구와 현대 작가들의 그림으로 가득하며, 셰프 리처드 홉이 클래식한 프랑스 스타일의 요리를 선보인다. 나무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 객실에 들어서면 친환경 패브릭을 사용한 피에르 프레 커튼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작가의 가구들이 자리한다. 마치 컨템포러리 가구 갤러리에 초대된 듯한 느낌이 드는 호텔.
주소 25 Rue Vernet 75008 Paris
문의 +33-(0)1-44-31-98-00

그의 집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젊고 센스 넘치는 청년, 장 뱁티스트 샤페네 리몽이 최근 ‘우리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리빙 컨셉트숍 셰 무아 Chex Moi를 열었다. 셰 무아가 특별한 것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오너가 직접 살고 있는 집을 숍으로 오픈했다는 점이다. 친구의 집을 찾은 것처럼 거실에 앉아 커피 한잔을 주문할 수도 있고 침실에 있는 침대에 앉아 잠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조명이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구입할 수 있다. 집 안에 있어야 할 오브제와 가구, 의류 등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클로징 시간이 되어 숍의 셔터를 내리면 이곳은 오너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거나 웹서핑을 하거나 또는 커피를 마시는 주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점이 색다른 재미를 주는 이곳은 신생 디자이너 제품부터 북유럽 앤티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주소 25 Rue Herold 75001 Paris
문의 www.chezmoiparis.com

글&사진 정기범(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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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살리는 디자인

도시를 살리는 디자인

슬럼화로 위기를 맞았던 옛 런던 동부 지역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바꾸는 데 일조한 쇼디치 트러스트 재단.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통해 진정한 유토피아를 실현해 나가는 쇼디치 트러스트 이야기.

↑ 쇼디치 트러스트의 사무국이 위치한 런던 동부의 리젠트 카날.

런던 동부 지역을 떠올리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브릭 레인 거리와 세계적인 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레스토랑 ‘피프틴’, 화이트 큐브 갤러리, 테이트 모던을 비롯해 수많은 젊은이들과 개성이 넘치는 패션과 디자인 숍이다. 그러나 약 15년 전만 해도 런던 동부는 세련되고 활기찬 중심지인 서부 지역과는 매우 대비되는 곳이었다. 19세기부터 전 세계에서 모이기 시작한 이민자들과 노동자 계급 가족들 혹은 가난한 유학생들이 모여든 동부 지역은 세계 6대 살인마로 유명한 ‘잭 더 리퍼’가 출몰할 만큼 무서운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러던 이곳이 2000년, 테이트 모던을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어둡고 위험천만했던 런던 동부 지역은 이제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레스토랑과 갤러리, 감각적인 디자이너의 숍이 즐비한 런던의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쇼디치 트러스트 Shoreditch Trust’ 재단이 있었다. 2000년에 설립된 쇼디치 트러스트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지원을 위해 출범한 비영리기관이다. 단순히 국민들의 세금과 국가의 지원에만 의존한 기존의 복지단체가 아닌 공익성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이것을 다시 지역 주민을 위한 지원 사업을 위한 투자로 환원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철 재료를 사용하여 훌륭한 요리를 선보이고 그 수익을 자선 기금으로 사용하는 워터 하우스와 아콘 하우스 레스토랑,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개선하고자 만든 쇼디치 스파, 도시 텃밭 등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이에 대한 이윤을 다시 지역민들에게 환원하고 발전시키는 사업 구조를 확립했다. 너무나 이상적인 아이디어라 실현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쇼디치 트러스트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거대 도시 안에서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와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이루어내면서 오늘날 낙후된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소외 계층에 대한 지원을 위한 훌륭한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기까지는 쇼디치 트러스트의 설립자인 미카엘 파이너 Michael Pyner의 역할이 컸다. 쇼디치 트러스트 재단의 대표를 역임한 그는 자크 로버트 Jacqui Robert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준 후 현재 북아일랜드 재건 사업의 책임자이자 국제 난민 정착 후원 기획자로서 더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리젠트 카날은 임대료가 저렴해 많은 예술가들이 정착해 있다.

1 테렌스 콘란이 운영하는 ‘알비온 Albion’ 카페는 많은 크리에이티브 피플의 만남의 장소다.
2 럭셔리 패션 편집숍 ‘호스템 Hostem’.

↑ 톰 딕슨이 디자인한 ‘쇼디치 하우스’.

↑ 쇼디치 트러스트의 설립자인 미카엘 파이너가 워터 하우스 레스토랑 앞에 서 있다.

쇼디치 트러스트는 어떤 단체이며,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쇼디치 트러스트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조직의 형태입니다. 저는 이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기보다 서로 함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비전이 쇼디치 트러스트를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의 조직으로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쇼디치 트러스트를 통해서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공상가 같을지 모르겠지만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저는 오랫동안 가난한 공동체들을 위해서 누군가는 이제까지와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왜 제가 되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여기 이렇게 쇼디치에 앉아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쇼디치 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 공동체가 영국의 중산층과 무엇이 다른지를 봅니다. 쇼디치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들 중 인디언, 아프리카, 무슬림 국가에서 온 여성의 36%가 아이를 낳기 전에 유산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파를 만들고 그들을 위한 테라피와 임산부를 돌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또 쇼디치 지역의 많은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식사 문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식탁이 없이 생활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이들을 레스토랑으로 초대하여 나이프, 포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워터 하우스 레스토랑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레스토랑의 펀딩을 늘리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하나의 자원으로도 사용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콘 하우스도 운영하고 있죠. 레스토랑의 수입 중 대부분은 우리가 해마다 열고 있는 쇼디치 지역 주민을 초대하는 무료 축제인 ‘쇼디치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사회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기준이 있습니까?
저에게 특별히 어떠한 문제를 찾아내는 눈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가 문제를 찾아내는 방법에는 몇 가지색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임산부 사망률은 공중 위생국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3년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에 약 350명의 노인들을 모시고 크리스마스 런치 파티를 했을 때는 쇼디치 지역에 살고 있는 혼자 사시는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에게 외로움을 달래줄 수 없을까 해서 마련한 행사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여러 문제를 놓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가난한 지역에 대한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고민도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정말 모르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을 가르치다가 사회를 위한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특별한 프로젝트였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 일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다음에야 사람들이 재건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하는 일이 바로 재건 사업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미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워터 하우스’ 레스토랑이 오픈했을 때 그에 관한 기사를 읽고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방법 중 하나로 디자인적인 면을 강조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동체와 관련된 사업은 무척이나 가난하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저희는 그저 공동체를 위한 카페가 아니라 정말 디자인이 훌륭한 레스토랑을 원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의 레스토랑을 방문하면 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이 분야는 창의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혹스턴 스퀘어를 보세요. 거의 모든 곳이 건축, 디자인 사무실 같습니다. 쇼디치 지역은 디자인 산업과 사회 문제가 공존해 있는 독특한 곳이지요.

변화한 쇼디치 지역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듭니까?
예전 쇼디치 공원은 무척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불탄 오토바이가 굴러다니는 등 사건, 사고가 많이 있었죠. 우리는 이 공원에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배기 가스 조명등과 공공 미술 작품을 설치했습니다. 이제 쇼디치 공원을 지나가면 `가로등이 잘 켜져 있을까?` 혹은 `우리가 이렇게 했구나` 같은 생각이 들면서 뿌듯합니다. 이런 일들을 해내고 나니 쇼디치 지역을 바라볼 때마다 더욱 특별한 마음입니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입니까?
저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동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더 이상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난과 패배 그리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위축되고 정신적으로 망가집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으며 당신은 분명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지요. 모두가 백만장자가 될 거라는 헛된 희망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때문에 우리는 더욱 현실적이고자 노력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열정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늘 말하는 것이 있는데 완벽한 것을 바라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한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1 공장 건물을 재구성한 아티스트 스튜디오. 2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쇼디치의 레드처치 스트리트. 3 비스킷과 티를 만들던 공장 주변은 런던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으로 바뀌고 있다. 4 컨테이너로 만든 쇼핑몰 ‘박스파크’는 쇼디치의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에디터 최고은│인터뷰 김명한│구술정리 강승민│사진 레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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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뉴질랜드의 맛

담담한 뉴질랜드의 맛

뉴질랜드라 하면 딱히 떠오르는 대표 요리가 없지만 알고 보면 해산물 요리부터 땅속에서 나오는
자연 수증기로 익힌 항이 요리까지 의외의 요리가 있다. 별미가 가득한 뉴질랜드로 떠나는 미식 여행기.

나라 이름을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음식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개중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음식과 잘 연관이 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영국 문화의 세례를 받은 나라들이 그렇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정치범들이 이민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한 뉴질랜드의 경우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 중인 지인이 ‘현지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가정식 월남쌈’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키위 Kiwi, 즉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항변하며 억울해할 것이다. “우리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음식이 있다고! 어… 그러니까… 뉴질랜드 미트 파이 먹어봤어?”… 미안하다. 먹어봤다. 뉴질랜드에서 미트 파이는 연간 1인당 15개가 소비되는 ‘국민 음식’이다. 많은 부분에서 영국 요리와 궤를 같이하는 뉴질랜드 요리이지만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요리에서 ‘고기’가 차지하는 위치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고기는 상류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거의 모든 계층이 매 끼니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만큼 뉴질랜드는 식자재 면에선 풍성하기 이를 데 없는 땅이다. 해산물 면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는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이, 이 해역에서 잡히는 고기들의 크기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뉴질랜드 북섬, 베이 오브 아일랜즈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검은색으로 출렁이는 바다를 향해 어선들은 경쾌한 엔진 소리를 울려대며 돌진해 간다.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기세를 되찾으며 떠오른 태양빛을 받아 바다가 눈이 시린 코발트빛이 되었을 무렵, 선장 버코 씨가 외쳤다.

“킹피시 King fish예요!” 그가 가리킨 쪽엔 물보라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은색 섬광이 번쩍였다. 방어의 일종인 킹피시가 수면 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과 달리 날랜 몸놀림으로 버코 선장은 낚싯대를 잡아챘다. 그러고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메이저리그 투수처럼 팔을 흩뿌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낚싯바늘이 날았다. 순식간에 20m를 비행한 바늘이 착수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버코 선장은 릴을 감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은 맹수와 똑같아요. 앞에서 도망가는 게 있으면 무조건 추격하고 보죠.” 낚싯줄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은 보통의 미끼가 아닌 슬랩 Slab이라고 하는 일종의 모조 물고기다. 중심에서 약간 어긋나게 낚싯줄과 연결된 덕에, 릴을 감으면 자동으로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딸려온다. 진짜 물고기처럼 등은 푸르고 배는 희게 채색된 것은 물론 눈과 꼬리지느러미까지 있다. 물론 그 꼬리지느러미 안쪽엔 날카로운 바늘이 감춰져 있다. “보세요!” 물살을 가르며 달려오는 슬랩의 뒤를, 1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킹피시 한 마리가 뒤쫓고 있었다. 물고기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 때의 그 녀석은 분명히 얼빠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소시지를 발견한 강아지와도 같은. 그날, 우리는 1m짜리 킹피시 두 마리와 1m가 약간 안 되는 빨간 퉁돔 세 마리를 낚았다. 석양이 내려앉는 해안의 모래사장 위에 세 남자는 지는 해를 담고 반투명으로 빛나는 생선살과 한 병의 간장 그리고 세 캔의 맥주를 두고 앉았다. 이빨이 닿자마자 입안 가득 퍼지는 남태평양의 맛. 어설픈 요리 따위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눈물이 한 방울 흐른 것 같긴 한데 정신없이 먹느라 기억은 잘 없다.

입맛 면에선 청빈하기 이를 데 없는 영국계 이민자들과는 달리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들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즐겼다. 지금으로부터 600~1000년 전, 폴리네시아 제도로부터 카누를 타고 건너온 이들은 고향에서 고구마, 토란 등의 식용식물을 가지고 왔고 새 정착지에 지천으로 널린 고사리와 후후 풍뎅이의 애벌레를 재빨리 자신들의 식단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지금껏 천적이라고는 없어서 사람을 보고도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인 새들을 먹어치워 나갔다. 1770년 즈음에 멸종될 때까지 키가 3.6m에 달했던 모아새의 고기는 마오리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화산과 온천의 땅인 뉴질랜드 북섬에 사는 마오리들은 그에 걸맞는 새로운 요리법도 발전시켰다. 지구를 오븐이자 냄비로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거대한 화산 분화구이기도 한 로토루아 호수 근처의 화카레와레와 마을은 지열을 이용한 마오리의 전통 요리, 항이 Hangi를 맛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안녕하세요.” 코를 맞대는 마오리식 인사법을 마치자 가이드 마리아타는 우리를 마을 한가운데로 안내했다. 마을길을 따라 늘어선 수증기 자욱한 온천과 지열 지대가 이곳이 두 개의 대륙판이 맞부딪히는 지각 충돌의 현장임을 알게 해준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아열대 지역에 살다가 온대에 속하는 뉴질랜드로 건너왔죠.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이런 지열 지대에 마을을 만들게 된 거예요.” 겨울에도 온수가 무한정 공급되는 이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온천은 샴페인 풀이라고 불리는데, 탄산이 섞인 물이 샴페인 같은 거품을 내뿜고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물은 거의 섭씨 100℃에 육박한다. 기분 좋게 몸을 담글 요량으로 들어갔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온천의 용도는 다른 데 있었다. “여긴 거대한 연회장이나 다름없어요. 마을 잔치가 열리면 모두에게 음식이 분배되고 이 온천가에 모두 둘러앉아 재료를 끓는 물에 넣어 익혀 먹었던 거죠.” 말인즉슨,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샤브샤브 냄비가 바로 이 풀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 마을에선 이 샴페인 풀의 물로 익힌 옥수수와 땅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나오는 유황 증기로 익힌 항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마오리의 전자레인지입니다.” 유황 증기가 올라오는 틈에 항이 요리 전용으로 파묻어놓은 뚜껑 달린 상자를 가리키며 마리아타가 말했다. 이곳에 고기와 감자, 옥수수, 닭고기, 생선과 랍스터 등의 각종 해산물을 담고 한 시간 반 정도 놔두면 그대로 잘 익은 찜 요리가 완성된다. “항이 요리할 때는 어떤 조미료도 필요 없어요. 광물질이 섞인 유황 증기가 독특한 향을 더해주죠.” 완성된 항이 요리는 육즙이 촉촉하게 배어나올 뿐 아니라 아직 젊은 이 땅이 내뿜는 건강한 기운이 함뿍 배어 있었다. 남김없이 접시를 비우고 나자 대지의 더운 열기가 뱃속에서 은은하게 올라왔다. 300년 전 식사를 마친 마오리가 그러했듯이 온천을 찾아 느긋하게 몸을 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재형(다큐멘터리 PD) | 에디터 이경현 |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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