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 굽는 냄새

삼치 굽는 냄새

삼치 굽는 냄새

한창 제철로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기름진 맛이 좋은 삼치.

한창 제철로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기름진 맛이 좋은 삼치. 여느 등 푸른 생선과 달리 수분이 많아 입안에 녹듯이 부드럽고 비린 맛이 덜하다. 영양도 풍부하다. 오메가3지방산이 풍부해 두뇌 건강에 효과적이며 나트륨을 배출하는 칼륨이 많아 고혈압 예방에도 좋으니 과연 이 계절의 으뜸가는 생선이라 할 수 있다. 아가미로 내장을 빼고 굵은소금을 뿌려 통으로 굽는다. 김 모락모락 나는 삼치의 하얀 속살을 발라내 밥 위에 얹어 꿀꺽 삼키면 이보다 따뜻한 겨울 밥상이 있을까. 고소한 풍미가 시큼했던 겨울을 포근하게 감싼다.

에디터 이경현 | 포토그래퍼 안종환 | 도움말 김영빈(수랏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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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 굽는 냄새

토실토실 한 톨

토실토실 한 톨

밤나무의 열매로 율자라고도 불리는 밤.

밤나무의 열매로 율자라고도 불리는 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5대 영양소를 두루 갖춘 완전식품이다. 꾸준히 먹으면 체내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심장병을 예방하는 겨울철 으뜸 영양 간식이기도 하다. 특히 견과류 중 비타민C가 가장 많아 피부 미용, 피로 회복, 감기 예방에 탁월하며 껍질을 벗긴 생밤을 술안주로 먹으면 알코올 해독에도 좋다. 밤을 고를 때에는 알이 굵고 껍질이 깨끗하고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제철 밤은 마른 상태로 비닐팩에 담아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한 달은 거뜬히 먹을 수 있다. 밤을 가장 맛있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법은 바로 푹 삶아 까먹기!

압력솥에 밤 5컵과 물 1/2컵을 넣고 뚜껑을 덮어 찐다. 물을 많이 넣어야 되는 묵은 밤과 달리 제철 밤은 자체 수분만으로 찔 수 있고 담백하면서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속껍질까지 벗긴 밤을 나박하게 썰어 오이, 양파, 식초, 설탕을 넣은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리면 새콤한 밤 생채로도 즐길 수 있다. 영양밥과 죽, 삶은 밤을 설탕 시럽에 넣고 조린 유럽식 밤과자 ‘마롱 글라세’를 비롯한 제과 및 각종 조림에도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에디터 이경현 | 포토그래퍼 임태준 | 드로잉 장우석 | 도움말 김영빈(수랏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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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 굽는 냄새

이탈리아 북부로 떠난 미식 기행

이탈리아 북부로 떠난 미식 기행

베네치아를 둘러싼 내륙 지역을 가리키는 베네토에는 풍부한 해산물과 쌀이 어우러진 요리들이 많다.
그중 미식가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에밀리아-로마냐의 식전주부터 식후주까지 맛본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를 소개한다.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와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의 주도인 베네치아. 두 도시는 약소국에서 시작한 자수성가형 성공 스토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로마는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도시국가에서부터 시작했고, 베네치아는 야만족의 침입을 피해 아드리아 해 연안의 개펄로 쫓겨난 사람들이 만들었다. 둘 다 지중해 연안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한쪽은 영토에 바탕을 둔 패권 국가였고 다른 하나는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상업 국가였다. 대제국을 이룬 사람들답게 효율적이면서도 강건한 기상이 넘쳤지만 공화국 형성기의 로마인들이 명예에 죽고 사는 군인 타입이었다면, 베네치아 사람들은 기독교 세계를 대표해 십자군 전쟁을 치르면서도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냉철한 상인 집단이었다. 이렇듯 개성이 강한 두 지역 사이에 끼어 있는 곳이 바로 에밀리아‚로마냐 Emilia‚ Romagna다. 문화와 역사 면에서 이 지역은 로마와 베네치아의 교차점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 식량을 공급했던 배후지이기도 하다. 알프스와 아펜니노 산맥 중간의 드넓은 파다나 평야에 포 강을 젖줄 삼은 이 지역은 이탈리아 최고의 곡창 지대다. 아시아에서 건너온 쌀이 완벽하게 뿌리를 내려 리조토 Risotto로 다시 태어난 것도 이곳에서의 일이다. 남미에선 옥수수가 건너왔고 아펜니노 산맥은 풍부한 버섯과 허브를 공급해주었다. 넓은 평야는 소떼에게 신선한 목초를 제공하고 그 소떼는 신선한 우유와 육즙이 풍부한 고기를 선사한다. 동쪽에 면한 아드리아 해에서 잡히는 싱싱한 해산물로 생각이 미치면 이곳의 음식 사정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고대 로마로부터 내려온 연회의 전통, 풍부한 식재료 그리고 베네치아를 통해 전래된 아시아의 향신료가 더해지며 이 지역의 음식 문화는 화려한 꽃을 피웠다. CNN이 운영하는 여행 사이트에서 ‘2011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톱 50’을 선정했는데 순위에 든 3가지의 이탈리아 음식 중 2가지가 에밀리아‚로마냐의 전통 음식이었을 정도다. 파르마의 햄과 볼로냐의 라자냐가 그것. 하물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식가다. 정찬 메뉴를 구성할 때도 메인 요리로는 부족해 첫 번째 요리, 두 번째 요리와 사이드 메뉴까지 먹어야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고 생각한다. 디저트와 식후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고든 램지의 성깔에 우미하라(<맛의 달인>에 나오는 미식가)의 혀를 가진 까탈스런 이탈리아인이라 할지라도 에밀리아-로마냐에서라면 안심이다. 그들이 말을 잊고 계속 턱을 움직이게 할 만한 완벽한 정찬 코스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드리아 해와 파다노 평야의 선물
19세기 말, 미국에서 건너온 ‘필록세라’ 진딧물은 프랑스 포도의 3/4을 전멸시키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포 강 삼각주의 소금기는 유럽 고유의 포도 품종이 자라는 포도원을 이 벌레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줬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보스코 엘리체오 와인은 산뜻하면서도 연한 바다 내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 레드 와인이지만 이 지역의 해산물과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전채 요리는 이미 정해진 셈이다. 아드리아 해에 인접한 운하를 돌다 보면, 양쪽으로 늘어선 식당들이 어부로부터 사들인 생선을 얼음에 재워 진열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진열 솜씨가 그날 매상과 직결되다 보니 바닷속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생생함(그리고 식당 매니저의 혼신의 예술혼)이 느껴지는 작품들도 여럿 보인다. 다양한 해산물을 한 접시로 맛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안티파스토 디 프루티 디 마레 Antipasto di Fruti di Mare다. 직역하면 ‘바다의 과일로 만든 전채 요리’라는 뜻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가리비, 숭어, 오징어 등의 해산물과 올리브오일과 약간의 레몬즙이 전부다.
소화액 분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슬슬 첫 번째 요리를 만나봐야 할 때다. 아드리아 해를 잠시 뒤로하고 쭉 뻗은 하이웨이를 달려 내륙으로 향하면, 길은 반드시 볼로냐를 지난다. 우리에게 이 도시가 익숙한 이유는 스파게티 알 라구 Spaghetti Al Ragu 또는 스파게티 볼로네제 Spaghetti Bolognese 때문. 스파게티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이미지다. 라구는 쇠고기, 돼지고기, 토마토로 만든 고기 소스를 의미한다. 사실 볼로냐에서는 건조시켰다가 삶아 먹는 스파게티보단 그때그때 밀가루를 반죽해 만드는 라자냐가 더 유명하다. 라구와 크림소스, 그리고 라자냐 면을 5단 이상 쌓아 오븐에서 익혀야 제대로 된 라자냐다. 그런데 여기 들어가는 치즈를 구하려면 다시 차를 타고 좀 더 가야 한다. 볼로냐에서 북서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파르마 Parma는 우리가 파르메산 Parmesan이라 알고 있는 파르미쟈노‚레쟈노 치즈의 본고장이다. 이곳에 사는 소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목초지에서 자연스럽게 자란 풀을 뜯으며 최상급의 우유를 생산하는데 이 우유로 만들어 1년 이상 숙성 과정을 거친 치즈에만 ‘파르미쟈노-레쟈노’라는 이름이 붙는다. 씹을 때 농축된 미네랄 알갱이가 아삭거리는 느낌이 일품인 이 치즈의 별명은 ‘부엌의 남편’이다.

포 강이 선사한 깊은 맛 그리고 완벽한 마무리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뱀장어 사랑이 유난한 나라 중 하나다. 나폴리에선 크리스마스이브에 뱀장어를 먹는 전통이 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벽화에서 예수와 제자들이 먹고 있는 요리가 뱀장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그림이 그려질 당시, 뱀장어 요리는 밀라노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으며 다빈치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이탈리아식 뱀장어 요리인 앙길라 인 우미도 Anguilla in Umido. 화이트 와인, 마늘 그리고 토마토소스는 뱀장어의 농후한 맛과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여기에 옥수수죽인 폴렌타를 곁들이면 뱃속에 남아 있던 공간은 뿌듯한 포만감과 함께 점점 사라져 간다. 하지만 에밀리아‚로마냐에서 세콘도 피아토, 즉 ‘두 번째 요리’를 제대로 먹었다는 말을 하고 다니려면 사이드 디시인 콘토르노를 빼놓으면 안 된다. 샐러드인 인살라타나 익힌 야채 등이 콘토르노가 될 수 있는데 이탈리아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인살라타를 먹을 수 있는 곳도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이다.에밀리아‚로마냐를 바쁘게 돌아다닌 일정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페라라 이외엔 떠오르지 않는다. 에스텐제 성 맞은편에 펼쳐진 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아 붉은 지붕들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볼 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뭘 먹었는지 다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의 완벽한 달콤함이다.
그리고 그 목적에 티라미수처럼 어울리는 디저트도 없다. 티라미수가 어디서 처음 유래했는지에 대해선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그리고 베네토 지역이 서로 다투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를 들어올려주는 것 Tirare‚ mi‚ su’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 조각 베어 물면 기분이 좋아지고 지친 몸이 회복될 정도로 달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이탈리아식 정찬을 끝내기에 부족하다. 식사를 하는 과정이 길었던 만큼 혀에서 그 맛을 지워 나가는 과정도 철저하다. 후식과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거쳐 모든 식사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암마차카페 Ammazzacafe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식후주다. 이 용도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것이 바로 그라파 Grappa다. 와인을 만들 목적으로 포도의 즙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증류해 만드는 이 술은 발랄하고, 달콤하며, 강렬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지금껏 혀를 거쳐간 최고의 재료들과 그것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돈까지도. 입안에 감도는 그라파의 향기는 식탁 위의 축제가 끝나버린 우울감을 지우며 밤의 거리로 나설 용기를 불어넣는다. 아무래도 배를 완전히 꺼뜨리기 위해선 페라라 성벽을 한 바퀴 산책해야 할 모양이다.

탁재형(다큐멘터리 PD) | 에디터 이경현 |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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