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부산물과 콩으로 만든 노예들의 음식 페이조아다와 커다란 꼬챙이에 꿴 고기들을 쉴 새 없이 서빙하는 레스토랑까지. 육식파라면 더욱 환상적일 브라질에서의 미각 체험을 소개한다.
“탁PD는 종교가 뭐야?” 식당에 들어온 지 어느덧 30분이 되어가는데, 게다가 테이블 사이사이로 육즙이 줄줄 흐르는 고깃덩어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입까지 도달한 고깃점 하나가 없었다. 이곳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의 한 식당. 여기서 제과 공장을 경영해 큰 성공을 거둔 교민 가족을 취재하러 온 길이다. 촬영을 거의 다 마쳐갈 즈음,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고 도착한 곳은 휑하니 넓은 식당. 중앙에 샐러드 바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뷔페가 더해진 피자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인 것 같았다. 이곳이 브라질식 숯불구이집인 ‘호디시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지나서였다. 주방 문이 열리자 웨이터 다섯 명이 저마다 1m 남짓한 꼬챙이에 꿴 고기를 들고 일렬종대로 걸어 나온다. 아직 불기운이 가시지 않아 표면에서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끓고 있는 고기는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남미 중앙부의 습지대는 소를 키우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넉넉히 내리는 비를 맞고 광활한 들판을 가득 채운 풀은 소 떼를 위한 최고의 식량이 된다. “이곳에선 소에게 사료를 먹이는 게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어요. 벌판에 먹이가 널렸는데 일부러 곡물을 먹여 키울 이유가 없죠.” 브라질의 판타나우 습지대를 마음껏 돌아다니는 소 떼를 보며 가이드가 했던 말이다. 그래서 남미산 쇠고기는 살을 찌우기 위해 곡물 사료를 먹여 키운 우리나라의 한우나 일본의 와규처럼 마블링이 치밀하지 않다. 하지만 살코기 맛으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더 농밀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브라질식으로 ‘슈하스코’라고 부르는 이 숯불구이는 정말 최고다! 양념이라고는 천일염만 조금 사용했을 뿐인데 고기가 가지고 있는 0.01g의 아미노산마저 모두 다 맛으로 바꿔놓은 것 같은 감동을 준다. 정확한 불 조절과 굽기 시간 그리고 꼬치 회전의 정밀함이 빚은 결과가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고기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는데도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호디시우에서 음식을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기와 샐러드는 입장료만 내면 무제한이다. 자리에 앉아 허공에 떠다니는 고기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부위가 지나갈 때 한 손을 들어 신호하면 된다. 웨이터는 즉각 손을 든 손님 앞으로 와서 원하는 만큼의 고기를 썰어주고 가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고기가 있으면 웨이터가 손님들에게 먼저 권하기도 한다. 요는 손님이 먼저 먹을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것인데 거기에 내 곤란함의 씨앗이 있었다. 앞에 앉은 제과 공장 사모님의 종교적 열정과 그에 따른 질문 및 권유 공세에 나는 번번이 웨이터를 부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명절 때 취업이나 결혼에 관한 토픽만큼이나 가족 간 불화를 일으키는 단골손님인 종교 문제가 이역만리 남미 땅까지 와서 고기 섭식을 방해할 줄이야! 더 얄미운 것은, 여자는 남자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멀티태스킹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식당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 아주머니는 불신자의 불경스러움을 질타하는 동시에 본인이 몸담은 종교의 우수성을 선전하고, 그러면서도 맛있는 안심 부위를 들고 지나가는 웨이터를 멈춰 세워 고기를 받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물 흐르듯이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쇠고기 안심, 등심, 닭 가슴살과 날개가 돌아다니는 것을 곁눈으로만 지켜보다가 아주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모르셀라’라고 부르는 돼지피 순대와 닭 염통 따위를 접시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물론 그것들은 아주머니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내 입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천국의 맛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오븐에 통째로 구운 돼지 반 마리분의 갈빗살이 카트를 타고 등장해 아쉬움을 달래주었지만.
브라질의 소울 푸드, 페이조아다
제대로 브라질 음식을 맛보고 싶은 열망은 이내 브라질 방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슈하스코를 맛보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난관이 남아 있었다. 2008년, <세계테마기행> 촬영차 브라질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리우데자네이루’를 찾았을 땐 브라질 화폐 헤알화의 환율이 상종가를 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4년 전에 비해 거의 3배 가까이 치솟은 환율 때문에 브라질에서 촬영을 이어가기 위해선 무척이나 궁핍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슈하스코는커녕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이어가던 중, 어느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브라질 사람들의 소울 푸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페이조아다’와 마주쳤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눈이 갔는데 그럼에도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활동하는 데 충분한 열량을 공급 받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페이조아다는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을 위해 탄생한 음식이다. 저렴한 재료로 최고의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 페이종이라는 검은콩을 밤새 물에 불린 것이 주재료다. 여기에 돼지의 귀와 코, 족발과 꼬리를 넣어 푹 익힌 뒤 맛을 내기 위해 마늘과 월계수 잎을 첨가해 한소끔 더 끓인다. 백인 농장주들이 돼지의 살코기를 가져간 뒤 남은 부산물을 가지고 만든 음식이었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 요즈음엔 쇠고기나 소시지를 함께 넣어 더 풍부한 맛을 내는 집들도 있다. 여기에 오렌지 한 조각을 곁들이면 영양과 맛에서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페이조아다의 맛은 심플하면서도 묵직하다. 노동하는 자를 말없이 격려하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피멘타 카제이라’라고 하는 브라질식 핫소스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더 훌륭하다. 그래서인지 힘겨운 촬영이 계속된 몇 주 동안, 나는 페이조아다에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해 집에서 만들어 먹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거칠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슈하스코
결국 브라질에서 슈하스코를 다시 만난 건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난 지 한참 지나 볼리비아와의 국경에 자리 잡고 있는 코룸바라는 도시를 방문했을 때였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판타나우 대평원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캄푸 그란지’로 모여들었다. 23시간에 걸친 버스 여행 끝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피곤에 절어 눈도 잘 떠지지 않는 나에게 열심히 호객행위를 해대던 어딘지 좀 허술해 보이는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르셀로. 우기엔 강이 되어버리는 도로 위에 낚싯대를 드리워 고기를 잡는 것 이외엔 살아갈 방법이 없는 고향 마을 코룸바를 떠난 그는 캄푸 그란지에서 터미널에 도착하는 여행객들을 여행사로 끌어들이는 호객꾼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친구를 따라 변두리로 들어가면 뭔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판타나우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 하나에 의지해 코룸바까지 가고야 말았다.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가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브라질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조금 더 적나라한 속살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와 아들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일하면서도 착실히 돈을 모아 어머니가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냉장고를 선물하는, 어떤 면에선 우리보다 좀 더 극단적이고 어떤 점은 비슷한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흘간의 취재를 마치고 코룸바를 떠나기 전날 밤 마르셀로는 나를 자기 집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슈하스코 파티에 초대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마르셀로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말했다. “브라질에서 슈하스코 파티에 초대 받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래야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어요.” 그날, 고기 집게를 잡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이분이 제 아버지시고 이쪽은 아버지의 여자친구 그리고 이쪽이 저희 어머니고 이분은 어머니의 남자친구분이세요.”
어머니의 남자친구는 다른 건 몰라도 슈하스코 파티의 행동 원칙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기를 굽는 마르셀로 아버지 옆에 딱 붙어서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잘 익은 고깃점을 연신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고기 굽는 거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힌다니까요.” 마르셀로를 가운데 두고 영어와 포르투갈어가 뒤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나는 불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제법 커다란 고기 한 점을 접시에 받아 들었다. 고기의 맛은 코룸바 사람들의 삶처럼 질기면서도 거칠었다. 그리고 마르셀로 가족의 복잡한 가족사처럼 뭔가 간단하게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씹으면 씹을수록 짭조름하고 고소한 육즙이 배어나온다는 거였다. 그들의 미래가 이러하리라고 단정짓는 건 신파겠지만 그날 밤의 분위기는 신파에 퍽 어울렸다. 신파면 좀 어때. 고기도 아직 많이 남았고 사람들은 이제 막 달아오르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글 탁재형(다큐멘터리 PD) | 에디터 이경현 |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