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사는 남자, 포토그래퍼 조남룡이 카페 ghgm을 오픈했다. 공간을 만든 사람의 취향과 시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그곳을 방문했다.
↑ 커다란 원목 판재를 손으로 가공해 만든 1층의 테이블은 카페 ghgm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나는 잡지 기자로 일한 지 햇수로 18년쯤 된다. 연차가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영화관이든 미술관이든 장소를 취재할 때는 눈에 보이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그러모으기 바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후배에게 일을 시키는 위치가 됐다. 그제서야 공간의 진실을 느끼고 알리는 눈이 조금 트였다. 공간은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을 닮는다. 그를 알아야 그의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리게 된다. 당연한 소리인데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아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서 공간을 취재하러 나가는 후배들한테는 “사장이든 매니저든 건축가든 그 공간을 가꾸고 만든 사람을 만나고 오라”고 당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진가 조남룡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그가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지어 얼마 전 문을 연 ‘카페 ghgm’을 소개하려 한다. 내 논리대로라면 그의 공간보다도 그를 소개하는 일이 되겠지만.
↑ 1 2층 ghgm 작업실에 앉아 있는 사진가 조남룡. 2 카페 ghgm 활용법. 핸드메이드 가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조남룡의 사진 바라보기.
조남룡은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다. 선 굵은 외모와 훤칠한 체격, 힘이 있는 목소리와 가볍지 않은 몸가짐은 상대에게 믿음과 호감을 준다. 잡지사 사진기자로 시작해 청담동에서 패션, 광고 사진과 유명인 포트레이트를 찍을 때부터 그랬다. 그런데 묘한 부분이 있었다. 누구보다 도시적인 감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인데 그에게선 조금씩 바람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낡고 큰 SUV에 카메라를 싣고 몽골의 초원으로 달려나갈 것만 같은 자유로운 감성. 그래서 그가 용인에 ‘더 우드 스튜디오’라는 목공 공방을 열었다는 풍문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생길 일은 어떻게든 생기니까. 결과적으로 더 우드 스튜디오는 카페 ghgm의 모태가 되었다.
11년 전 조남룡은 용인에 목조 주택을 지어 이사 오면서 목공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목공 학교를 다니며 집 안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실을 운영하던 동료들과 뭉쳐 회원들에게 원목 가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장소를 제공하는 더 우드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몇 년 후 얄궂은 세상사 때문에 더 우드 스튜디오는 흩어지게 됐다. 조남룡은 이참에 가구 브랜드를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ghgm. ‘Good Hand Good Mind’의 줄임말이다. 광고 기획자로 이름을 날리던 친구가 붙여준 이름이다. 조남룡은 더 우드 스튜디오 바로 옆에서 자신이 수입한 빈티지 가구를 전시하던 곳을 ghgm의 사무실과 갤러리를 겸하는 복층 공간으로 개조해 썼다. 그 공간에 카페 기능을 넣은 것이 올해 2월에 오픈한 카페 ghgm이다. 그러니 이 카페의 유전인자에는 ‘조남룡’, ‘나무’, ‘가구’, ‘빈티지’가 단단히 새겨져 있는 셈이다.
↑ 조그만 화분들은 이 남성적인 공간을 쓰다듬어주는 ‘깨알’ 디테일이다.
↑ 자연광이 풍족하게 내리쬐는 2층은 ghgm의 작업실 겸 갤러리다. 천천히 둘러보며 ghgm의 가구를 구입하거나 제작을 의뢰할 수 있다.
나는 ‘조남룡 실장이 더 우드 스튜디오를 계승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는 소식만 듣고 그곳을 찾았다. 몇 년 전 더 우드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어 길은 쉽게 찾았다. 그런데 그 길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대로에서 들어서자마자 한적한 느낌이 드는 좁은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갔는데 이제 그 좁은 길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유명 축구 선수가 운영하는 축구 교실도 이웃했다. 내비게이터가 알려준 곳에 차를 대고 내리니 깨끗한 창고형 건물에 ‘카페 ghgm’이라는 작은 간판이 달려 있었다. 카페!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조남룡이 카페를 열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낯설었고, 조금이라도 자연에 가까운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어 이사 온 사람들 곁에 카페라는 휴식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탁 트인 복층 구조의 실내는 커피 향과 음악, 나무와 가구로 가득했다. ‘조남룡’과 ‘카페’는 잘 연결되지 않는 단어 같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카페니까. 긴 원목 판재를 통째로 상판으로 쓴 테이블에 앉았다. 주문한 커피가 놓이기도 전에 테이블에서 일어나 1층과 2층을 둘러보았다.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교외의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은 전부 ghgm이 제작한 것이거나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이었다. 아르네 야콥센도 보이고 톨릭스 체어도 있었다. 랑프 그라는 언제 봐도 기능적인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우체국이나 공장에서 쓰던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가구 위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꽃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테이블 사이에는 조남룡이 찍은 인물,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다. 1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콘크리트 벽에 세워진 커다란 판재들이다. 월넛, 웬지,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아프로모시아, 유럽산 오크. 수령이 100년 넘는 나무를 잘라 가공한 것이라 어떤 건 웬만한 사람 키의 두 배도 넘게 크다.
↑ 1 제작한 가구들의 사진과 도면을 붙여놓은 2층 ghgm 작업실 벽. 2 ghgm의 나무 도마는 카페 손님들이 즐겨 사가는 아이템이다.
↑ 1 가구뿐만 아니라 작은 문구류도 제작하는 ghgm이 습작으로 만든 나무 잔들. 2 세월을 함께 견딘 빈티지 철제 조명과 원목 테이블.
↑ 시원하게 트인 아래층을 내려보는 건 로프트 구조가 주는 즐거움이다.
카페로 쓰이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ㄷ자 모양으로 구성된 ghgm의 사무실 겸 갤러리를 만나게 된다. 카페 손님들은 자유롭게 2층을 구경하면서 ghgm의 가구를 구입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가구를 주문하기도 한다. 작은 나무 자 같은 문구에서부터 책상과 의자, 침대와 콘솔, 테이블, 오리지널 빈티지 체어, 캘리그래퍼가 만든 목공예품에 이르기까지 ghgm의 감각과 손맛이 배어 있는 가구들로 가득하다. 2층에 놓인 스피커도 나무 캐비닛 느낌이 좋은 영국제 ‘하베스 Harbeth’다. 이 공간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나무와 가구와 음악과 커피 향이 가득한 곳에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마냥 아기자기하니 예쁘기만 한 카페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흡족한 기분이 가득 차오른다. 공간을 만든 사람의 취향과 시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곳, 없는 걸 만들어내거나 애써 꾸미지 않은 곳, 그래서 계속 찾아도 질리지 않는 곳. 그런데 이런 곳을 만나기가 은근히 어렵다.
뒤늦게 1층 원목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에스프레소 투샷이 풍기는 진한 맛과 향. 어떤 장소를 취재하고 나면 개인적인 결정이 선다. 다시 올 것이냐 오지 않을 것이냐. 카페 ghgm은 아내와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빈티지 가구와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가 무척 좋아할 것이다. 그때면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벚나무와 은행나무에 잎이 푸르겠지.
글 송원석 (자유기고가) |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박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