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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레이어와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색이 아닌 ‘빛깔’을 쌓아가는 윤종주 작가. 오늘 5월, 인피니에서 열리는 기획전에서는 색과 빛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 새롭게 보여줄 것이다.

하나의 화면을 여러 개로 나누어 미묘한 색 차이를 발견해볼 수 있으며, 무한대로 확장 가능성이 있는 모듈 작업.

작가의 고향이자 작업실이 위치한 대구에서 윤종주 작가를 만났다.
다양한 물감들이 다녀간 흔적.

작품을 처음 보면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빛이나 시간의 흐름도 함께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한 번에 한 층 위에 또 다른 층이 올라가고, 그게 또 그러데이션되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거든요. 그러면서 색이 계속 중첩되어요. 그 안에서 깊이감이 생기고 빛이 보이기도 하고,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또 그 과정에서 선이 생기기도 하고요. 저는 그것을 색이라 하기보다 ‘빛깔’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빛에 따라서, 보는 방향에 따라서 계속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어떤 고정된 색이라기보다는 계속 변하는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에서 ‘시간’이 중요한 요소라고 하셨는데, 실제 작업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제 작업은 시간을 머금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한 번 작업을 하면 그게 마르는 데 보통 6시간에서 8시간 정도 걸려요. 그래서 하루에 많이 작업해봐야 두세 번 정도 레이어를 올릴 수 있어요. 그걸 계속 반복하면서 층이 쌓이는데, 그 시간이 결국 작품 안에 그대로 들어가요. 물감이 마르기 전과 후의 색이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화를 보면서 다음에 어떤 색을 올릴지 결정하게 되고요. 그렇게 하루하루 선택이 쌓여서 결과가 만들어지는 거죠.

말씀하신 레이어 작업 방식이 일반적인 회화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붓으로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아크릴 물감과 잉크, 그리고 미디엄을 섞어서 사용합니다. 이걸 한 번 거름망에 걸러서 입자를 최대한 곱게 만들고, 캔버스를 눕힌 상태에서 액을 붓듯이 올려요. 그리고 기울기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퍼지게 하는 방식이죠. 미디엄이 약간 반투명하고 점성이 있어서, 아래층 색과 섞이면서 예상과 다른 색이 나오기도 해요. 그래서 완전히 계산된 색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저도 결과를 기다려봐야 아는 상태가 됩니다. 다음날 작업실에 와서 마른 색을 보는 순간이 늘 긴장되고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일몰의 색감을 표현한 <Cherish the time-sunset>.
작가의 작업은 일상 공간에 놓였을 때 더욱 빛을 낸다.

그렇다면 작업은 철저히 계획에 따라 진행되기보다, 감각에 의존하는 부분도 클 것 같아요. 전체적인 톤이나 방향, 예를 들어 이번에는 핑크 계열로 간다 이런 건 정하지만, 그 안에서 구체적인 색은 작업하면서 계속 바뀝니다. 계량해서 정확하게 맞추는 게 아니라, 지금 이 화면에 뭐가 더 필요한지 보면서 결정하는 거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언제가 가장 좋은 상태인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고요. 그 감각을 쌓아가는 게 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걸 놓치면 좋은 순간을 그냥 지나가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가장자리 부분의 색 경계가 인상적입니다. 그러데이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엣지가 생기기도 하고, 평면적으로 끝나기도 해요. 예전에는 그 엣지를 더 강조하려고 일부러 닦아서 만들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면 조금 인위적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엣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레이어가 쌓이면서 그 경계가 점점 진해지고, 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또 다른 색이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여러 캔버스를 배치해 모듈 방식으로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드로잉에서 시작된 선 작업이 있었고, 그걸 캔버스 안으로 가져오면서 분할해보기 시작했어요. 하나의 화면을 나누면 색의 미묘한 차이가 더 잘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여러 개를 이어 붙이면 또 다른 확장이 가능하고요. 실제로 이 모듈은 계속 확장할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고, 운송이나 설치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큰 작업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니까요.

푸른색을 기본으로 하지만, 가장자리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붉은 기운이 특징인 <Cherish the time-beyond>.
다가오는 인피니 전시에서 선보일 메인 작품 <Cherish the time-line>. 봄 기운을 컬러로 표현했다.

색에 대한 작가님의 기준도 궁금합니다. ‘좋은 색’ 혹은 ‘충분한 색’이 있다고 보시나요? 색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색이든 다 자기만의 에너지가 있고,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다만 저는 너무 강하고 차가운 색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고 사람을 감싸주는 느낌의 색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하나의 색보다는, 여러 색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미묘한 차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자연의 색은 계속 변하잖아요.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있는 색은 제한적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색이 존재하고요. 특히 선라이즈나 선셋을 보면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수많은 색이 겹쳐져 있죠. 그런 미묘한 변화, 이름 붙이기 어려운 색들을 작업으로 가져오고 싶어요. 자연에서 느끼던 감각을 화면 안에서 다시 만들어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업 과정이 굉장히 정적이고 반복적이에요. 명상하는 듯한 기분도 들 것 같아요. 마음이 급하거나 들떠 있으면 꼭 문제가 생겨요. 기포가 생기거나 표면이 망가지거나. 그래서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물감도 기다려줘야 하고요. 빨리 말리려고 하면 오히려 문제가 더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작업하면서는 최대한 한결같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직사각형 작업과는 또 다른 무드를 만들어내는 원형 작업들.
물감을 덧입고 마르며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작품들.
거치대에 올려 수십 번 물감을 올리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표면을 보면 굉장히 매끈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집니다. 물성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초기에는 파라핀 같은 재료도 사용해봤고, 여러 가지를 실험했어요. 그런데 파라핀은 온도에 따라 깨지거나 흘러내리는 문제가 있어서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후에 다양한 재료를 테스트하다가 미디움이 제가 원하는 물성에 가장 가까웠어요. 반투명하면서도 층을 만들 수 있고, 깊이감도 생기고요. 지금은 그 재료 중심으로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인피니 전시는 가구와 함께하는 공간 전시입니다. 기존 전시와는 다른 지점이 있나요? 예전에 가구 공간에서 전시했을 때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제 작업이 공간 안에서 오브제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요. 이번 전시는 컬러에 집중한 전시라서, 봄 시즌에 맞춰 조금 더 과감한 색을 사용했습니다. 가구와 함께 놓였을 때 공간이 더 신선하게 보이도록 작업했고요. 기존 화이트 큐브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셔서 봄 기운을 느껴보세요.

인피니의 첫 번째 아트 컬래버레이션

윤종주 <Layers of Time>

윤종주 플렉스폼, 델쿠르 컬렉션, 콜렉시옹 파티큘리에르, 바이스프링, 갈로티 & 라디체, 야마기와 등 미니멀하고 구조적인 언어를 기반으로 한 하이엔드 리빙 브랜드를 전개해온 인피니가 현대미술과의 접점을 본격적으로 확장한다. 오는 5월 13일부터 6월 10일까지 인피니 쇼룸에서 열리는 기획전 윤종주 <Layers of Time>이 그 시작이다. 시간을 층으로 쌓아올리는 윤종주 작가의 작업은 오랜 시간의 축적을 전제로 하는 가구와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공간 안에 놓인 작품은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하며, 색과 빛의 변화를 일상의 공간 속에서 직접 마주하게 한다. 인피니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작가와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쇼룸을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브랜드와 예술, 그리고 생활이 교차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가구가 머무는 시간과 회화가 머금은 시간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어떻게 공명하는지, 그 연결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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