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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콤파니의 아무 송과 요한 올린은 20년 동안 전 세계 장인들과 함께 물건을 만들었다. 이 여정은 만들기 세상을 가장 깊숙이 들여다보는 탐구이자 사랑에 빠진 자들의 순례다.

전시장 3층 전경. 콤파니가 실제로 운영하는 디자인 하우스 ‘비밀상점 Salakauppa’를 서울로 옮겨왔다.

콤파니 COMPANY

아무 송(왼쪽)과 요한 올린.

아무 송 Aamu Song과 요한 올린 Johan Olin이 2000년에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 두 사람은 2007년부터 러시아, 멕시코,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각 지역의 장인들과 협업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시크릿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니카리 Nikari, 크바드랏 Kvadrat, 아르텍 Artek 등과 협업했으며, 이들의 작품은 헬싱키 디자인 뮤지엄, 아이슬란드 디자인·공예 뮤지엄 등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콤파니의 수많은 작품 스케치를 배경으로, 요한 올린을 닮은 전시 설치 작품.
러시아에서 진행한 시크릿 프로젝트의 마트료시카.

전시 이름이 입니다. 왜 ‘Affair’라는 단어를 선택했나요?

아무 송(이하 아무) ‘Affair’에는 여러 의미가 있잖아요. 유엔의 외교 문제처럼, 정치와 경제 같은 진지한 사안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냥 시적이고 귀여운 물건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깊은 외교적 교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누군가와 Affair의 관계에 있다’는 표현처럼 사적인 의미로도 쓰이죠. 제 국적은 한국이고 핀란드에 살고, 요한은 핀란드 사람이지만 우리는 항상 러시아나 파키스탄, 일본 등 여러 나라와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요. 그런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요.

요한 올린(이하 요한) 장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전통적인 방법을 쓸 때가 종종 있는데요. 협업을 제안할 때는 마치 러브레터를 쓰는 것 같습니다. 그냥 ‘만들어봅시다,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가 아니라 온 진심을 담아 보낸 뒤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답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장인을 직접 찾아가는 경우도 있죠. 일종의 프러포즈인 셈입니다.

프러포즈는 항상 수락을 받나요? 아무, 요한 (동시에) 아니요!

정성을 들여 프러포즈했는데 원하는 답이 오지 않으면 실망하겠는데요.

아무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흥분돼요. 그들이 가진 자부심이 느껴지거든요. 진정한 예술가이기에 우리가 필요 없는 거잖아요. 아마 그들은 우리가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계인 같을 거예요. 이미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왜 굳이 외계인을 위해 뭔가를 만들려고 하겠어요. 이웃을 위해서만 물건을 만들어도 충분히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요.

요한 장인들은 이미 완전해요. 우리가 리서치한 것을 모아놓은 전시장 1층의 멕시코 마스크 같은 경우 정말 훌륭한 작품이에요. 거기에 우리가 뭔가 더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충실히 기능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크릿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파키스탄 장인들과 협업한 의자와 일본 남부 지역에서 진행한 시크릿 프로젝트의 작품 일부.

항상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락하고, 직접 찾아가 기술을 배우는가요?

아무 네. 우리는 디자인을 미리 정해두지 않아요. 먼저 찾아가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무언가를 만들자고 제안할 때도 그들의 전통을 따릅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생기고, 만들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진행합니다. 물론 우리의 시간과 돈, 자원이 많이 드는 일이지요.

콤파니의 작업은 우연한 만남을 따라 방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우나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 촛대의 장인을 찾아가며 시크릿 프로젝트가 시작된 일화처럼요.

아무 아니에요. 혹시 우리를 히피라고 생각한 거예요?(웃음) 엄청난 리서치가 따릅니다. 결혼 상대자는 우연히 만날 수 있지만, 데이트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나서 결혼을 결정하는 것처럼요. 대뜸 ‘결혼할래요?’ 하지 않잖아요.

요한 펭귄조차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영원히 춤을 춘대요. 우리는 산업디자이너로 훈련받았어요. 정말 전문적으로 일하고, 지켜야 하는 엄격한 규칙들도 있습니다.

아무 그래야 제조업체나 장인이 기꺼이 우리와 함께 물건을 만들고 싶어할 것이고요. 시크릿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작곡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장인의 악기가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가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요. 그래서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며 친구가 됩니다. 그의 나라와 언어를 이해하고 가족과도 지내며 그 연주자에게 딱 맞는 곡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거죠. 처음에는 짧은 곡을 보내요. 그때 장인이 ‘아, 이들이 내 일을 이해해줬구나’ 하고 느끼기 바랍니다. 늘 연주하는 곡이나 관광객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그 장인을 제대로 번역해준 곡처럼 느껴지기를. 서로 이해했다는 확신이 들면 좀 더 긴 버전의 노래를 만들거나, 다른 연주자를 합쳐 트리오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시크릿 프로젝트는 우연에만 기댈 수 없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헤드폰을 끼고 서 있는 목탁. 안진석 장인과 함께 만들었다.

<COMPANY World Affair>는 시크릿 프로젝트의 20주년 회고전입니다. 뜻깊은 전시를 한국에서 열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요한 보통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해당 국가에서 전시를 엽니다. 그래서 헬싱키 디자인 뮤지엄에서 많은 작업을 선보일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반은 한국인이고, 제 가족의 절반도 여기 있는 셈이라 한국에서 한번 더 전시회를 열고 싶었어요. 3년 전, 피크닉의 김범상 대표가 우리의 문을 두드렸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계획했지요.

아무 저는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받았어요. 누군가 질 좋은 종이나 맛있는 냉면을 만들면 다들 그 혜택을 누리잖아요. 여기서 자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음식 등 모든 것을 받았는데 저는 핀란드로 떠나서 일했지요. 한국 문화에 빚을 갚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쉰 살이 됐고 더 늦기 전에 한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번 전시입니다.

새롭게 공개한 목탁 작업에 대해서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아무 목탁의 형태와 구조는 이미 완벽한 것이에요. 그래서 현대인을 위한 새 목탁을 고안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서재 선반에 올려두고, 마음이 내킬 때 꺼내서 두드릴 수 있는 목탁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목탁을 받칠 방석도 필요하고 생각보다 공간도 많이 차지하더라고요. 그래서 세로로 세워 보관하며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게 했어요. 다만 불교적인 의미를 훼손하거나 잘못 이해한 건 아닌가 너무 걱정됐어요.

요한 목탁을 종교적 상징에서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것이 과제였어요.아무 경북 영천에서 목탁 작업을 하는 안진석 장인에게 핀란드 초콜릿과 함께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어요. ‘목탁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평화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읽어줬고, 그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며 기꺼이 도와주었습니다.

파키스탄 장인과 제작한 의자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서 처음 공개했어요.

아무 우리 작업은 일종의 순례입니다. 다양한 전통과 종교를 살피지요. 파키스탄 여정은 이슬람 문화로의 첫걸음이었어요. 처음엔 인도의 힌두교에 관심이 있었어요. 신이 많은 종교로 이에 따른 조각상이나 제사 도구들이 어마어마하니까요. 헬싱키대학 도서관에서 찾은 책에는 페이지마다 굉장한 전통 기법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런데 그 건물과 장인은 파키스탄에 있는 거예요. 그 책이 출판될 당시에는 인도가 하나였던 거죠.

요한 복잡한 식민지 역사가 존재하고, 파키스탄과 인도는 분리됐지만, 무굴 제국 이래의 전통은 같습니다. 그래서 리서치가 파키스탄으로 이어졌어요. 나무에 색을 새기는 전통 방식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놀라운 것이었는데 실란왈리 Silanwali라는 작은 마을에 그 기술을 유지하는 장인이 많았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라호르와 사르고다로 가서 지역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우리를 외국 요원으로 의심한 경찰이 계속 따라다녔어요. 긴장을 좀 했지요.

일본 나가노 지역의 장인과 협업한 작품 일부.
전시가 열리고 있는 피크닉의 파사드.

요즘은 AI 기술 덕분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장인과의 소통이 더 편해졌나요?

요한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요. 편지 쓸 때 구글 번역기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메일이 없는 분들이라 직접 써야 합니다. 하지만 장인들과 협업에서 종종 깨달은 건,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로울 수 있다는 거예요. “배고파요? 밥 먹읍시다.” “흥미롭네요. 같이 해볼까요?” 정도로 소통이 단순해지니까요. 핀란드 장인과 일할 때는 서로 문화를 잘 알기 때문에 대화가 다른 곳으로 새기도 해요. 단순한 소통이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어요.

두 사람은 거의 전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지금 한국 공예에서 보이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한 젊은 장인이 많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영천의 안진석 장인처럼 한국의 젊은 공예가들은 교육 수준과 기술 이해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오래전 함께 작업했던 노순걸 대나무 장인에게 연락했을 때, “제자 중에 최고가 있다”며 손민정 장인을 소개해주셨어요. 대나무로 재사용 가능한 커피 필터와 아름다운 그릇을 만드는 분인데, 재료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더군요. 흥미로운 건 같은 재료를 다루는 장인들은 나라를 초월해 비슷한 성격과 유대감을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다루는 재료가 곧 그들만의 ‘국적’인 셈이군요.

아무 비슷한 ‘종(Species)’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람쥐가 한국, 미국, 핀란드에 모두 살잖아요. 우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커다란 지구본을 설치한 것도 그런 의미예요. 손을 쓰는 사람들은 나비나 다람쥐처럼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지요.

요한 재미있는 건 공예도 여행을 한다는 점입니다. 일본 북부의 고케시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에 연향을 주었고, 멕시코의 전통 역시 스페인 문화와 만나 형성된 것처럼요. 다 연결되어 있어요.

시간이 흘러 협업하던 장인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되나요? 아무 이별이 따르지요. 일본의 고케시 장인은 2023년 97세에 타계하실 때까지 우리와 즐겁게 작업했어요. 그분의 경우 제자가 공방을 이어서 운영하는데, 만약 공방이 아예 문을 닫으면 작품도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요. 그 아이디어는 그 장인의 세계에 가서 얻은 아이디어이니까요.

요한 우리는 종종 공식 문서를 만듭니다. 이 작품은 오직 우리만을 위해 만들고, 우리 또한 이 작품은 이분하고만 만든다는 서약이죠. 평생을 함께하는 깊은 관계를 위한 약속입니다.

두 사람은 전시를 준비하며 의견이 부딪힐 때는 어떻게 조율하나요?

아무 그냥 부딪히는 편이에요.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보는 거죠. 저는 바이올린을 켜고 그는 첼로를 켜는 것처럼, 서로 다른 걸 하지만 같이 연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할 때는 우리 둘 뿐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조율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약 6년 동안 합을 맞추며 전시를 설계하는 린다라는 동료가 있는데, 이번 전시에도 함께했어요. 피크닉 팀도 합창단 같은 역할이에요.

요한 맞아요. 전시 전체가 하나의 큰 오케스트라입니다.

전시장 1층. 콤파니가 전 세계에서 발견한 물건들이다.

잘 조율된 오케스트라라는 말이 딱입니다. 전시 작품이 너무 많아서 압도될 수도 있는데 귀여운 물건들의 배치가 조화롭습니다.

아무 제겐 진짜 귀여움은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층위를 가졌다는 뜻이에요. 작은 조약돌이 귀여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슬픔과 행복이 담긴 세월이 있잖아요. 그냥 몰드로 찍어내서 완벽하게 둥근 것이라면 저는 귀엽지 않아요.

요한 우리도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이니까 물건을 만들어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해요. 귀여움은 그런 소통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요. 분노나 슬픔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 작업을 보여주고 싶진 않아요. 사람들도 장인과의 행복한 협업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아무 세상에는 ‘나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디자인도 많은데,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초점은 재료와 만든 사람, 그리고 조약돌 같은 작은 것에 있어요. 그것을 손에 쥐었을 때 느끼는 기쁨,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귀여움이에요. 한국어나 영어로 다른 단어를 새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네요.지금 보니 두 사람이야말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레이어를 쌓은 조약돌 같은데요.아무 아직은 아니에요. 80세쯤 되면 그렇게 작고 예쁜 조약돌이 되고 싶어요.요한 완전하게 갈아진 돌이 됐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사람은 헬싱키에 살지만, 사실 다른 나라에서 일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진짜 집’이라고 느껴지는 곳은 어디인가요?

요한 저는 헬싱키가 고향이고 가족이 많이 있는 곳이지요. 그렇지만 한국의 서울이나 통영, 제주같이 작업을 위해 오래 머문 곳에 있을 때도 집처럼 느낍니다. 정말 좋은 곳들이에요.

아무 집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저도 어떤 문화나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곳이 집이 되기도 해요. 마음속의 집은 여러 나라에 있을 수 있어요. 정신적으로는, 야야(반려견)가 있는 곳이 제 집이에요. 야야를 쓰다듬으면 비로소 집에 도착한 것 같거든요.

사진제공 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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