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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돌과 철판이 서로를 지탱하는 구조로 쌓여 물리적 균형을 이루는 <Stone Pagoda> 시리즈. © Lee Sisan

작업에서 돌은 출발점이자 기준이 됩니다. 돌의 형태가 전체 구조를 결정하도록 두는 방식은 작가로서의 ‘통제권’을 일부 포기하는 선택이기도 한데요. 어디까지를 자연에 맡긴다고 생각하나요? 제 작업에서 돌은 출발점이자 하나의 ‘결정권자’에 가깝습니다. 발견한 돌의 상태를 읽고, 그에 따라 구조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됩니다. 다만,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긴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주체가 되어 돌을 선택하고, 그 물성과 균형을 해석한 뒤 자립할 수 있도록 금속 구조를 개입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자연 조건을 현실 구조로 번역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돌이 방향을 제시하고, 저는 그것을 현실에서 성립시키는 역할을 맡습니다. 동시에 돌을 찾고 구조를 만드는 주체 역시 저이기 때문에, 제 작업은 자연과 인간의 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속 구조는 매우 정제된 산업적 질서를 따르는데, 돌은 전혀 다른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 두 사실이 충돌할 때, 형태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돌과 금속은 서로 다른 논리를 갖고 있지만, 제 작업에서는 충돌하기보다 서로의 기준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금속은 정밀하고 반복 가능한 산업적 질서를 따르지만, 어디까지나 돌을 지지하는 ‘보조 언어’로 설정됩니다. 따라서 1형태를 결정하는 기준은 금속이 아니라 돌의 물리적 조건에 있습니다. 금속 구조는 돌의 형태, 비례, 무게 등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것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게 대비시켜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자연석이 놓인 현장에서 재료를 살피는 이시산 작가. 작업은 채집과 관찰에서 시작된다. © Lee Sisan

<무위>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신체 비례를 배제하고 자연의 비례를 따르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일상 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는 ‘가구’ 성격도 띠고 있는데요. 제 작업은 돌의 비례에서 출발해 구조가 결정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사용의 잠재성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철판과 돌 사이의 간격은 자연스럽게 수납하거나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이는 제가 기능을 먼저 설정한 결과라기보다, 돌이 만든 구조 안에서 사용 방식이 뒤따라 발생하는 경우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기능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가능성에 인간이 다시 개입하는 지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돌을 깎거나 가공하지 않는 원칙이 작업의 확장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느낀 적은 없었나요? 돌을 깎지 않는다는 원칙은 제 작업의 중요한 기준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제약이기도 합니다. 선택 가능한 형태가 이미 존재하는 자연물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을 가공해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방식은 오히려 더 큰 제약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조건이 작업의 기준이 되고, 그 안에서만 가능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백지 상태보다, 이미 존재하는 형태 안에서 관계를 발견하는 과정이 제게는 더 중요한 작업 방식입니다.

<Earth Pieces> 시리즈의 체어와 스툴 작업. © Lee Sisan

<스톤 파고다 Stone Pagoda>는 전통 석탑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데요, 이 작업에서 ‘탑’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아니면 단순한 모티프가 된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Stone Pagoda>에서 ‘탑’은 단순한 형태적 모티프를 넘어서, 구조를 조직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작동합니다. 전통적인 석탑이 일정한 규칙과 비례 체계를 바탕으로 축조된다면, 이 작업에서는 그러한 인위적인 비례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각각의 돌이 가진 형태, 크기, 무게에서 비롯된 ‘자연의 비례’에 의해 구조가 형성됩니다. 돌과 철판은 쌓이면서 하나의 축을 만들지만, 그 질서는 미리 설정된 것이 아니라 돌의 조건에 의해 매번 다르게 결정됩니다. 따라서 <Stone Pagoda>는 전통 석탑의 형식을 차용한 작업이라기보다, 석탑이라는 구조를 자연의 비례로 다시 축조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탑이라는 개념 역시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자연의 조건에 의해 유동적으로 재해석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작업 전반에서 반복되는 ‘보존’과 ‘확장’이라는 두 개념이 충돌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보존’과 ‘확장’은 항상 동시에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존은 재료의 상태와 성질을 유지하려는 태도이고, 확장은 그것을 새로운 관계 속에 놓는 시도입니다. 이 둘이 충돌할 때는, 재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확장이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재료의 성질을 왜곡하는 확장은 유효하지 않으며, 반대로 그 특성을 더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확장합니다.

상하이 팡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시산 작가의 개인전은 오는 7월 6일까지 진행된다. © Lee Sisan
<Proportions of Stone> 시리즈 글라스 로 테이블. © Lee Sisan

현재 중국 팡 갤러리 Fang Gallery에서 첫 중국 개인전을 진행 중입니다. 한국에서 수집된 재료와 작업이 중국이라는 다른 문화적 맥락 안에서는 또 다르게 읽힐 것 같은데요. 전시장에서는 돌을 어디에서 수집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돌을 수집하고, 그것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했습니다. 같은 아시아권이기 때문에, 제 작업이 가진 미감이나 재료에 대한 감각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전시 이후의 작업 방향이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는 자연과 산업 재료 사이의 관계와 긴장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그 관계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특정 공간의 조건과 맥락 속에서 작업이 새롭게 관계를 맺고 확장되는 방식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이는 제 전공인 실내디자인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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