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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스 반 노튼의 미학을 품은 문화 재단이 베네치아의 오랜 저택에 문을 열었다. 예술과 디자인, 패션과 공예를 가로지르며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의 첫 장면.

전시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를 장식한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1997 F/W 컬렉션. © Matteo de Mayda
건물의 고전적 요소를 그대로 간직한 내부 공간. © Camilla Glorioso

드리스 반 노튼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면 색과 패턴, 장식과 절제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뒤따르곤 한다. 그의 옷은 화려한 색과 직물, 자수와 프린트를 사용하면서도 결코 과장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에서 가져온 요소들은 하나의 컬렉션 안에 정교하게 배치돼왔다. 지난 4월 베네치아에 문을 연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은 그의 미학을 패션 바깥의 영역으로 확장한 공간이다. 오랜 파트너 패트릭 반겔루위 Patrick Vangheluwe와 함께 설립한 이 재단은 공예와 예술, 디자인과 패션을 통해 브랜드가 다뤄온 재료와 시간, 손 작업을 보다 넓은 창작의 영역으로 옮긴다.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은 앞으로 전시와 협업 프로젝트, 레지던시, 교육 프로그램을 이어가며 베네치아의 공예 전통과 동시대 창작자를 연결할 예정이다.

드리스 반 노튼. © Camilla Glorioso
전시 동선은 저택 내 홀과 계단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Camilla Glorioso

공간은 베네치아 산 폴로 지구, 대운하를 마주한 팔라초 피사니 모레타 Palazzo Pisani Moretta에 자리한다. 드리스 반 노튼은 건물의 천장화와 벽면 장식, 가구와 예배실의 역사적 흔적을 애써 지우는 대신 남기는 쪽을 택했다. 작가 과라나 Guarana의 천장화가 남아 있는 살롱, 피사니 모레타 가문의 유리 컬렉션, 커튼 뒤에 가려져 있던 예배실 알코브와 앤티크 의자까지. 이곳에서 공간은 작품을 수용하는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각 작품의 위치와 관계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꼼데가르송 2025 S/S 컬렉션,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2004 F/W 오트쿠튀르 컬렉션, 케이트 맥과이어의 작품 <STIFLE, 2008>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 Matteo de Mayda
포르테고에 놓인 피터 부겐하우트의 조각 <The Blind Leading the Blind #48, 2012>. © Matteo de Mayda

현재 열리고 있는 개관전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는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의 이정표를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드리스 반 노튼과 헤이르트 브륄로트 Geert Bruloot가 공동 큐레이션을 맡았다. 제목은 미국 싱어송라이터이자 정치가였던 필 옥스 Phil Ochs의 문장에서 가져왔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단순히 보기 좋은 것이 아닌, 익숙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낯선 재료, 형식, 조합을 통해 새로운 시선 만드는 방식을 의미한다. 전시는 패션, 주얼리, 미술, 컬렉터블 디자인, 사진, 유리, 세라믹, 소재 실험을 한데 모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지평을 확장한다. 200점 이상의 작품은 각 방의 구조와 장식, 작품 간 관계에 따라 배치되었다. 전시는 육지 쪽 입구와 대운하의 수문을 잇는 긴 중앙 홀, 포르테고에서 시작된다. 이곳에 놓인 피터 부겐하우트 Peter Buggenhout의 조각은 먼지와 잔해를 연상시키는 거친 물성을 통해 전시가 ‘매끈하고 완결된’ 아름다움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방에서는 베네치아의 역사와 로컬 공예, 국제적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한 장면 안에 겹쳐 있다. 과라나의 프레스코화 아래 스티븐 시어러 Steven Shearer의 사진과 베네치아 주얼리 하우스 코도냐토 Codognato의 주얼리, 크리스찬 라크르와와 꼼데가르송의 의상이 함께 배치된 식이다. 역사적 장식품, 죽음을 암시하는 주얼리, 인체를 새롭게 해석한 의상을 한데 모아 서로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이 나란히 읽히도록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17~18세기 투스카니 화파 작품 앞에 전시된 앤 캐링턴의 금속 오브제. © Matteo de Mayda
조셉 아르주마노프의 <L’Echiquier des Songes, 2026>. © Fondazione Dries Van Noten

이러한 구성은 유리와 세라믹, 가구로 이어지며 구체화된다. 저택의 피사니 모레타 가문이 소장해온 유리 컬렉션 옆에는 무라노 유리 공예와 긴밀하게 연결된 리쓰에 미시마 Ritsue Mishima, 아르망 루이 Armand Louis, 덴마크 디자이너 알렉산더 커크비 Alexander Kirkeby의 작업이 놓인다. 베네치아가 오래도록 축적해온 유리 공예의 전통을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동시대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업을 통해 현재의 언어로 이어낸 것이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20여 편의 비하인드 영상은 이 흐름을 제작 과정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작가와 디자이너가 제스처, 의도, 과정을 직접 설명하는 영상들은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이 공예에 대해 바라보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공예는 재료를 고르고, 손을 움직이며, 시간을 들여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 안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말이다. 

줄리앙 디스가 디자인한 꼼데가르송의 헤드피스. © Matteo de Mayda
미샤 칸의 <Flotsam Jetsam, 2017>, 아서 반데르구츠의 <Metropolis Cabinet, 2025>. © Matteo de Mayda

드리스 반 노튼과 패트릭 반겔루위는 전시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정답이 아닌 질문으로 바라봅니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현실과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이죠. 아름다움이 모호함과 느림, 모순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익숙한 생각을 흔들어놓을 때, 그것은 조용한 형태의 저항이 됩니다.” 결국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은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를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창작과 가능성에 대한 완결된 답을 내놓기보다, 앞으로의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열린 출발점으로서 말이다.

알렉산더 커크비의 유리 공예품. © Matteo de May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