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종이와 도시 산업 오브제를 새로운 물성과 건축적인 조형으로 풀어내는 이우재 작가.

어떤 도시에 너무 오래 머물다보면 풍경은 감각을 잃고 둔해지기 마련이다. 회색빛 아파트 숲도, 도로 위를 점령한 트래픽 콘도 매일 마주하는 서울의 평범한 소음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러 문화권을 경계 없이 떠돌다 서울에 정착한 이우재 작가의 시선은 조금 다른 좌표에 머문다. 한 걸음 비껴선 거리에서 도시를 관찰하는 ‘이방인의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뉴질랜드에서 보낸 유년 시절,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한 재료 실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호주를 거쳐 한국에 이르기까지, 정착과 이주를 반복하는 삶 속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쉽게 버려지는 매체인 ‘신문지’였다. “종이는 재활용이 잘 된다는 이유로 오히려 더 쉽게 소비되고 버려져요. 특히 신문지는 이미 여러 번의 순환 단계를 거치며 섬유 입자가 잘게 부서진, 말 그대로 ‘막바지’에 다다른 소재예요. 이 약한 재료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연약한 물질을 물에 불리고, 갈아내고, 압축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전혀 다른 강도의 물성으로 되살리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작업이 ‘페이퍼 브릭 Paper Brick’ 시리즈다. 납작한 평면의 종이는 건축의 최소 단위인 벽돌이 되고, 쉽게 찢어지던 재료는 공간을 지탱하는 구조체로 변모한다. 그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친환경 업사이클링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마주했던 환경과 사물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사물과 도시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서울이라는 공간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많은 이들이 한국적 미감을 이야기할 때 전통 건축이나 오래된 유물을 떠올리지만, 다른 문화권의 시각적 문법을 체득한 그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대상은 지금, 여기의 도시다. 빽빽하게 솟은 아파트의 수직과 수평의 리듬, 무질서한 듯 이어지는 스카이라인. 누군가에게는 삭막한 회색 지대일 뿐이지만, 그의 눈에는 서울이 가진 독특한 조형 언어로 비쳤다. 조선 왕실의 병풍 ‘일월오봉도’를 오늘날의 아파트 숲으로 치환한 작업 ‘일월오빌딩’이나, 전통 한옥의 요소를 현대 도시를 연상시키는 기둥 구조에 투영해 낸 ‘Invitation’ 작업이 대표적이다. 그는 과거의 유산이나 고정된 상징 체계에 머무는 대신, 이를 현재 도시의 기하학으로 번역해내며 ‘한국적’이라는 개념을 동시대 관점으로 유연하게 풀어낸다. 최근 작업에서는 도시 안의 익명적인 오브제들로 탐구를 확장하고 있다.


올해 초 개인전 <Work in Progress>에서 선보인 ‘트래픽 콘’ 시리즈가 그렇다. 위험을 알리기 위해 존재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도로 위의 사물을 신문지라는 이질적인 재료로 재구성하며, 흔한 사물이 가진 존재감을 새롭게 환기한다. 그가 지속적으로 추적해온 ‘블루 Bleu’ 컬러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색이지만 한때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던 색.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쉽게 인식되지 못했던 블루의 역사에서, 그는 자신이 다뤄온 소외된 재료와 도시의 그늘을 겹쳐 읽는다. 이러한 깊이 있는 탐구는 2025 메종 & 오브제 ‘라이징 탤런트 어워즈’에서 주목받은 ‘Bleu’ 시리즈로 결실을 맺었다. 그의 관심은 여전히 종이가 가진 다음 가능성을 향하고 있다. “이 재료가 가지고 있는 표현 방법을 더 확장해보고 싶다”는 그는, 최근 진행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매장 디스플레이 작업에서 신문지에 화장품 패키지 제작 후 남은 파지를 섞어 새로운 질감과 표면을 실험했다. 폐기 직전의 물질들은 그의 손을 거치며 다시 단단한 구조를 획득하며, 한층 더 입체적인 조형 언어로 진화하는 중이다. 한 번 읽히고 버려지는 소모품에서 시작해 도시를 이루는 거대한 스케일까지. 이우재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 디딘 도시의 숨은 궤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