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퐁피두센터의 컬렉션과 서울의 문화적 감각이 만나는 자리, 퐁피두센터 한화가 써나갈 동시대 미술관의 새로운 지평.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예술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규정짓지 않는다. 오히려 미술과 건축, 영화와 음악, 퍼포먼스와 교육을 포괄하며 동시대 창작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만나고 확장되는 열린 플랫폼을 구축해왔다. 이러한 예술적 실험이 서울 한강변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난 6월 4일 개관한 퐁피두센터 한화다. 한화문화재단과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조성된 이곳은 파리 퐁피두센터가 축적해온 실험적 태도를 한국 문화 안에서 다시 작동시키는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공간은 그 방향을 건축적으로 연결한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의 설계 아래 완성된 건물은 한국 전통 기와의 곡선을 품은 반투명한 구조를 갖췄다. 낮에는 자연광을 받아들이고, 밤에는 내부 빛을 도시로 확산하는 ‘빛의 상자’를 콘셉트로 했다. 전시실로 향하기 전, 지층 로비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작품은 레몽 뒤샹-비용의 청동 조각 <대형 말>이다. 말의 형상과 기계적 역동성이 결합된 이 작품은 큐비즘 조각의 대표작으로,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의 주제의식을 내포한다. 전시가 다루는 시각의 해체와 재구성에 대한 질문을, 평면 회화의 문제를 넘어 공간의 감각으로 확장한 셈이다.



개관전이 큐비즘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큐비즘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출발점이자,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꾼 시각의 혁명이었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하나의 시점에 기대어 대상을 재현하던 회화 규범을 흔들었다면, 이후의 큐비즘은 살롱 전시와 국제적 이동, 색채와 리듬의 실험, 콜라주와 조각, 디자인의 영역을 지나며 더욱 복합적인 언어로 확장했다.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이 흐름을 초기 큐비즘, 분석적 큐비즘, 살롱 큐비즘, 오르픽 큐비즘, 종합적 큐비즘, 전쟁 이후의 변형으로 나누어 따라간다. 회화와 조각, 드로잉, 디자인, 아카이브를 함께 배치해 큐비즘을 특정 양식에 가두기보다는, 근대 이후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로 조명했다. 전시 상징성은 제2전시실의 특별 섹션 ‘KOREA FOCUS: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에서 보다 선명해진다. 김환기, 유영국 등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업은 큐비즘 이후의 작업이 한국 역사 속에서 수용되고 변형되어온 방식을 조망한다. 여기서 파리는 한국 작가들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상상하던 참조점으로 작동한다. 기하학적 추상과 다시점, 색면 분할, 전쟁 이후의 현실 인식은 서구 아방가르드의 영향이라는 단선적 설명에만 근거하기 보다는, 한국 미술 안에서 다시 구성된 근대의 언어로 해석된다.


미술관 동선은 관람 이후의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1층의 오디토리엄과 스튜디오, 멀티스테이션은 강연과 교육, 워크숍을 수용하고, 통창을 따라 배치된 카페는 야외 정원 ‘아우돌프 가든’과 연결된다. 2층과 3층의 대형 전시실은 퐁피두센터 소장품 전시와 한화문화재단 전시를 위한 무대로 기능하며, 4층의 옥상 공간과 레스토랑에서는 한강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개관 직전, 이 공간은 이미 전시 너머의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지난 5월 26일, 샤넬이 마티유 블라지의 2026 공방 컬렉션을 퐁피두센터 한화에서 다시금 선보인 것이다.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처음 공개된 컬렉션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이어갔다. 공예와 패션, 퍼포먼스가 한 공간 안에서 새롭게 조직되는 문화의 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결국 퐁피두센터 한화의 출발점을 개관전 하나로만 설명하기엔 아쉬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큐비즘이 제안한 시각의 전환, 한국 근현대 미술이 보여주는 수용과 번역, 샤넬 공방 컬렉션이 남긴 장면은 각기 다른 시각에서 공간의 용도를 드러낸다. 작품과 건축, 공예와 패션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보다는 나란히 작동하는 곳. 앞으로도 이곳은 동시대 문화를 수용하는 미술관의 범위를 확장하며, 서울이 세계 예술적 흐름을 다시 조직하는 장면을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