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고통을 강렬한 이미지로 남긴 프리다 칼로. 회화를 넘어 패션과 대중문화까지 관통하며, 21세기 동시대 미술계가 다시 주목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최근 몇 년 사이 프리다 칼로 전시회는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앞다투어 기획하는 콘텐츠로 부상했다. 멕시코 등 남미 문화에 대한 관심, 화려한 색으로 가득한 맥시멀리즘의 귀환, 그림뿐 아니라 패션에서도 독보적인 비주얼을 구축한 스타성 등 이 시대가 그녀를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일일이 열거하기 모자랄 정도다. 게다가 50년 동안 숨겨졌던 거대한 아카이브가 2004년 공개되며 촉매제가 되었다. 여기서 나온 2만 점 이상의 문서와 6천 점의 사진에 더해, 3백여 점의 의복 등 프리다 칼로를 입체적으로 재조명할 수많은 자료가 갖춰진 것이다. 게다가 2022년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영국 출신으로 멕시코에서 여생을 보낸 초현실주의 여류 작가 레오노라 캐링턴의 책 제목인 ‘꿈의 우유’를 주제로 내걸며, 이에 딱 부합하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주목받았고, 이는 2024년 초현실주의 100주년 기념 이벤트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열기 속에서 2025년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1940년 자화상 <꿈(침대)>이 5천4백66만 달러(약 8백억원)에 낙찰되었는데, 이는 2014년 조지아 오키프의 기록을 깨고 여성 작가 최고가를 경신했다.

프리다 칼로(1907~1954)는 독일인 아버지와 스페인 원주민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13세에는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고, 18세에는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게 되면서 의대 진학을 꿈꿀 정도로 총명했던 소녀의 꿈이 꺾였다. 그러나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는 멕시코의 유명 벽화작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하면서 뉴욕, 파리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유명한 부부 예술가로 활동했다. 멕시코 민속문화를 바탕으로 자전적 삶을 투영한 그녀의 작품은 아카데믹한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이었기에 오히려 순수하고 상상력이 두드러지는 독창성을 지닐 수 있었다. 파리에서는 루브르 미술관이 그녀 생전에 작품을 구매했고, 앙드레 브르통의 인정을 받아 초현실주의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21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 생활은 고통과 파멸의 연속이었다. 결국 심신 악화로 47세에 사망해 잊혔다가, 1970년대 여성 예술가들을 재조명하며 부활했다. 올해만 해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프리다와 디에고: 마지막 꿈>(3월 21일~9월 12일),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프리다: 아이콘의 탄생>(6월 25일~2027년 1월 3일)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뉴욕 전시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신작 공연과 연계한다. 프리다가 사망한 지 3년 후 디에고가 멕시코 명절인 ‘망자의 날’ 다시 불러내 창작 활동을 재개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다. 전시장도 무대 디자이너 존 바우서가 디자인을 맡아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을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나무, 동백처럼 뻗은 붉은 가지들 등 그동안 보아왔던 전시와는 다른 극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런던 테이트 모던 전시는 프리다가 스스로 자신의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멕시코 전통 의상을 통해 감추며 아이콘으로 거듭난 전략가였다는 점과 함께 ‘이집토마니아’ 열풍에 빗댄 ‘프리다마니아 (Fridamania)’ 현상을 전 세계에서 모은 2백여 점의 굿즈로 소개한다. 넷플릭스에서도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이야기를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니, 프리다는 예술가를 넘어서 21세기 내내 지속될 최고의 문화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