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 건축, 주말 가구. 본인을 ‘평건주가’로 소개한 점이 재미있습니다.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건축과 가구는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사람의 공간과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같은 출발점이 있습니다. 건축을 하며 익힌 공간 감각은 가구를 설계할 때 비례와 균형,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는 기준이 됩니다. 반대로 가구 작업을 통해 재료의 물성과 디테일, 제작 과정을 깊이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경험은 건축에서도 더 섬세한 디테일과 인간적인 스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가구를 작은 건축이라고 하는데, 결국 두 작업 모두 사람, 공간, 사물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소개글을 보면, ‘가구는 사이트 없는 건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기에 더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건축은 대지, 법규, 구조, 예산 같은 수많은 조건 속에서 시작합니다. 언뜻 보면 제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설계의 방향을 잡아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합니다. 반면 가구는 훨씬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자유가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엇을 만들지,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형태가 적절한지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구는 ‘사이트 없는 건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건축에서 장소가 설계의 출발점이라면, 가구에서는 개념이나 재료, 제작 방식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외부 조건이 적은 만큼 작업의 논리와 가치를 스스로 구축해야 하고, 스케일이 작은 만큼 형태와 구조, 사용성, 물성에 대한 완결성을 만들어냅니다.


작업에는 무거움과 가벼움, 안정과 긴장감처럼 상반된 감각이 공존합니다. 이런 균형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형태나 개념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그것과 다르거나 반대되는 요소가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점선면이 그러하고, 정반합도 유사합니다. 무거움이 있다면 가벼움이 필요하고, 안정감이 있다면 긴장감도 필요합니다. 대칭이 질서를 만든다면 비대칭은 생명력과 예측 불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반된 요소들이 하나의 형태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때 만들어지는 긴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디자인은 완벽한 균형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들이 끊임없이 대화하는 상태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초기작 주판 와인꽂이부터 기와 시리즈까지, 한국적인 오브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오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적인 디자인이 특정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판이나 기와 같은 소재를 작업에 활용하는 이유도 단순히 한국적인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구조적 원리와 시간의 흔적, 오랫동안 축적된 생활의 지혜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디자인은 과거의 형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경험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삶 속에서도 유효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스툴과 반닫이 등 기존 기와 시리즈를 빛이라는 매체로 확장한 ‘기와 이클립스 램프’를 선보였습니다. 기와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단순히 형태를 반복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명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명은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와 감정을 만드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와는 본래 빛을 막고 보호하는 건축 요소인데, 그 재료가 오히려 빛을 품고 발산하는 오브제로 전환될 때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앱을 사용해 사용자가 직접 빛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기와 이클립스 램프는 개기일식에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태양과 달, 그리고 관찰자의 위치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순간처럼 빛이 점점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기보다는 사용자가 직접 조명판의 거리를 조절하며 빛의 양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을 변화시키도록 했습니다. 단순히 조명을 켜고 끄는 것이 아니라, 빛이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몸으로 경험하는 과정이 되기 바랐습니다.
최근 금속 작업은 목가구에 비해 보다 날렵하고 추상적인 인상을 줍니다. 재료가 바뀌면서 작업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형태를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목가구 작업에서는 재료의 질감이나 손의 흔적, 구조적 안정감에 더 집중했다면, 금속 작업은 사물과 공간, 빛과 형태 사이의 관계로 관심이 확장된 과정에 가깝습니다. 금속은 높은 강도와 정밀성을 갖고 있어 나무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얇은 두께와 긴장감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최근 작업에서는 형태 자체보다 빛과 그림자, 공간적 경험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가구를 넘어 하나의 공간 자체로 구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나요? 기회가 된다면 인테리어 요소를 최소화하고, 가구만으로 완성되는 집을 설계해보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벽이나 마감, 고정된 장치들이 공간 성격을 결정하지만, 저는 비워진 건축적 틀 안에서 가구가 벽이 되기도 하고 문이 되기도 하며 공간을 정의하는 방식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가구를 단순히 놓이는 물건이 아니라 건축과 삶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