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파리를 비롯한 유럽이 이상기온으로 인한 때아닌 더위로 곤욕을 치렀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추세이지만, 전통적으로 파리는 6월까지 쌀쌀한 날이 많고 한여름에도 햇빛만 피하면 비교적 쾌적하다. 일조량이 충분한 시기가 6월부터 10월 정도인지라, 이때 파리를 방문하면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해가 길어지는 서머타임 시기에는 도시 전체가 한층 더 활기를 띤다. 이런 계절적 특징 덕분에 여름이 되면 많은 레스토랑과 호텔, 바에선 루프톱 공간을 연다. 그런데 유명 루프톱 바는 대부분 복장 규정이 까다롭거나 가격대가 높다. 이러한 아쉬움을 덜어주는 캐주얼한 루프톱 비스트로가 문을 열었다. 파리를 찾는 이들이 한번쯤 들르는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 백화점 옥상에 자리한 ‘발콩 Balcon’이다.

지난 5년간 채식 레스토랑이 운영되던 자리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인물은 셰프 줄리앙 세바그.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지 않고 자신만의 감성을 키워온 그가 선보이는 발콩은 파리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철제 발코니에서 이름을 따왔다. 파리의 지붕들과 랜드마크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이 이곳의 가장 큰 인테리어 요소다. 공간 디자인과 소품은 파리의 전통적인 비스트로 스타일을 재해석해 부담스럽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거친 콘크리트나 금속 같은 가공되지 않은 자재들을 중심에 두고, 버건디와 보틀 그린 색상의 끈을 엮어 만든 전통 비스트로 의자를 배치했다. 인위적으로 세련미를 뽐내기보다는 소재 본연의 질감과 손때 묻은 가구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루프톱 공간에 골목길의 편안한 선술집의 아늑함을 옮겨놓은 것 같다.

식탁 위 연출도 화려한 장식을 덜어내고 직관적인 멋을 살렸다. 초록색 테두리가 얇게 둘린 정갈한 흰색 도자기 접시와 투박하면서도 클래식한 수저 세트가 식탁을 채운다. 그 위에 오르는 요리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시각적 요소가 된다. 흑마늘을 곁들인 달걀 요리와 대파 구이, 블루베리와 허브가 만드는 색감은 흰 접시 위에서 계절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기에 요일마다 정해진 고기 요리나 생선 요리를 내놓는 동네 식당 특유의 ‘오늘의 메뉴’ 방식을 도입해 프랑스적인 감성을 놓치지 않는 디테일도 챙겼다. 발콩은 오전 10시 아침 식사부터 노을이 지는 칵테일 타임과 저녁 식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거창한 장식 대신 탁 트인 하늘과 파리다운 자재, 클래식한 비스트로 의자만으로도 이곳은 파리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연출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공간과 소품만으로 파리 특유의 헤리티지를 보여주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장소다.




